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센세 May 28. 2023

좋아하는 우물쭈물

 “아니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되는데, 가장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사거리를 건넜어. 와 이거 엄청난데.”


 한참을 웃어대면서 여전히 허당인 대학 시절 후배를 따라 걸었다. 조금은 긴장되어 두근대던 심장도, 한결같은 후배의 모습에 터진 웃음으로 원래의 리듬을 되찾았다. 그래, 완벽하게 찾아갈 필요는 정말 없지. 낄낄대며 향하는 곳은 후배 동생의 집. 동생 커플의 웨딩사진을 찍으러 가고 있다.


 “초점도 안 맞고 노출도 안 맞은 사진인데, 도대체 왜 그냥 좋은 거지?”


 대학교 사진 동아리 시절, 한 선배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게다가 그 선배는 내가 동아리 내에서 가장 멋진 사진을 찍는다고 생각하는 형이었고, 그 사진은 방금 들어온 따끈따끈한 신입생의 사진이었다. 하지만 그 엉뚱한 말이 엉뚱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 이미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정에 솔직하고, 두근대는 에너지가 가득한 그 후배의 사진을 보며 한 번에 매료되고 말았다. 동시에 아직도 수년째 헤매고 있는 소심하고 어정쩡한 내 사진이 떠올랐고, 잘 찍고 싶어서 도서관과 인터넷을 뒤지며 얻은 이론과 기술이 파릇파릇하고 눈부신 재능에 빛바래는 것만 같았다. 나에게 없는 펄떡이는 사진 속 에너지가 부러웠다.


 “저는 호센세 사진이 제일 좋은데!”


 어느새 시간이 흐르고 흘러 그 신입생 장인되었고, 이제는 후배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되었다. 거참. 둘 다 상상하지 못한 일인데. 잠시 사진을 공부하기도 했고, 너무나 멋지고 부러운 사진을 찍었던 후배인데, 갑자기 서른의 자기 자신을 남겨두고 싶다고 나한테 사진을 부탁한 것도 벌써 몇 년 전이다.


 나는 줄곧 내 사진을 ‘우물쭈물’한다고 표현한다. 이야기가 궁금하지만, 직접 손을 내밀어 들어가는 건 못하겠다. 하면 안 될 것만 같다. 오히려 궁금한 이야기 앞에서 한두 걸음 더 물러나서 관찰하게 된다. 그런 모순 앞에서 갈팡질팡하며, 조용하고 소심한 내 사진은 확실히 우물쭈물한다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 그래도 이제는 그 우물쭈물한 사진이 좋다. 명료하고, 화려하고, 팔딱이는 에너지는 없지만, 내가 사진을 찍으면서 조금씩 쌓아 올려온 시각이다. 사진에는 그 사진가가 그동안 살아오며 느낀 생각과 감정이 담긴다고 하는데, 그 우물쭈물함은 내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의 그런 우물쭈물함 역시 이제는 좋다.


 “저는 제 사진이 우물쭈물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게 그렇게 싫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제 사진의 특징이자 좋아하는 부분이에요. 그동안에 상담받으면서 저 자신이 굉장히 갈팡질팡하며 힘들어했다는 걸 알았는데요. 물론 결정한 대로 밀어붙이는 것도 필요한 자세이지만, 무엇이 옳은 건지 우물쭈물하며 고민하는 것 역시 저의 특성이자 좋은 점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제 하산하셔도 되겠어요.”


 요즘 고민하던 생각을 풀어놓은 나의 말에 심리상담사님은 너무나 자기 일처럼 좋아하시며 따뜻한 미소로 답하셨다. 확실하고 단정적인 길을 가는 건 아무래도 내 스타일은 아니다. 고민하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다른 것뿐이니깐. 그리고 그런 다양함이야말로 세상의 풍부함이니깐. 우물쭈물한 내 사진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처럼, 우물쭈물한 나의 태도 역시 세상에 필요할 수 있다. 마지막 심리상담은 그렇게 끝났다.


 내 스타일상 아무래도 직접적으로 사람을 앞에 두고 찍는 사진은 어렵다. 그래도 내 사진을 알아봐 주는 지음(知音) 같은 친구의 부탁. 게다가 이런 경험이 더 풍부한 시각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 하지만 내가 과연 잘 디렉팅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 후배도 같이 찍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오랜만에 후배의 사진도 궁금하고. 혹시 모르니 보험도 들고. 겸사겸사.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생 커플과 함께 집 안에서 사진을 찍고,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찍고, 좀 더 걸어 나가 가양대교에서도 찍었다. 화려하고 눈부신 이상적으로 보이는 웨딩 사진을 나는 아무래도 찍을 수 없다. 대신 우리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 핀 꽃 앞, 단지 사이에 있는 초록빛 공터, 알 수 없는 디테일을 가진 기묘한 지하 주차장 입구, 오래된 아파트 상가의 계단, 가양대교의 난간 앞을 찾아갔다. 조용하고 단출하지만 생활의 공간들이 묻어나는 것이 좋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동생 커플의 모습도 삶의 공간도 달라지겠지만, 처음을 함께한 공간들과 같이 담긴 사진을 볼 때 언제든 첫 순간으로 기억 속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사진이 되면 좋겠다.


 후배의 든든한 디렉팅 덕택에 나도 같이 조용히 풍경을 담았다. 사진 안 찍는다면서 역시 잘해. 찍는 사람들이 더 신나서 열심히 찍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찍다 보니 은근히 노곤해진 몸뚱이. 하지만 묘하게 또렷해진 머릿속. 가져온 필름을 모두 소진하고 동생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위로는 어느새 하늘이 저녁 빛을 듬뿍 머금고 있었다.


 “아 맥주 마시고 싶다. 은근히 힘드네요.”


 후배의 나른한 말에 묘한 기시감의 원인이 떠올랐다.


 “어 이거 약간 신인전 준비할 때 사진 찍고 동방으로 돌아갈 때 느낌인데!”


 그렇게 십여 년 만에 찾아온 감각에 우리는 낄낄대며 동생의 집을 나섰다.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역시 인생은 알 수 없는 일투성이다. 그래, 그랬던 순간이 또 있었지. 필름을 잔뜩 가지고 암실로 향하며 ‘제발 오늘 한 장이라도 건졌길!’이라고 빌었던 신입생 시절처럼, 오늘 찍은 필름을 바라보며 똑같이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그나저나 후배가 남자친구한테 빌려온 이 카메라 왜 필름이 안 감기지? 여태 후배가 찍은 사진 날리면 안 되는데!


2022.





작가의 이전글 두 눈이 다시 근질근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