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순이의 드라이브

나는 비엠x6을 탑니다.

by 제이

결혼을 일찍 했다. 짧고 굵게 연애를 하고.

마음을 만져주는 부드러운 목소리의 훤칠한 그 사람과.

어린 나이의 나는 그 사람의 무엇을 보고 결혼을 결심했을까.

어느새 둘 다 중년이 되어 지나간 시간을 건너다보면 그냥 사람하나만 보았다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아이를 빨리 낳아 그렇게 육아에 나의 삼십 대를 보내고 남들보다 빠른 마흔 중반의

나이에 조금 이른 자유가 나에게 주어졌다.

글쎄, 이 자유가 좋아야 할까 싶은 무료함이 엄습했고 어느 순간 혼자가 편하고

집이 편한 무기력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다 할 경력도 없고 사회적 경험도 없고 나에 대한 그 어떤 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느끼는 시간.

그 시간 속을 부유하며 나의 심장은 조금씩 메말라 갔다.

생각해 보면 전반적인 나의 삶은 내가 주체가 되어 사는 삶이 아니었다.


날개가 모두 꺾여 버린 채 슬프고도 고요한 침묵 속을 걷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살금살금 소리 죽여 웅크린 채 책임과 자책 속을 오가며 공허해진 마음들을 방치했다.

그래서일까.

그 공허한 마음들이 소란스러우면 조용히 차키를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나를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데 어디든 내 맘대로 갈 수 있으니 나에게 드라이브는

산책과 같은 숨구멍을 열어 주었다.

집순이에게 이것보다 멋진 세상과의 소통이 어디 있을까.

나는 파란 눈의 녀석과 함께 하는 드라이브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겁찔이에 길치이기까지 한 나는 주차도 고만고만해서 정작 드라이브라고 해봐야

길을 찾는 수고스러움이 없는 익숙한 경로가 대부분이다.

목적지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데 가끔 목적지가 있는 경우에도

말 그대로 목적이 있는 장소인 경우가 많다.

마음이 요동 쳐 우울의 그늘이 턱끝까지 내려오면 그런 날은 속도를 내며 조금 달려줘야 한다.

왕복으로 한 시간 정도 거리의 방향으로 몇 개의 터널을 지나 아무 생각 없이 달리다가 바로 유턴하여 돌아오면 요동치던 마음도 조금은 잔잔하게 잠재울 수 있음으로.


집에만 있기에 답답한 날은 그저 햇빛을 받고 바람을 느끼고 사람들의 오고 가는 모습과 도로 위의

생동감을 느끼기 위해 집 주변을 따라 배회한다.

운전은 오래 하기 싫고 그렇지만 살아있음은 느끼고 싶으니까.

이것 또한 나만의 산책 같은 드라이브가 된다.


감성이 살아나 책이 읽고 싶고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날은

어느 정도 거리의 공원을 가기도 하는데 눈앞에 그려지는 익숙한 길을 따라 아무 생각 없이

가다 보면 지나치는 나무들의 색깔과 잠시 보게 된 아이들의 풋풋한 모습들에 어느새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몽글몽글 해진 마음으로 정체된 나의 공기를 환기시키고 돌아오면

그나마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집순이의 드라이브란 이런 것이다.

집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거리의 익숙한 장소들.

그리고 언제든 집으로 돌아오고 싶으면 신속히 돌아올 수 있는 거리에 머무는 것.

나에게 드라이브는 과부하가 걸린 머리와 마음을 비우고 오거나 생각을 정리하고 오는 것이 목적이 되어 버린 지 오래이다.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용이자 생각의 비움과 같은 의식적인 루틴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예외도 있다.

마음속이 전쟁 같은 날이다.

이 메마른 일상에 나의 에너지를 나도 모르게 쏟다 보면 어느새 방전되어 기진맥진해 버린

나와 마주하게 된다.

온전히 진심으로 그 모든 것을 살피며 이해하고 나를 내어주는 삶이란 한 번씩 출구 없는 어두운 공간에

갇힌 것 같아서 답답함에 미친 듯이 도로를 내달리다 돌아온 적도 있다.

이럴 때 파란 눈의 이 녀석은 폭발적인 질주를 허락하는 매력을 보여준다.

숨죽이며 사는 나와 호흡을 같이 하며 그 힘을 조용히 숨기고 있다가 과감히 자신의 힘을 발산하는 것이다.

그렇게 파란 눈의 녀석과 함께 달리다 돌아오면 어느새 나에게는 막혔던 숨이 돌아오는 시간이 되어 준다.

조금 더 묵묵하고 조금 더 무게 있는 녀석의 안전지대 안에 숨어 달리다 보면 나는 오히려 편안하고

자유롭다고 느낀다.


우우우우우우 우웅.

그 녀석의 포효소리와 함께 오늘도 집순이의 드라이브는 시작되었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