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엠x6을 탑니다.
언제부터일까.
네일을 하기 시작한 것은.
삶이 공허해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내가 한 줌의 먼지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한해 한해 지나가면서 예전 같지 않은 손을 바라다보며 예뻐지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역할에 충실하여 나를 위해 해주고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느낄 때부터.
굳이 네일을 네일숍에 가서 그것도 그만큼의 비용을 쓰고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키우며 나를 관리하고 꾸미는 것에 소홀히 하지도 않았다.
맨손톱을 그대로 두지도 않았고 집에서 마음에 드는 색깔의 매니큐어를 사서 주기적으로 발라주곤 했다.
나를 위해 쓰는 돈을 그렇게 아끼진 않았지만 어쩐지 네일에 쓰는 돈은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길어봐야 한 달 정도의 주기로 꾸준히 샵에 방문해서 관리받기에는 어쩐지 과소비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특별한 날이거나 여행을 간다거나 하는 소소한 이벤트가 있는 날에만 샵에 가서 네일을 바르곤 했다.
그 정도의 투자는 나를 위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자라나는 손톱과의 간격만큼 여백이 생기는 네일을 바라보며 견디고 견디며
한 달을 꽉꽉 채우고는 집에서 전용 리무버로 어렵게 지우곤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네일을 집에서 이렇게 지우는 것은 손톱이 많이 상한다고 한다.
그런데 집에서 바르는 매니큐어는 아무리 꼼꼼히 발라도 하루 이틀 지나면서 부분 부분 자꾸만
떨어져 나갔다.
밥을 준비해야 하는 주부입장에서 보면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고 쌀을 씻다가 한 부분이
사라진 것을 나중에 알게 되어 찝찝해하기도 했다.
식사를 준비하면서 매번 장갑을 껴야 하는 것도 은근 스트레스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주 가끔 기분전환 겸 네일숍에 가던 내가 조금씩 주기적으로 가게 되었고
그렇게 주기적으로 가다가 점점 습관처럼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한 달에 한번 나에 대한 보상이라는 마음으로.
손톱이 짧고 깔끔한 것을 선호하는 내가 네일을 바른 뒤 한 달을 견디려면 손톱이 길어 나오는 것을
견뎌야만 한다.
그때는 어렵게 어렵게 견디다 한 달을 채우고 가곤 했는데 지금은 3주 정도만 되면 길어진 손톱이
답답해서 물어뜯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그냥 바로 새로운 네일을 바르러 간다.
처음에는 예쁘게 네일을 바르고 사진도 찍고 어디 손을 내밀 때도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에
기분이 좋았다. 그야말로 나의 만족이었다.
일상을 보내며 그렇게 내손을 신경 써서 바라다볼 일은 많지 않은데 운전을 하며
핸들을 딱 잡는 순간 정면으로 내 손이 자연스레 보이게 된다.
그때부터 핸들을 잡은 나의 손은 하나의 시그니처 메뉴처럼 사진으로 남기게 되었다.
녀석의 핸들을 잡은 네일 바른 나의 손.
그것을 바라보는 미묘한 재미가 좋아 네일을 새로 바를 때마다 기록처럼 남겨두곤 했다.
물론 건설적인 힐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들 눈에는 하나의 과시나 자랑처럼 보일 수도 있고.
그건 보는 사람들의 관점이지 나의 관점과는 다르니까 어떻게 보는지는 마음 쓰지 않는다.
단지 나 자신이 그것으로 재미가 있고 힐링이 되는 것이 중요하고
보여주기식 만족이 아니라 내가 보는 만족이라고 한다면 이것 또한 과시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내가 보는 만족이라면 나만 보기 설정을 해두거나 따로 공간을 만들어 모아 두거나
나의 생각을 밖으로 오픈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굳이 왜 그래야 할까.
왜 그렇게 남을 신경 쓰고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쓰고 사진 하나 올리는 것에도
평가를 걱정하며 자유롭지 못해야 할까.
그냥 내가 기록하고 싶은 사진. 내가 보고 싶은 사진과 일상들을 자유롭게 공유하고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뿐이다.
내가 가진 것에 대한 평가. 핸들을 잡고 있는 네일 바른 손의 사진에 대한 평가.
그런 평가와 편견들도 결국은 상대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보이는 것에 대한 본인들의 생각일 뿐이다.
어쩌다 한번 내가 보려고 올린 네일사진으로 아니면 그동안 올린 나의 사진들로 나를 보는 사람들은
나의 생각과 가치와 내면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냥 네일 예쁘게 발랐네. 이렇게 사진 찍는 걸 좋아하나 보네.
그 사진 하나로의 감성으로만 바라봐 준다면 괜찮지 않을까.
나를 단지,
사진 하나로만 본다면 아무 걱정 없는 편안한 삶의 주인공처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보여주는 사진들로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 사람을 어느 정도 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래도 아주 오래 깊고 깊게 그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소복소복 쌓여야 하지 않을까.
내가 가진 것들로 인해 나의 삶은 편안할 거라는 착각은 다시 상처가 되어 나에게 돌아온 적도 있다.
어떤 시간과 어떤 슬픔과 어떤 상념에 나를 흘려보내며 아파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단지 내가 보여주는 사진들과 내가 가진 것들로 내 삶은 편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웃고 있지만 마음으로 울고 있을지도 모를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그 사람에게
나는 그 사람을 단정하거나 보여주는 모습으로만 바라보지 않으려고 마음을 열어둔다.
보여주는 모습 그 이면에 숨겨진 많고 많은 그 사람에 대한 서사를 나는 깊게 알지 못함으로.
내가 모르는 그 사람이 지금 어떤 힘든 시간의 강을 건너고 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함으로.
최대한 다정하고 친절하게 모든 사람을 대하려고 노력한다.
나도 이렇게 슬픔의 무한한 강을 건너고 있음을 조금이나마 들키고 싶지 않으니까.
파란 눈의 녀석과
예쁘게 네일을 바르고 핸들을 잡은 나의 손과
매일 마시는 스벅커피만을 보며
인생 편하게 사는 것 같은 모습의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상담을 받으러 가고
하루에도 몇 번씩 걱정과 불안함에 압박을 받고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고장 나 버린 시계처럼 멈춰 버린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진 것들에 안주하며 흘러가는 시간들에 편안히 기대어
고장이 났지만 고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욱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이렇게 깊은 절망을 이야기하는 내가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네일을 바르고 핸들을 잡은 손의 사진을 보고 나의 깊은 절망을 들여다보기는 어려울 테니까.
밝은 목소리와 씩씩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하지만
내속은 하루에도 수십 번 무너지고 쓰라린다.
왜, 평범할 수 없는지.
왜, 편안할 수 없는지.
왜, 사무치게 공허한지.
이런 내가
예쁘게 네일을 바른 손으로
파란 눈의 녀석의 핸들을 잡으면
이만하면 괜찮은 것 같다는 안도가 나를 지그시
토닥이는 것 같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네일을 바르고
그것에 안도를 느끼는.
편안하고 불편한 삶.
녀석의 따뜻한 핸들을 잡아보며
그 핸들을 잡고 있는 나의 손을 바라보며
나는 항상 자유를 갈망한다.
네일 속의 반짝이는 하트가 온전한 나의 하트이길
언제나 소망한다.
나에게도 이제 그만 하트가 가득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