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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쾌재 Aug 10. 2022

그리움은 사진을 타고

달력에 사진을 담다

둘째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오늘은 아이가 방학을 하는 날이다. 그러고 보니 나의 육아휴직도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간다. 낯설기만 하던 육아와 살림이 이제 제법 자리를 잡았다. 어린이집에 도착해 호출을 하고, 곧이어 아이와 선생님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이의 가방을 건네받는다. 오늘따라 가방이 묵직하다.

   

집에 돌아와 아이를 씻기고 가방을 열어 본다. ‘우리 아가, 가방에 뭐가 잔뜩 들어있네. 뭐가 있는지 볼까’ 가방 안에는 이것저것 가득 담겨 있었다. 한해를 정리하며 그 동안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활동했던 것들을 모아둔 모양이다. 하나하나 꺼내 정리를 하는데 탁상 달력이 눈에 띄었다. ‘어린이집 홍보 달력인가 보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달력 표지에는 커다란 상자에서 노란 귤을 하나 꺼내 들고 배시시 웃는 우리 아이의 모습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달력을 한 장 한 장 넘겨보기 시작했다. 각 달마다 아이가 즐겁게 활동한 것들이 사진에 담겨 달력과 함께 새겨져 있었다.

   

애교 섞인 눈웃음을 지으며 자신이 그린 그림을 들고 있는 1월의 아이, 팔과 다리를 쭉 뻗고 스트레칭하는 2월의 아이, 요리사가 되어 맛있는 토스트를 만드는 3월의 아이, 야외에서 자전거를 타며 열심히 발을 굴리는 4월의 아이, ‘엄마! 아빠! 사랑해요’ 라고 쓰여진 팻말을 들고 웃는 5월의 아이, 푸르른 녹음 속에 신기한 듯 토끼풀을 쥐고 있는 6월의 아이.     


형형색색 풍선을 잡고 양 손을 하늘 높이 펼쳐 든 7월의 아이, 보라색 색종이로 한 알 한 알 붙여 만든 포도송이를 들고 웃는 8월의 아이, 귀여운 허수아비가 되어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9월의 아이, 붉은 망토에 왕관을 쓰고 임금님이 된 10월의 아이, V자를 그리며 한껏 포즈를 취하고 있는 11월의 아이, 산타할아버지 옆에 앉아 선물을 받고 좋아하는 12월의 아이까지.

   

엄마, 아빠가 함께 하지 못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아이는 이렇게 자기의 세계를 만들고 있었구나.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비록 마스크는 쓰고 있지만 아이의 행복한 모습이 전해져왔다. 내가 달력을 넘겨보는 동안 아이도 신이나 “아빠! 이건 내가 운동하는거야, 이건 요리하는거야, 산타할아버지랑 사진도 찍었어.”를 외쳐대며 나의 품에 안겨온다.

   

적지 않은 이 과정을 지켜보며 함께 해주고, 꼼꼼히 사진을 챙겨 아이 하나하나마다 각자의 달력을 만들어주었을 선생님을 생각하니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를 위해 또 엄마 아빠를 위해 이보다 좋은 선물이 또 있을까.

   

문득 고향에 계신 양가 부모님께 보낼 달력 만들기를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가 돌을 지낸 그 해 말쯤 아내가 아이의 사진으로 달력을 만들겠다고 했다. 부모님께 자주 내려가 뵙지도 못하니 그렇게라도 해서 손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채워드리자는 것이다. 나는 단번에 좋은 생각이라며 아내의 등을 떠밀었다.

   

그동안 찍은 사진들을 체크해 가며 달력에 넣을 사진을 선정했다. 자연스레 이때는 어디에 가서 뭐하고, 저때는 어디에 가서 뭐하고 하며 아이와 함께한 시간들이 소환되었다. 누워 있던 아이가 기기 시작하고, 어느 새 아장아장 걷고, 반짝이던 머리에 거뭇거뭇 색이 입혀졌다. 웃고, 울고, 찡그리고, 삐죽거리고, 힘을 쓰듯 인상을 찌푸리고 역사가 이야기가 되어 펼쳐졌다.

   

사진을 선정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이 사진을 고르면 저 사진이 걸리고, 저 사진을 고르면 또 다른 사진이 눈에 아른거렸다. 아내와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진이 달라 티격태격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기도 했다. 그렇게 사진을 고르고 벽걸이형과 탁상형 두 종류를 주문해 양가 부모님께 보냈다. 우리 역시 달력을 받아보았다.

   

달력을 받아 본 어른들은 늘 곁에 두고 볼 수 있어서 좋다며 굉장히 만족해 하셨다. 그렇게 지나온 아이의 이야기가 앞으로 올 시간과 함께 새겨졌다. 이후에도 매해 사진이 담긴 달력을 만들어 보내드렸고 둘째가 태어난 이후 그 이야기는 더 풍성해졌다.

   

시간의 물줄기를 따라 지나오는 우리의 흔적. 그 흔적의 의미는 기억하는 이의 몫이다. 사진은 우리 삶의 흔적을 기억으로 바꾸어 주는 도구이다. 희노애락의 표정 속에 담겨진 온갖 이야기는 그리운 이들의 영역에서 더욱 절실하다. 절심함이 만든 빈 공간을 채워나가는 것, 그것이 오늘도 사진을 찍는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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