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놈이라는 명제는 참인가?
<빈센트 머스트 다이> (2023)
'이유 없는 억까'라는 표현은 동어반복이다. '억까'라는 말이 이미 부조리함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동료에게 이유 없이 얻어맞은 빈센트는 가해자와 동행한 경찰서에서 가해자의 의도 없음에 주목한다. 그는 깽값으로 술 한잔 같이 하는 걸로 사건을 무마하고 가해자를 고발하지 않는다. 직장 동료들의 공포 어린 시선을 레드카펫처럼 깔고 도달한 매니저와의 면담에서 그는 사무실에서 쫓겨나 재택근무를 강요받는다. 사실 이전에도 직장 동료에게 얻어맞은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는 가해자가 인턴이었고, 그 인턴쉽을 종료하는 것으로 적당히 넘어가라고 강요당해서 여차저차 넘어갔다. (심지어 강요하는 사람이 전여친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빈센트가 사무실에서 쫓겨나는 순간에도 그 인턴이 계속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해자는 모두 남고 피해자만 쫓겨나는 형국이라니.
사건에 대한 상담을 진행하던 중에 기분 나쁜 느낌을 흘리는 상담사가 개 이야기를 꺼낸다. 한 번 얻어맞은 경험이 있는 개는 공포를 질질 흘리고 다니는데, 무리의 나머지 개들은 흘린 공포에 놀라 다시 공포에 질린다고 한다. 그리고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얻어맞은 개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빈센트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은 개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공포가 개와 사람을 차별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의도가 없다는 지점에서 개와 사람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무실에서 쫓겨나 거리로 나갔더니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차로 밀어버리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며,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던 사람이 차에 치이는 사건도 있고, 건너편 건물에서 담배를 피우던 사람이 재떨이를 던지는 일도 있었다. 가장 최악이었던 일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에게 공격을 당한 것인데, 물려든 사람 모두가 달아오른 감정에 몸을 맡기고 빈센트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개든 사람이든 말이 통하지 않는 건 매한가지다.
이 모든 폭력을 견디다 못한 빈센트는 시골의 별장으로 도망간다. 그곳에서도 사람과 마주하는 매 순간 폭력에 노출되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몇 가지 변화가 생긴다. 우선 유사한 형태로 타인의 폭력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을 마주한다. 그를 통해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알게 된다. 빈센트가 직면한 상황은 일종의 사회적인 현상이었다. 특이한 점은 그 커뮤니티에 가입하려면 인터넷상에 남아있는 흔적을 지우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제 빈센트는 데이터 쪼가리를 통해서 공포를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일까? 커뮤니티에서 얻은 조언대로 개를 구한다. 빈센트가 고른 개는 아무래도 선별적으로 짖는 능력이 있는 것 같은데, 짖기 시작하는 시점은 타인이 가해자로 변하는 순간, 그러니까 통제력을 상실하고 의도 없음의 행동을 저지르게 되는 순간이다.
전여친과의 이별 이후로 인터넷을 매개로 만남을 추구해 왔던(성공적이지는 않더라) 그가 사람과의 대면을 통해서 사랑을 느끼게 된다. 안타까운 점은 사랑이라는 감정과 별개로 폭력은 여전했다는 것이다. 빈센트가 얻어맞기도 하고, 줘 패기도 하면서 둘은 계속 붙어 있는다. 사랑을 참 지독하게 형상화했다. 관계의 지속을 위해 그는 폭력의 통제를 시도한다. 적어도 손은 쓸 수 없도록 수갑을 채운다. 처음에는 군대식 해결책이 아닌가 싶었는데, 문득 개한테 입마개를 채우는 모습이 떠올랐다. 개와 공포와 군대는 동일한가?
커뮤니티를 알려준 선배는 자신이 폭력에서 해방됐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곧 가족에게 거부당한 사실을 전하면서 대피소의 위치를 남기고 사라진다. 그리고 빈센트는 도피할 수 있는 별장을 제공했던 아버지를 별장에서 다시 만난다. 아버지는 몹시 공포에 질린듯한 모습이었고, 직감적으로 온 세상이 공포에 절여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 빈센트가 아버지의 선배가 될 차례인 듯하다. 그래도 그 선배보다 나은 점은 빈센트를 거부하지 않는 사람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버지와 연인을 철사와 수갑으로 통제한 채로 대피소로 향한다. 도로는 이미 아비규환이 되어 있고, 아버지는 분노에 가득 차서 철사를 풀고 뛰쳐나간다. 밖에는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데, 개가 더 이상 짖지 않는다. 빈센트도 더 이상 폭력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아버지는 찾지 못한 채 빈센트는 연인과 함께 길을 나선다. 상실감 때문에 멍하게 따라오고 있는 줄 알았던 빈센트가 갑자기 가해자로 돌변해서 연인을 줘 패기 시작한다. 소중한 것을 잃은 탓일까? 아니면 스트레스가 임계치를 넘겼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지 피해자에서 벗어났기 때문일까? 중요한 것은 연인과의 관계가 역전됐다는 것이다. 역전된 관계에서 빈센트는 고분고분하게 자신을 연인에게 맡기고 시각을 제한하는 조치를 받아들인다. 개는 인간과의 공존을 위해서 무엇을 포기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