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싯다르타
에피쿠로스, <작별하지 않는다>, <너와 나>, 싯다르타
예전에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었는데, 펄럭이며 날아다니는 나비가 진실로 기뻐 제 뜻에 맞았더라!
(그래서 자기가) 장자임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갑작스레 깨고 보니, 곧 놀랍게도 장자였다.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가 꿈에 장자가 된 것인가, 알지 못하겠구나.
장자와 나비는 틀림없이 구분이 있는 것인데. 이를 일컬어 '물物이 되었다'라고 한다.
-장자, 대략 2300년 전 (나무위키 인용)
학교에서 낮잠을 자던 세미는 꿈이 불길하다며 하은을 보러 간다. 하은은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해 있다. 세미는 하은에게 같이 수학여행을 가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관객은 이것이 비극임을 예감한다. 그러나 세미가 집요하게 던지는 추파를 요리조리 흘려보내는 하은의 모습과 영화 전반에 자리 잡은 밝은 빛은 비극을 마치 꿈과 같은 것인 것 마냥 흐리게 만든다.
하은의 다친 다리는 세미가 앞서고 하은이 못내 따라가는 둘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어린 세미는 오밤중에 졸리다는 할머니를 끌고 나와 산책을 한다. 이처럼 끌려가는 사람이 명확하게 강한 권력을 쥐고 있어 베푸는 그림이 나오지 않는 이상, 끌려감은 미래의 갈등의 예고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곧잘 끌려가던 하은이 세미에게 흉터를 남기고 만 순간 둘의 갈등은 표면화된다.
서로 다른 부분을 책망하고 있으나 사실 둘 다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는 상대에 대한 설움을 토로하는 중이다. 세미는 꿈에서 깬 시점에 하은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편지를 적어뒀었다. 하은이 연애 감정을 품고 있는 미지의 대상 훔바바는 세미를 가리키고 있다. 같은 마음을 환경적 요인 때문에 확인할 수 없는 고전적 구도는 동성 간의 연애라는 소재를 통해 재현된다.
우여곡절 끝에 재회한 세미와 하은은 누군가 잃어버린 듯한, 누군가와의 관계를 잃어버린 듯한 개를 발견한다. 세미는 하은에게 화풀이를 하듯 맹렬하게 개를 쫓아간다. 도착한 곳에는 관계를 상실한 개들이 모여 있었다. 주인이 찾아와 개와 재회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은이 애써 눌러 담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세미와 하은은 잃어버렸던 관계를 회복한다.
세미는 꿈속에서 하은이 되어 있었고, 학교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꿈에서 하은은 죽어 있는 사람은 발견하는데, 그는 세미이기도 하고 하은이기도 하고 학교의 모든 사람이기도 하고 동네 사람들 전부이기도 하다. 이 순간 꿈과 현실의 위치는 뒤바뀐다. 현실에서 하은은 홀로 남아 전하지 못한 편지와 함께 외로움을 짊어지고 있다. 꿈속에서 하은과 세미의 여정은 사실 홀로 남은 하은을 위한 자가 치유의 과정이었다. 여정의 끝에서 하은은 세미가 되어 더 이상 전할 수 없는 마음을 계속해서 속삭인다.
싯다르타는 애써 가리려 드는 부모의 품을 벗어나서 고통을 목도하고 큰 충격에 빠진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는 고통에서 고개를 돌리지 못한다. 고통에 대해 높은 감수성을 가진다는 것은 <작별하지 않는다>의 경하와 인선처럼 그만큼의 고통을 짊어짐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싯다르타 역시 여러 고통을 자신에게 부여한다. 그러려고 태어난 사람들이 있는가 보다 하는 수 말고는 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물방울로써 떨어져 수면에 파장을 만들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물방울이 중력을 어찌할 수 없는 그런 상황처럼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사람들.
그러다 문득 싯다르타는 자신이 고통을 끌어모은 까닭이 고통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함임을 고통의 원인을 깨달음과 동시에 깨닫는다. 그 깨달음의 순간에 공교롭게도 타인의 손길이 함께하고 있었다. 타인 덕분에 깨달았으므로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나누기 위해 살아간다. 창작물을 접할 때 형식과 내용이 협응하면 그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싯다르타의 삶은 그가 깨달은 내용과 동일하다. 그가 사람이 아니라 잘 조성된 창작물처럼 느껴지는 까닭이 거기에 있는 듯하다.
싯다르타는 사람들이 모이면 이야기를 했다. 사람에 맞춰 다양한 이야기를 하지만 알맹이는 같다. 나를 버리는 것이 나를 고통에서 구원할 것이다. 내가 없으면 고통도 없다. 나는 고통의 유발자이자 해소자이다. 나를 제거하면 남는 것은 무수한 타자들이다. 나는 그들 때문에 이렇게 서 있는 것이고 그 관계는 경이로운 것이다. 서로가 기대어 서로를 만드는 연결망에서 각자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며 한 덩어리이기도 하다. 이건 한 사람 안에서도 일어나는 일이고 억겁의 세월 속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싯다르타는 이 말을 제각각 다르지만 연결되어 있는 존재들에게 참을 수 없는 유대감을 담아서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