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엠x6을 탑니다.
마음이 바쁜 날이 있다.
가야 하는 시간에 맞춰서 나온다는 것이 조금 늦어버린 날.
약속된 시간에 가려고 나왔는데도 변수가 생겨버린 날.
그 녀석과 함께 최대한 속도를 내어 보지만 이미 늦어버릴 것 같을 때
나는 두 손으로 핸들을 두드리며 초조함을 감추려고 애를 쓴다.
이미 초조함은 훤히 감지할 수 있을 만큼 드러났는데도 말이다.
보통의 나는 성격이 그렇게 급한 편은 아니다.
오히려 차분하고 조용하며 신중한 편이라고 생각하고 인내심도 제법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운전석에 올라타 핸들만 잡는다고 하면
조금 급해지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총총총 빨리빨리 가야 하는 토끼과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느릿느릿 가는 거북이 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토끼와 거북이 중에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토끼 쪽이 가깝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
차분히 정석대로 남들에게 피해 안 주는 선에서 낄끼빠빠를 하며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짐)
파란 눈의 녀석과 함께 나름 잘 다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토끼과에 가까운 내가 요즘은 이 녀석과 도로에 나가는 게 매우 피로해진다.
거북이과에 가까운 운전자들을 너무 많이 만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운전경력이 20년이 넘다 보니 도로에서 달리는 자동차의 모습을 보면
어느 정도 그 운전자를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되었다.
그런데도 최근 몇 년간은 도저히 눈뜨고 보면서도 한숨이 나오는 운전자들의 모습에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운전을 하는 모습만 보아도 어느 정도 그 사람의 인성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요즘은 속도를 내어 달리거나 밀어붙이기 운전을 하는 사람은 거의 볼 수가 없고
그 대신 도로 위를 점령한 거북이과의 운전자들 때문에 운전을 하면서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예를 들자면,
신호가 바뀌면 집중하고 있다가 빨리빨리 가주어야 뒤차가 한대라도 더 갈 텐데
언제나 신호가 바뀌어도 바뀐 지도 모르고 한참을 서있는 운전자가 정말 많다.
승용차는 높이가 비슷해 앞쪽에 차가 있겠거니 하고 뒤차들도 한참을 그냥 기다리는데
차체의 높이가 있는 이 녀석 같은 경우에는 앞이 훤히 잘 보이는 까닭에
세 번째, 네 번째 줄에 있는 내가 클락션을 울려 줄 때가 많다.
나라고 신호가 바뀌어도 가지 않는 차를 보고 클락션을 울리는 것이 편하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그냥 그렇게 두 눈 뜨고 보고 있다가 또다시 다음 신호를 기다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기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선택인 것이다. 당연히 누군가 해줘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남의 속은 바빠서 타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도로 위를 전세 낸 것처럼 주위의 모든 풍경을
구경하는 거북이과들도 많은데 정말 뒤에서 따라가면서 속이 터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정규속도가 50 키로라면 20에서 30 키로로 느릿느릿 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
달리는 도로 위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규칙들이 있는데 모두 함께 지키는 규칙들을 거북이들은
이곳이 도로라는 사실을 가뿐하게 개의치 않는 것만 같다.
또 다른 예로 길은 도로 위에서 찾는 것이 아니다.
미리 찾아보고 오거나 그래도 못 찾겠으면 비상등을 켜고 갓길에 정차해서 찾으면 되는 일이다.
도로 위에서 여기로 갈지 저기로 갈지 갈팡질팡하며 뒤차를 모두 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거북이들을 보면
초행길이라 모를 수도 있겠다고 이해를 하다가도 너무 심하면 울화통이 터지곤 한다.
이렇게 본인만 생각하고 남에게는 피해 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거북이과의 운전자가
요즘은 너무나 많아진 것 같다.
이것도 시대의 변화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요즘 세대의 운전법이라고 해야 하나.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운전자의 대부분은 초보 운전자도 아니고 젊은 운전자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요즘 왜 이런 거북이들이 많아졌는지 조금 생각을 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본다.
