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번, 참새가 들리는 방앗간

나는 비엠x6을 탑니다.

by 제이

나에게는 오래된 친구가 있다.

그 상대가 사람이 아니라 살짝 안타깝지만 한결같이 내 곁을 지켜주며 나의 공허와 슬픔을

지켜봐 준 오랜 절친.

사람보다 편하고 사람보다 위로받는.

그건 커피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언젠가부터

관계를 만드는 것도, 그 관계를 이어가는 노력을 하는 것도, 내가 아닌 상대방의 마음을 읽으며

노곤노곤 지쳐가는 나를 보는 것도. 딱 모두가 하기 싫어졌다.

하기 싫은 만큼 나는 마음속에 깊고 깊은 우물을 파기 시작했고 그 우물 속은 계속해서

더욱 깊고 깊어졌기에 나는 결국 혼자를 선택했다.


원래도 혼자가 편한 성향이기도 하고 사람들 사이에서의 나는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항상 배려하고 애쓰는 마음을 장착한 채 쏘쿨한 사람처럼 힘을 줘야 했기에 그런 척하는

모습의 나를 이제 자유로이 놓아주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혼자가 되어버린 나는 나의 마음을 털어낼 유일한 친구로 커피를 선택했다.

오랜 시간 커피를 너무 좋아하기도 했고 그 한잔의 커피가 열 명의 친구보다 편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와 그 친구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어 시절인연처럼 건너가 추억을 더듬는다 해도 나에게는 거리낌 없이 무구한 존재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절대적인 절친에 관한 사설이 길었는데, 아무튼 나의 루틴에 언제나 변함없는 그것은

이 친구를 만나러 스벅을 들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출근 도장 찍듯 하루에 한 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동네 스벅의 드라이브 스루를 꼭 가야만 한다.


이 파란 눈의 녀석을 만나기 훨씬 전부터도 그랬고 그 훨씬 전전부터도 나의 스벅사랑은

계속되어 왔으니까 이만하면 설명은 충분한 것 같다.

집을 나서서 5분 거리에 있는 동네스벅까지는 대략 신호를 3개 정도 받아야 도착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한큐에 갈 수 있지만 신호마다 걸리면 번거롭기까지 한 움직임과 멈춤을 반복해야

하는 여정이 되기도 한다.

어쩌겠는가. 목이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커피라는 친구가 고픈 내가 찾아가야 하는 것을.


오늘도

언제나 그렇듯 우렁찬 소리의 그 녀석을 깨운 후 잠시 출발 전 심호흡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녀석에게

주고 나는 스벅앱을 빠르게 들어간다.

그리고 나의 고정친구인 아아 에 얼음 많이 돔리드로 변경하여 그란데 사이즈로 사이렌오더를

준비하면 오늘의 루틴도 빠르게 완성되는 것이다.

출발의 액셀을 밟고 주차장을 벗어나 아파트 출입문을 나서면 첫 번째 신호가 보인다.

대부분 이 신호는 기다려야 한다고 보면 되는데 보행신호와 겹쳐져 운 좋게 기다리지 않고 넘어가기란

영 확률적으로 낮은 편이기 때문이다.

그다음 신호는 한큐에 넘어가는 시스템이라 엇박자로 걸릴 가능성은 희박하다.

문제는 좌회전을 해야 하는 다음 신호인데 여기서도 99.9프로 기다려야 해서 이쯤에서

세팅해 둔 커피를 사이렌 오더 한다.

정해진 국룰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나는 입력값이 설정된 로봇처럼 정상작동 하는 것이다.

집을 나서면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 듯 스벅은 그냥 자동통과의례라고 보면 된다.


이런 나를 보는 가족들은 스벅에 지분 가지고 있냐부터 스벅에 한 달에 얼마를 쓰냐. 등등 관심 어린 간섭을 하기도 하고 특히 남편은 여태 스벅에 기여한 돈으로 자동차 한 대를 샀겠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주기적으로 내게 들려주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허무맹랑한 소리가 어쩌면 말이 될 수도 있겠는데라고 인지가 되는 순간부터 나도 뜨끔하여 과도한 짜증과 리액션으로 남편의 입을 단속하는 중이기도 하다.

대체적으로 하루 한 번이지만, 간혹 하루 두 번이 될 수도 있는 날들도 있어 나는 더욱 뜨끔뜨끔한 중이다.

그나마 다행으로 그 후유증인지 노화의 시작인지 알 수 없지만 저녁의 커피가 나의 수면을 방해하는 증상이 나타나면서부터 하루 두 잔으로 커피와의 만남을 자제하게 된 편이다.

왜 그 많고 많은 커피점 중에 스벅이냐고 묻는다면

스벅의 그 분위기. 접근성. 편리함. 대중화된 커피맛이 좋다.

세계 그 어느 곳을 가더라도 내가 기억하는 그 커피맛과 그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커피점은

스벅이 유일무이하다.

그 어느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간다고 해도 스벅의 초록간판을 발견하면

낯설음에 서성이던 마음도. 여기저기 애를 써서 닳은 방전된 마음도 모두 한순간에 안도와 생기를 되찾는다.

나에게 커피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저 그런 커피가 아니기 때문이다.


힘든 마음을 나눌 수 없어 절망과 함께 몸부림칠 때도

손 내밀어 위로받고 싶은 간절하고도 간절했던 시간에도

내 안으로 슬픔을 꾹꾹 눌러 담아 나의 모든 것이 눈물이 되어 흐르던 순간에도

언제나 엉망진창인 채로 그 드라이브 스루를 돌아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던 곳.

여전한 익숙함과 여전한 친절함으로 나에게 커피라는 친구를 건네주었던 곳.

그 커피 한잔으로 나는 그 수많은 날들을 견디고 견디어 오늘의 나를 지킬 수 있었다고 믿는다.

이 든든한 파란 눈의 녀석에게 묻혀 창문을 스르르 내리기만 하면 커피를 주는 그런 마음 편한 곳은

세상 그 어느 곳에도 내게는 없다.

그러니 참새가 방앗간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참새에게 방앗간은 없어서는 안 될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는 곳일 텐데.


나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파란 눈의 이 녀석과 함께 스벅에 지분 있는 여자처럼 들락날락할 예정이다.

그리고 오늘도 나의 오래된 닉네임 앞에서 살짝 고민해 본다.

참새라고 할까.. 아님 방앗간이라고 이름을 바꿀까....... 그것도 아니면 파란 눈의............ 비엠?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