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를 이탈하겠습니다.

나는 비엠x6을 탑니다.

by 제이

나는 조금 심각한 길치이다.

아마도 공간적 지능을 일부 빠트리고 태어난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수와 거리감각도 부족한 편이라 계산하고 머리 굴리는 것에는 영 재능이 없다.

그래서 네비를 보고 길을 찾는 것도

주차를 하는 것도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겁은 또 얼마나 많은지 내가 경험하고 생활해 본 반경 안을 이탈하려고 도전해 본 적이 없다.

답답함에 몸서리가 쳐져도 나는 그저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그 우물 속만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의외로 대담하기까지 한 면도 가지고 있다.

가령, 큰 접촉사고가 나도 조수석 문으로 기어 나와 우황청심환 한 알을 먹고

그다음 날 말짱하게 돌아다닌 다든지.

일주일 뒤 수리된 차가 나오자마자 아무렇지 않게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든지

하는 것들을 보면 말이다.

안전지대 안을 잘 벗어나지는 않지만 필요하다면 그 안전지대를 언제나 이탈할 수 있는 용기

탑재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나도 늘 다니는 길로만 운전을 할 수는 없다.

한 번씩 새로운 경로를 찾아가야 하는 일이 생기는데 그럴 때면 며칠 전부터 사전 준비를 해야만 한다.

네비를 켜고 도착지를 설정해 보고 이동시간과 내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추천 코스를 살피고

모의주행을 반복적으로 해보는 것이다.

요즘은 거리뷰가 워낙 잘 나와 있어서 모르는 곳은 확대하여 그곳의 구석구석을 확인해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차장을 보는데 주차할 곳이 없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정도로

가장 공들여서 보는 부분이다.

주차공간이 여유가 있는지 내가 주차할 수 있는 반경 안에 있는지 파란 눈의 녀석이 들어가지 못하는

타워주차장은 아닌지 세밀하게 살펴본다.

그러면 이미 새로운 목적지의 경로를 파악하며 내 안에 에너지의 반을 소진하는 셈이다.

나의 생활반경을 벗어나서 도전해야 할 목적지들은 주로

여러 병원과 아이의 학교와 학원이 대부분이다.


병원은 주기적으로 가야 하는 곳은 아니니까 그때그때 경로를 파악하면 된다.

그런데 아이의 학교와 학원은 나에게 새로운 경로가 생기는 것으로 주기적으로 가야 하는 곳이다.

역시나 처음은 네비를 보고 경로 파악을 하고 주차공간을 살피는데 이것은 물론 도움은 되지만

실전상황에서 변수가 많이 생긴다.

네비가 말해주는 동선과 차선변경과 몇 미터 앞의 도착 지점들은 막상 운전대를 잡고 새로운 경로 위를 달리는 나에게는 미지의 세계에 들어간 것처럼 버겁기만 한 상황이었다.

네비 위로 펼쳐지는 몇 미터 앞의 미션지점들은 코앞에서 놓치기 일쑤였고 여러 차선이 겹친 구간에서는

좌회전선이 아닌 직진선에서 기다리다 갑자기 끼어들지 못해 그대로 직진을 해야만 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한반복되는 -경로를 이턀했습니다-라는 냉정한 답변을 들으며

경고등이 울리면 그때부터 나는 눈앞이 하얘지고 당황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파란 눈의 녀석도 이런 상황 속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핸들을 잡고 있는 내가 당황하여 어찌할지 모르는데 이 녀석이라고 차분하게 상황을

관망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찌어찌 네비가 가르쳐 주는 우회도로를 돌고 돌아 골목길을 진땀 나게 통과하거나

다시 어렵게 어렵게 유턴하여 정상경로로 돌아가는 방법만이 경로를 이탈한 이 상황을

종료시켜 주는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이런 어이없는 상황을 여러 번 경험하다 보니 어리버리한 나에게 헛웃음이 나올 때도 정말 많은데

그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어이없는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나에게는 여러 새로운 경로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집 근처 학교만 다니던 아이가 일반고가 아닌 특목고에 진학하게 되면서

나는 남모르게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야자가 필수인 학교. 아파도 병원 한번 가기도 힘든 학교라는 빡빡한 소문에

아이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필요시 픽업을 하기 위해 학교의 동선과 학원의 동선을

언제나처럼 네비를 보며 눈에 익혔다.

하지만 이과정이 도움은 되겠지만 길을 파악하는 것에 아주 작은 시작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 학교를 가야 할 때는 남편이 운전하는 경로를 조수석에 앉아 하나하나 관찰했다.

이제야 말하지만 나에게 네비라는 것은 하나의 연습테스트에 불과한 존재였다.

