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냥 Mar 26. 2017

밤이 깊었네

1월의 화요일 : 밤



01.03.


밤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겠다.

목적지 없이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는 밤길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겠다.


유일하게 혼자이면서 오로지 충만할 수 있는 하루 중 일부이자, 나의 전부인 시간이기 때문이다.




01.10.


유난히 달이 밝은 밤이다.

하루 24시간이 밤처럼 어두운 가운데, 진짜 밤이 찾아든 퇴근길에서야 달빛을 올려다본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달은 마냥 밝기만 하다. 마냥 밝은 그것이 유일하다.


이게 나의 밤이자 나의 하루다.


밤이 가득한 하루를 이끌고 돌아다닌다. 어젯밤 유난히, 유일하게 빛나던 달빛이 눈에 선하다.

차 있던 자리가 비어서 빈자리인가, 이미 빈자리를 가져다 놓고 빈자리라 부르는 것인가. 해변 근처를 떠도는 빈 유리병 같은 게 마음에 박혀있다. 바닷물이 차오를 때면, 유리병 안을 채우는 바닷물에 충만함을 느끼다가도 때가 돼서 물이 빠지고 나면, 짠 내음에 의지해 공허함을 달래다가도, 결국 운명적이고 태생적인 이름 모를 이 감정을, 빈 유리병의 존재를 인정하고 만다.

며칠째 머릿속을 맴도는 '빈자리'란 단어를 붙잡고 글을 쓰는 사이. 한강 위에 떠오른 태양이 눈부시도록 빛난다. 날 비춘다. 아니라는 걸까. 그렇지 않다고 정신 차리라고 그러는 걸까. 유난히. 유일하게 빛나는 것은 달만이 아니라고 그러는 걸까. 이 찬 공기조차 잊을 만큼, 따스한 햇살이구나, 달빛만큼이나 너도 빛나고 있구나.

- 어느 날 출근길에




01.17.


깊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향한다. 집에서는 오로지 잠만 자기 위함이다. 작은 방 안에 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시간이 두렵다. 그래서 가능한 다양한 방법으로 무언가를 하다가 몸이 피곤해지면 집으로 향한다. 몸이 피곤해서 그런지 금방 잠에 들지만, 피곤함도 어쩌지 못한 불안함이 결국 새벽을 마주하게 한다.




01.24.


우울하다 하여 아무 데나 전화하지 말라는 글이 생각나 어디에도 전화를 걸지 못하였다. 견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라는 글을 보았기에 누구든 떠올려보려 하였으나 누구도 떠올리지 못하였다.

- 1월 24일 밤에




01.30.


당신처럼 나도 밤을 좋아한다. 특히 새벽 4시.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라도 그 시간에 일어나기는 쉽지 않고, 늦게 잠드는 사람이라도 그 시간까지 깨어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인기척이 희박한 시간. 인간의 시간이라고는 할 수 없는 시간. 밤 고양이라든가 벌레라든가 나뭇잎들의 시간.

- 이장욱, '최저임금의 결정' 中


+ 03.26

내게도 희박한 시간 새벽 4시. 몇 안 되는 그 시간의 기억이 왜 이리도 오래, 깊게 남았는지. 힘들게.



월간 4X5 <다섯 개의 단어, 스무 번의 시>는 한 달 동안 다섯 개의 단어, 각 단어 당 네 번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짧고 주기적인 생각, 무질서한 개인의 감정과 사유를 담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별을 보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