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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냥 May 01. 2017

드러난 마음

1월의 금요일 : 바람


01.06


부디, 바람이 하는 일은 바람에게 맡기자.
너무 애쓰지 말자.

- 유선경, '아주 오래된 말들의 위로'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지쳐 있었다.
모두들 인사말처럼 바쁘다고 하였고
헤어지기 위한 악수를 더 많이 하며
총총히 돌아서 갔다.
그들은 모두 낯선 거리를 지치도록 헤매거나
볕 안 드는 사무실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일을 하였다.
부는 바람 소리와 기다리는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가 잘 드리지 않고
지는 노을과 사람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밤이 깊어서야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돌아와
돌아오기가 무섭게 지쳐 쓰러지곤 하였다.
모두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라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의 몸에서 조금씩 사람 냄새가
사라져가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터전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쓰지 못한 편지는
끝내 쓰지 못하고 말리라
오늘 하지 않고 생각 속으로 미루어 둔
따뜻한 말 한마디는
결국 생각과 함께 잊혀지고
내일도 우리는 여전히 바쁠 것이다.
내일도 우리는 어두운 골목길을
지친 걸음으로 혼자 돌아올 것이다.

- 도종환, '귀가'


바람에 사람 냄새가 사라져가는 것을 알면서도, '부디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들과 가능한 오래 함께 할 수 있도록 하소서'라고 바랐다. 바람에 흩어져버리는 사람 냄새를 어떻게해서든 붙잡고 싶은 날이었다. 바람에게 맡겨 둘 수 없다는 생각이 지독해지는 밤이면, 잠에 들어서도 불안에 휩쓸리곤 했다.




01.13.


겨울 바람 속에서도 열정을 잃지 않고
사랑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날들

- 박노해의 걷는 독서


아무것도 아니었던 날들은 없었기에, 마음을 정리해야 했다. 무엇을 정리해야 하냐는 질문에 어떠한 답도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나는 당신을 보냈다. 겨울바람이 춥다.




01.20.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덧문을 아무리 닫아보아도
흐려진 눈앞이 시리도록 날리는 기억들
어느샌가 아물어버린 고백에 덧난 그 겨울의 추억
아 힘겹게 사랑한 기억 이제는 뒤돌아 갔으니

바람은 또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내 맘에 덧댄 바람의 창 닫아 보아도
흐려진 두 눈이 모질게 시리도록 떠나가지 않는 그대
혼자라는 게 때론 지울 수 없는 낙인 같아
살아가는 게 나를 죄인으로 만드는
혼자라는 게 때론 지울 수 없는 낙인처럼
살아가는 게 나를 죄인으로 만드네

- 루시드폴,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사람의 인연은 바람 같은 거구나. 불어서 내게로 왔듯, 부니까 어딘가로 가는 거지. 그게 자연스러운 거였네..

- 이유미, '동료의 이직에 관하여'




01.27.


주변 사람은 신경 쓰지 않고, 둘이 편히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에서 한참의 시간을 보낸 후, 찬 바람을 맞으며 밤길을 걸었다. 비로소 그 순간이 되어서야, '나도 내가 어떻게 늙을지 모르겠는데... 시간이 흘러 내가 어떤 모습이 되더라도 너무 멀리 가지는 마'라고 말할 수 있었다. '내 곁에 있어줘'와는 또 다른 느낌이지만... 생각해보면, 이는 '우리 우정 영원히'의 어른 버전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곁들어 '거리가 멀어지고 일이 바쁘더라도 때 되면 챙겨서 보자. 사람 멀어지는 건 한 순간이더라.'라는 말도 전했다. 건조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나, 그와 정반대로 가슴 절절한 깊은 바람을 담고 있었다. 그이기에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마음인 것이다. 혼자가 편하고 좋고 익숙해도, 문득 찾아드는 '나 정말 혼자인가?'란 불안과 외로움을 홀로 달랠 수 있는 이유가 그였고 앞으로도 그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 오랜만에, 오랜 둘 만의 시간 끝 즈음에서


세찬 바람이 걷어내고 나서야 드러난 마음.



월간 4X5 <다섯 개의 단어, 스무 번의 시>는 한 달 동안 다섯 개의 단어, 각 단어 당 네 번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짧고 주기적인 생각, 무질서한 개인의 감정과 사유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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