나는 같은 길을 5회는 반복해야 어느 정도 익혀지는 아주 이쪽으로는 젬병인 사람인 것이다.

그 좋은 네비를 두고도 내가 운전해서 가는 길을 눈으로 외우고 외워서 그 길을 따라 나의 경로를 만드는

아주 초아날로그적 방법을 구사하는 사람이었다.


학교를 찾아가는 길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혼란스러웠다.

나름의 방법을 찾아 차가 밀리지 않는 최적의 동선을 파악했는데 처음 몇 번은 지하로 내려가는 차로를

놓치고 지상차로로 올라가 다시 한번 멀고 먼 시내까지 나갔다가 진땀 빼고 돌아 나오기도 했다.

요즘은 차를 유턴하기도 어려운 게 도로에 유턴차로도 별로 없어서 골목길을 구불구불 헤매다 다시 나오거나

유턴차로가 있는 곳까지 하염없이 길고 긴 여정을 떠났다가 컴백하여야 했다.

이렇게 경로를 이탈한 상황에서 하염없이 길고 긴 여정을 떠나는 나를 보고 있노라면

그 답답함과 한심함에 머리를 콩콩 쥐어박고 싶은 적도 많았다.

그나마 혼자면 다행이지만 조수석에 아이를 태우고 경로를 이탈해 머나먼 여정을 떠날 때면

엄마의 모자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아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이런 엄마의 어처구니없는 모습들을 여러 번 목격한 아이는 엄마는 길을 찾는 것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아이가 네비를 확인하고 재빨리 길을 가르쳐주곤 했다.


사건의 그날은

아이의 학원을 데려다주고 집으로 오는 길이였는데 4차선 도로에서 아무 생각 없이 앞차를 따라 직진하다

아주 길고 긴 터널을 넘어 돌아올 수 없는 강건너까지 가버린 것이다.

하필 저녁이었고 초행길이었고 네비를 켜도 파악할 수 없는 경로 안에 나는 무방비상태로 갇혀버렸다.

차를 정차할 곳도 마땅치 않아 일단 네비가 가르쳐주는 대로 쭉쭉 가다 보니 집과는 아주 먼 곳까지 멀어져 버렸고 낯선 곳 낯선 이정표들로 가득한 생소한 도심 한복판에서 나는 내내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울먹이며 이정표에 보이는 이름들을 나열했고 주위의 특정건물을 설명하여

겨우겨우 그 생소한 굴레의 길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지금은 수없이 오가며 익힌 길이라 눈감고도 갈 수 있는 경로이지만 그때의 나는 나의 경로를 이탈하여

돌아오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멀리 가버리는 것 같았다.

10분이면 도착할 거리의 집을 정확히 1시간 20분 만에 돌아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안전지대를 벗어난 이탈.

그 이탈로 인해 어떤 상황에 놓일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다시 안전한 경로를 찾기 위해 연습하고 연습하는 나.


내가 모르는 곳.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열망은 있으면서

준비 없이 그 길을 나설 용기는 내지 못하는 나.

도전하고 경험하고 가보아야 알 수 있는 그 모든 것들에

나는 미리 그 모든 문을 닫아버린 것은 아닐까.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라는 그 불확실성안에 놓여 본 적이 없는 나의 삶.


태어나고,

걸음마를 하고,

유치원을 가고,

학교를 다니고,

사춘기를 겪고,

대학교를 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이 없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고.


뻔하게 시간의 흐름대로 살아가야만 하는.

남은 숙제를 하나하나 해나간다는 마음으로.


나를 위해

심장이 뛰어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모두 알아가기 전에

이미 매끄럽게 닦인 아스팔트길을 따라

순조롭게 이동한 것만 같은 헛헛한.


나를 위해 살았다면서

정작 나는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이제 그만 이 안전한 경로를 이탈해도 될 것만 같다.

수없이 이탈하고 싶었던 순간들을 지나고 견디며 슬퍼했던

나에게

이제 그만 이 경로를 이탈하길 바란다고 간절히 부탁한다.


길치에 겁찔이에 네비 보는 것은 영 소질 없는 나에게

길을 잃어보고 시간이 걸려도 다른 길로 가보고 겁이나도 해보고

내가 가진 고유한 것들은 어떤 것들인지 차근히 발견해 가는

그런 가슴 뛰는 새로운 경로를 만들어 주고 싶다.

매끄럽게 닦인 아스팔트길을 벗어나 파란 눈의 녀석과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을 미친 듯이 흔들리며 달려 보고 싶다.


앞으로의 나는

나로 가득한 내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라니까.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