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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냥 Oct 03. 2016

이렇게라도 영원을 살 수 있다면

7월의 금요일 : 사진



07.01.


언젠가 오래된 친구와 1년에 한 장이라도 꼭 같이 사진을 찍어 놓자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이고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사진이 남아 있지 않은 지난 시간을 아쉬워하며 말이다. 그때 우리의 바람은 서로의 모습을 기억하며 함께 늙어가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약속은 지금 여기 없다. 우리의 약속은 왜 이리도 멀리에 있는지, 우리는 서로를 무엇으로 잊어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서로를 공유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뿐만 아니라, 마음의 여유도 함께 줄어들고 있음을 당신도 느끼고 있을까.


오늘 밤, 지금 여기.

지난 시간 어디쯤에서도 예상치 못했던 마음의 빈자리에 내가 홀로 앉아 바람을 쐬고 있다.




07.08.


오늘도 그 흔한 사진 한 장 찍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오늘도 전하고 싶던 말을 현실 뒤로 미뤄두었다.


흘러가는 것은 흘러가게 내버려두고, 언젠가 몸도 마음도 버겁지 않은 날이 오면 그때쯤에는 이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때는 온전히 나의 몫이라 여겨지는 지금 이 감정을 그도 알게 될까.


오늘만큼은 나도 누군가에게 기대어 쉬고 싶다. 여유 공간이 부족한 폰의 사진첩에서 지울 사진을 찾아 헤매다, 보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만 떠올랐다. 결국 사진은 몇 장 지우지도 못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지나간 시간, 기억이 주는 따뜻함보다도 그 무게가 참 버겁다. 


어쩌면 나무에 열린 열매가 무르익어 저절로 떨어지듯, 우리의 우정도 싹이 튼 때부터 세월을 거듭하다 저절로 끝났는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생각합니다.

- 요시모토 바나나, '어른이 된다는 건' 中




07.15.


흘러가는 것은 흘러가도록, 사라지는 것도 사라지도록.

여기서 바라보고 있기로 했다.


온몸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에서 기억을 위한 움직임을 멈춘다. 기억의 무존재를 근거로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동안 마음이 붙잡아 둔 온갖 순간들이 무의미해지길. 그렇게 되더라도 아프지 않길. 슬퍼하지 않길.




07.22.


당신은 무엇을 찍어요?


그의 사진을 본다는 것은 그의 세상을 보는 것이다. 그의 사진에는 그가 모아둔 마음의 순간이 있다. 때론 소소한 행복이 담겨있고, 때론 지긋이 고통을 바라볼 줄 아는 담대함이 담겨있다. 그의 사진을 보며, 나의 세상을 떠올린다.


나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내가 바라고, 내가 살고 있는 세상. 이 내 세상이 '보통', '평균'은 아니라고 상기시켜준 이가 있다. 그의 말에는 나보다 앞서 경험한 세상살이의 치열하고 비열한 이면이 있었고, 그것에 상처받지 않길 바라는 따뜻한 마음이 있었다. 그 말을 듣던 날, 나는 따뜻한 마음에 취해있느라 현실의 잔인함을 가늠치 못했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서야 그가 목격하고 경험한 지독한 세상에 내가 놓이고 나서야 알았다. 지금 여기 '인간의 도리', '세상의 이치'는 쉽게 무너지고,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식은 찾기 힘든 곳이다.


조그마한 희망을 붙잡아 두고 커다란 기대를 갖다가, 더 큰 실망을 하고 작게나마 안도한다.

각자가 다른 세상에 산다. 같이 사는 척하지만 다른 곳에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07.29.


그 사람의 진심이 눈에서 빛났다. 내 얼굴을 바라보지도 않고 눈물을 뚝뚝 흘리더니, 발걸음을 떼는 순간이 되어서야 내게 고마움을 전했다. 반대편에 서 있던 나는 그를 달래고, 그를 보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발걸음 소리를 가만히 듣고 서있었다. 그 순간을 캡처해 마음에 담아 두었다.



월간 4X5 <다섯 개의 단어, 스무 번의 시>는 한 달 동안 다섯 개의 단어, 각 단어 당 네 번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짧고 주기적인 생각, 무질서한 개인의 감정과 사유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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