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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급한 선수 Jul 23. 2023

멍청한 DNA야 고마워

이제 좀 깨어나주지 않을래?

<이터널 선샤인> (2004)


 우리의 연애는 성과 없음으로 가득하다. 소모적인 순간의 연속이다. 서로의 마음을 견주고, 다 큰 거 같으면 서운하고, 더 작은 거 같으면 부담스럽다. 물에 잉크가 떨어지는 순간,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물이 검게 변해가는 걸 막을 수 없다. 잉크를 주워 담으려고 애쓰다가 문득, 이러려고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이제야 물인지 모를 액체를 버리고 한동안 비어있다가, 물이 차고 잉크가 방울 맺히다가 떨어지는 순간의 반복.


 라쿠나의 직원들은 기만적이다. 하워드는 메리에게, 패트릭은 클레멘타인에게, 메리는 자신에게, 그리고 스텐은, 스텐은 모두에게 기만적이다. 이들의 모습은 사업이 기만적이라는 걸 보여준다. 슬픔을 지워서 기억에서 벗어나는 일이 불가능하고, 사실 기억의 원인은 슬픔에 있지 않다.


 기억은 슬픔에서 유발하지 않는다. 조엘의 기억 속에서 나온 클레멘타인이 사실 조엘 본인인 것처럼 기억은 자기 완결적이다. 조엘은 상대가 마음에 들어도 밀어낸다. 바쁜 일이 있다고 말하는 모습이 마치 자신을 손에 꼭 쥐고 놓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 같다. 라쿠나 사의 위협을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자신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이제야 들여다보는 까닭은 그 속에 아무것도 없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조엘의 기억은 아무것도 없음에서 기인한다. 슬픔은 아무래도 좋고 그저 들키고 싶지 않음이다.


 알면서도 반복하는 건 DNA 때문이다. 멍청한 DNA 때문에 맞으면서도 계속 들이댄다. 아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맞는 건 멍청하기 때문이다. 사실 DNA 덕분에 계속해서 위협을 마주할 수 있다. 잠에서, 기억에서, 자기기만에서 깨어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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