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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냥 Aug 10. 2016

붙잡아, 아무것도 아닌 것은 없으니까.

6월의 화요일 : 이름



06.07.


색종이 접듯이 생을 접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무엇도 남지 않을 거라고 매몰차게 대답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지만, 이름조차 기억해 줄 이가 남지 않을 세상은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올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갈까. 어디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비록 지금 우리의 모습과 다르더라도 찬란했던 우리의 과거는 과거로 남겨두는 것이 가장 아름다울 것이기 때문이다. 변한 마음을 다잡고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지언정, 이미 지나온 시간을 없는 셈 치고 처음 인척 연기해봤자 연기는 연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다음 생이 있다면 무엇으로, 어떻게 살까. 가능하다면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두 번째 생이 지금보다 나으리란 보장도 없고 두 번 살고 싶을 만큼의 뭔가도 없기 때문이다.


매몰차게, 차갑게 대답할 수밖에 없던 날이었다. 그렇게라도 버텨야만 했다.




06.14.


어떤 것도 부를 수 없던 날.


당신이 좋아했던 커피, 우리가 함께 갔던 공원...

내 기억 속 당신의 순간에 붙여두었던 이름들을 지웠다.




06.21.


call me.




06.29.


이름 덕분에 새 학년이 되어도 설레지 않는 것이 있었다. 내 기억 속 출석번호는 언제나 1번이었다. 그게 싫어서 이름을 바꾸고 싶었던 때도 많았다. 더군다나 흔하지 않은 이름 덕분에 선생님들은 내 이름을 두 번씩 고쳐서 부르는 경우가 많았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몇 번씩이고 이름을 반복해서 말해야 했다. 그러나 시간은 그 모든 것으로부터 익숙해지게 만들었다.


친구들보다 항상 앞서서 마주해야 했던 발표, 시험... 그때 나의 마음은 어땠나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그때 홀로 스스로를 다잡고, 다독이고, 용기내고, 부딪혔던 시간들은 어쩌면 '다른 이들이 어떻게 하나', '어떻게 사나' 크게 개의치 않고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는 습관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흔하지 않은 이름을 몇 번씩이고 또박또박 말해야 했던 순간들은 이름 앞에 부끄럽지 않게, 책임감을 무던히 견뎌내 올 수 있었던 최후의 힘이 되어주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내게 이름을 바꾸고 싶냐는 질문을 한다면,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내게 이름이 붙여지고, 그 이름으로 살아온, 그 이름으로 가능했던 순간들과 오늘의 날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월간 4X5 <다섯 개의 단어, 스무 번의 시>는 한 달 동안 다섯 개의 단어, 각 단어 당 네 번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짧고 주기적인 생각, 무질서한 개인의 감정과 사유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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