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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급한 선수 Oct 15. 2023

쩐내와 감칠맛 중에서 어디가 앞면일까요?

앞면과 뒷면은 있다 보니까 가족이 되어버린 걸까요?

<태풍이 지나가고> (2016)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답게 가족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그의 가족 영화는 대부분 탁월하지만 이 영화는 특히 가족의 지긋지긋함이 탁월하게 드러난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장소가 할머니 집인 만큼 영화 전반에서 할머니 집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난다. 세월이 스며들어서 나는 냄새. 들어갈 때마다 당혹스럽지만 왠지 모르게 가끔 생각이 난다. 그래서 이 냄새를 호와 불호 중에 어디로 분류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간혹 국물에서 쩐내가 나는 국숫집이 있다. 한 번 우려낸 육수가 오랜 시간 쓰이지 않고 남아 있는 경우에 생기는 문제점이다. 장사가 안 되는 집에 좋은 퀄리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하다 싶지만 이런다고 가게 형편이 개선되지는 않을 텐데. 회전이 잘 돼서 국물 상태가 좋은 건지, 국물이 좋아서 손님이 많이 오는 건지, 내 가게가 아닌 이상 뭐가 먼저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최근 합법적으로 농땡이가 가능한 시간이 있어서 직장 동료들과 함께 파스타 집에 갔다. 평일 점심에 직장 밖에 나온다는 것만으로 충분했지만, 그 집의 엔초비 파스타는 언제 먹어도 확실했다. 처음부터 강렬한 감칠맛이 만연한 것이 이게 유럽멸치 젓갈의 매력인가 싶다. 절대 집이랑 가까워서 그 가게를 가자고 한 것이 아니다. 여기가 맛집이라서 그런 거다.


 숙성(熟成)은 음식을 자연상태에서 그대로 두어 스스로 분자구조를 작게 분해하는 과정이다. 이때 효소, 세균의 효소 등에 의해 숙성이 되는 과정을 발효라고 하고 이 과정을 과도하게 진행하면 세균에 의해 부패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자연상태의 숙성은 아주 장시간이 소요되어 이 기간의 결정이 음식의 을 심각하게 좌우하게 된다. 음식의 분자구조는 대부분 고르지 못하고, 이 분자 구조들 사이에 세균이 번식하게 되는데 세균은 성장 환경이 적절한 상태가 되면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하여 음식을 부패시킨다. 적절한 숙성은 음식의 맛을 향상시키고 효소를 이용한 발효는 전혀 새로운 음식의 형태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 위키백과


 음식이 기다리는 와중에 만나는 외부 요인에 따라서 발효냐, 부패냐가 결정된다. 마찬가지로 쩐내가 나는 것과 감칠맛이 나는 것도 외부 요인에 따라 결정된다. 손님이 안 오겠다는데, 억지로 끌고 올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내가 조보아도 아니고. 그저 멸치가 잘 숙성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저렇게 말하면 안 들어갈 방도가 없다.


 게다가 자신도 통제하지 못하는 마당에 외부 원인을 통제하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나? 료타(아베 히로시)가 정말 운이 좋아서 경륜이나 복권에 당첨이 되어서, 혹은 참여한 만화가 대박이 나서, 혹은 정말 끈질기게 붙잡고 있던 소설이 결실을 거두어서 돈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면 료타는 좋은 아들,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료타가 지극히 소시민적인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싫어하던 아버지가 했던 그대로, 자신과 가까워서, 그래서 연약한 부분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사람들만 골라서 갉아먹는다. 그들은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곤 한다. 이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습성이라 더 저열하게 느껴진다. 

저스디스는 할머니 집 냄새에 동화되어 버렸다.


 그런데 문득 구분점을 상실하는 순간이 있다. 쩐내와 감칠맛이 뒤섞여서 하나가 되어버리는 그런 순간이. 아버지는 생선을 좋아하셔서 매번 '무봐라'를 시전 한다. 그러면서 백 번은 넘게 들었던 그 이야기를 처음 하는 것처럼 신나서 반복한다. 아버지의 어머니는 시장에서 생선을 팔았는데, 늘 팔고 남은 것을 집으로 들고 왔다고 한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먹일 입이 적은 것도 아니라 팔 수 없는 생선은 항상 가족의 몫이 되었다. 상하기 일보 직전인, 어쩌면 반쯤 상해버린 생선을 어릴 때부터 먹고 자라서 아버지 본인은 생선이 좋다고, 특히 반쯤 상한 생선에서 나는 맛이 좋다고, 몇 번이고 이야기한다. 켜켜이 쌓인 세월이 넘쳐흘러서 선을 지워버렸나 보다.

그래도 상한 건 좀...


 요시코(키키 키린)는 딸이고 아들이고 자신을 돈 주머니로 대우하지만 동시에, 40년을 연립 주택에서 살아온 까닭에, 아마도 이렇게 살다 죽지 않을까 하고. 열렬히 사랑해 본 적은 없지만 그래서 하루하루 즐겁게. 그래도 손자의 말에 불쑥 눈물이 차오르는 건 차마 어찌할 수 없이. 가끔 꿈에 나오는 탓에 여전히 남편의 존재를 느끼며. 낮에는 클래식, 밤에는 개그 만담을 즐기면서. 앓아눕더라도 지긋해질 정도로 함께 또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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