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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냥 Nov 26. 2016

그래도 사라지지는 마

10월의 월요일 : 버리다



10.03.


방청소를 해야 했다. 무엇부터 버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무엇이든 버려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버리는 것보다 끌어안고 사는 것이 많다. 물건도, 사람도. 그래서 항상 정리해야 하는 것들이 주변에 있다. 주변에 놓아두기도 하고, 끌고 다니기도 하고, 업고 다니기도 하고, 그렇다.


방 한가득 물건들을 늘어놓았다. 눈에 들어오는 물건을 차례로 들고 고민했다. '버릴까, 버리지 말까, 버려도 될까, 버릴 수 있을까, 버리자.' 많은 것들을 버렸고, 또 많은 것들을 남겨두었다.


아직은, 아직도 때가 되지 않았나 보다.




10.10.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오히려 잘된 일이다.'


스스로 마음을 저버리는 일을 두고,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를 다독인다는 이유 합리화하면서 지나온 시간 가운데, 무엇들을 놓아버린 것일까. 혹은 무언가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것은 아닐까.


지나간 것들은 왜 아쉬운 것들로 남았을까.




10.17.


사소한 것도 사소하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알며, 그것들을 마음으로 충분히 안고자 하는 것이 때때로 힘듦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꿈을 꾸었다. 의미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는 시기로 되돌아가 있었다. 무척이나 허전할 것 같았던 순간에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이 공간에서 나는 어떤 존재로 존재해야 하는지, 존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꿈에서도 이어졌다.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명랑한 햇빛 속에서도 눈물이 나는가

어떠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깊은 바람결 안에서도 앞섶이 마르지 않는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무수한 슬픔 안에서 당신 이름 씻으며 사는가

- 류근, '어쩌다 나는, '




10.24.


지금. 여기. 우리.

서로를 보지 못한 채 흘러버린 몇 년의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서로를 향한 따뜻한 마음이 이렇게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분명 나는 그렇게 그리던 너를 보았는데, 마치 꿈을 꾼 것 같다. 담담히 너를 반기며 지난 시간을 이야기하다, 돌아서서 홀로 걸어가는 길에서야 울컥할 수 있었다.

...(생략)

- 10월 16일


결국 전하지 못한 선물을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 마음만은 그와 함께 갔으리라 하는 마음으로 나도 긴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루 종일 마음을 두들기는 슬픔 덕에, 몇 마디 말도 않고 멍하게 하루를 보내다 야근을 했다. 차라리 확 터져버리면 울고 말 일인데, 그러지도 못했다. 누군가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슬픔이라 다짐하면서도 한편으론 누군가는 달래주길 바라는 슬픔이었다. 어쩌면 반대로 아무나의 아무 말이 필요한 하루였고, 그 누구도 나의 슬픔을 알아채지 못한 피곤함의 연기가 완벽한 날이었다.

넌 지금 어디쯤 있을까.

- 10월 24일


슬픈 마음을 버리자고 마음을 먹을수록 눈가가 아려왔다. 아플 땐 혼자 있는 게 가장 서러운 일이라던데. 몸도 마음도 혼자였어서 그랬나 보다.




10.31.


글자 본디 소리 없고 전파 또한 보이지 않는데
이 짧은 진동 하나에 하루 종일 흔들리는 나

- 고두현, '달의 뒷면을 보다' 中


후회했어. '이럴 줄 알았으면, 네게 기대하는 일은 어떤 것도 없었을 텐데'하고.

그래서 그런 거야. '너에게 어떤 기대조차 하지 않을 거야. 너는 내게 아무 의미가 없는 거야.'


그런데도 너의 의미가 옅어진다는 건 그저 나의 바람일 뿐이었나 봐. 너를 지워야 한다는 생각이 짙어질수록 차라리 네가 돌아오길 바란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 무엇 때문에,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괜찮을 거야.


'그래도 아예 사라지지는 마.'


방 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버린다고 해서, 빈 방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빈 방의 기억 속에는 책상, 침대, 액자, 사진의 위치부터 그것들이 방 안에 자리한 시간부터 버려지는 순간까지의 긴 이야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서로를 애써 지워가려는 시간이 지나, 서로에게 무감각해지는 날이 온다 해도 기억의 존재까지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어느 순간에는 그 존재가 위안이 되어주기도 할테다.



월간 4X5 <다섯 개의 단어, 스무 번의 시>는 한 달 동안 다섯 개의 단어, 각 단어 당 네 번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짧고 주기적인 생각, 무질서한 개인의 감정과 사유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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