나는 택시운전자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아주 일부의 내가 본 택시 운전자들에 대한 생각일 뿐 비난은 아님)
승객을 태우기 위해 천천히 주위를 살피며 운전하는 것은 그래도 이해하는 편이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 택시들이 승객을 태우고 달릴 때는 너무 갑자기 끼어들거나 클락션을 울려 대며
빨리 가기를 재촉할 때는 정말 한숨이 아닌 욱하는 감정이 올라온다.
대부분은 양보해주려고 하고 도로 위의 규칙을 지키며 운전하려고 하는데 본인들의 규칙을
주장하며 강요하는 것 같을 때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토끼과에 가까운 나는
항상 주위를 살피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고 규칙을 잘 지킨다.
1차선을 달리다가도 빨리 가지 못할 것 같으면 2차선으로 비켜주고 신호를 기다리다가도 뒤에 있는 한대의 차라도 같이 넘어갈 수 있도록 신속히 움직여 준다.
내가 토끼과라 그럴 수도 있지만 이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어느 정도 거북이과에 당하다 보니 운전하는 것만 조금 지켜보아도 감이 오기에 어서 빨리 그 차를 피해서 가는 것이 나의 정신건강에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운전을 할 때 가장 기본적인 양보와 배려를 표현할 수 있는 비상등만 잘 켜주더라도 한결 마음이 누그러지고
나 또한 그 차를 배려해서 기다려주거나 비켜갈 수 있을 텐데 요즘은 비상등을 잘 켜주는 운전자도 없다.
그만큼 남을 생각해 주기보다 본인을 더 생각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도로 위에서 만나는 운전자들만 보아도 요즘 시대의 사람들이 보이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외제차는 자기가 잘난 줄 알더라.
외제차는 끼어들면 끼워 줄 수밖에 없다.
외제차는 끼어들면 끼워 주는데 내차는 안 끼워 주더라.
외제차는 외제차는 외제차는.................
외제차가 많은 지금에는 이제 이런 말은 옛말이 되었다.
외제차라서가 아니라 그냥 외제차를 운전하는 그 운전자의 문제일 뿐이다.
차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사람을 보는 것.
그 사람이 배려를 갖추고 고마움을 알고 따뜻함을 지닌 사람인가가 더 잘 보인다는 것.
나는 사람을 존중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고유한 것들에 대한 존중.
나와 다른 그 사람의 가치에 대한 존중.
존중하는 마음이 밑바탕이 되어 말을 하고 생각을 하고 그 사람을 대하려고 한다.
도로 위에 거북이과의 운전자들은 토끼과에 가까운 나에 대한 존중이 없다고
생각되어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다.
나는 그들을 존중하며 운전하는데 그들은 나의 존중만 받는 것 같아 한숨을 내쉬는 것이다.
신호가 바뀌어도 거북이과의 운전자들은 느릿느릿 넘어가는데
토끼과의 나는 눈뜨고 지켜보면서도 다시 신호에 걸려 한번 더 기다리는 것도 그들을 존중해서
그러한 것이다.
1차선에서 달리지도 않을 거면서 차선을 물고 비켜주지 않아 2차선의 차와 맞물려
추월도 못하는 상황이 되면 나의 시간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답답함과 속상함.
그런 거북이과들의 모습에 지쳐 버린 나는 매번 도로 위를 나가는 것이 답답하다.
오늘도 마음속에 참을 인을 새기며 파란 눈의 녀석의 핸들을 잡아본다.
도로를 전세 낸 듯 다니는 거북이과의 운전자들을 잘 제껴보자는 마음으로.
오늘은 부디 클락션을 울리며 한숨을 내쉬는 일이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 마음이 부글부글하면 파란 눈의 녀석도 덩달아
부릉부릉 하는 것만 같아 작지만 큰 위로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