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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급한 선수 Jun 03. 2023

<돈 룩 업>

230605 마감

-질문

1. 행동의 이유는 무엇인가?

2. 언제 사랑에 빠지는가?

3. 우리는 대화하고 있는가?

4. 좌절 이후에는 무엇이 남는가?

5. 옳고 그름과 나는 무슨 상관이 있는가?


-숙제를 마쳤으니 감상을 정리해봅시다.

문득 잔을 집어던지고 싶은 생각이 든다. 펜네파스타와 피자를 먹으면서 간만에 자발적으로 맥주를 마시는데, 먹던 맥주잔을 집어던지는 상상을 한다. 물론 그러진 않겠지만, 동시에 그럴거 같아서 무섭다. 영화를 보면서서 습관처럼 콜라를 마시다가, 내가 이 잔을 모니터에 던져서 모니터가 고장나면 새로운 모니터를 사야하는데 이번에는 대기업 모니터로 써볼까 하는 상상을 한다. 찻집에 가서 차를 마시다가, 찻잔 속의 차가 참 이쁘다는 생각을 하다가, 잔이 너무 가냘프다는 생각을 하다가, 잔을 던져버릴 거 같은 두려움에, 손에 힘이 들어갔다가, 이 힘 때문에 잔을 깨먹겠다 싶어서, 손에 들어간 힘을 일부러 빼낸다.

거지같은 꼰대들. 문득 동화되려고 노력하고 있는 자신을 느끼고는 다시 다짐한다. 내가 다시는 회식에 오나 봐라. 신기하게 맥주가 더이상 역겹지 않았다. 그래서 더 싫었다. 거지같은 내 자신. 거지같은 세상. 참 거지같다. 생각 속의 나와 거울 속의 나와 현실과 미래와 고민과 믿음과 주저함과 급발진과 알 것만 같은 기분과 알지도 못하면서 거들먹거리는 모습. 이렇게 생각이 증식하는 날에는 생각이 통각을 잡아 먹는다. 이게 별 일인지, 별 일이 아닌건지, 잘 모르겠다. 다행스럽게도 아무렇지 않다.

지구가 망한다는데, 세상은 미쳐돌아간다. 아니지. 지구가 망하니까 세상이 미쳐돌아가는게 당연하다. 그러니까 <돈 룩 업>은 정말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웃기다. 정말 당연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다니. 지구가 망한다는데, 무시를 당하건, 이용을 당하건, 불륜을 하건, 폭동이 일어나건, 그 와중에 돈 벌 궁리를 하건, 당연한 게 너무 당연하게 지켜지지 않건, 그 와중에 훈훈하게 가족이 재결합하던, 뭘 하건 알 바 아니지 않나?

너무 지루해서 움직일 핑계가 필요했다. 그래서 정수기에 물을 마시러 갔다. 가는 길에 잔을 놓쳤다. 던져보지도 못하고 잔을 깨먹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잔이 떨어지는 동안 두려웠다. 생각보다 잔이 깨지는 게 무서운가 보다. 근데 잔이 안 깨졌다. 바닥재가 속이 비어있어서 통통 하고 튕기고 만다. 생각보다 잔이 튼튼한가 보다.

세상의 종말에도 불구하고, 너무 뻔뻔하게 가족이 재결합한다. 게다가 몇몇 사람이 더 추가되어서 확장된 공동체를 형성한다. 세상에 종말이 오는 와중에 조금 뻔뻔하면 또 어떤가. 세상에 종말이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조금 뻔뻔하면 또 어떤가. 그리고 세상은 끝이 난다. 세상이 끝나면 또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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