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처럼, 푼수처 (내가 나로 살살아가기까지)

by 손정희

가끔은 ‘나’라는 존재를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는 뒷전으로 밀어둔 채, 그저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그것은 엄마의 뼛속 깊이 스며든 일본 교육 탓이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우리 형제들에게는 늘 같은 가르침이 내려졌다.


어른 앞에서는 반드시 복종할 것, 부모님께는 언제나 순종할 것.


어디서든 바른 자세와 공손한 태도를 잃지 말 것.


무엇보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나보다 약한 사람은 반드시 도와야 한다는 것.



그래서 학교에 다닐 때도 남보다 먼저 교실에 가서 청소를 하곤 했다.


성적 때문에 혼나는 친구가 있으면 집으로 데려와 함께 공부를 시켜주었고,


아버지가 식탁에 앉으시기 전에는 감히 먼저 자리에 앉을 수 없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아버지 퇴근 전에 집에 들어와 있어야 했다.



돌이켜보면, 흔히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가스라이팅’ 같은 삶이었다.


결혼을 해서도 다르지 않았다.


남편에게는 순종해야 했고, 시댁에는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것이 엄마의 교육이었다.


‘나는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서 자꾸 고개를 들곤 했다.



하지만 나 스스로 알을 깰 수가 없었다


누가 깨주기를 그래서 나 스스로


합리화를 시킬 수 있게 되기를


분노하면서 감사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 가르침은 마치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나의 삶을 지배했다.


덕분에 나는 사람들로부터 ‘예의 바르다’는 칭찬을 자주 들었고, 스스로도 바른 길을 간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 모든 규율이 내 안의 ‘나’를 지워버린 것은 아닐까, 하고.




할머니가 된 나는 이제 집 안에서 규율을 세우지 않는다.


아이들 앞에서 먼저 웃고, 때로는 바보처럼, 때로는 푼수처럼 굴며 살아간다.


그 모습 속에는 억눌렸던 나를 조금씩 내려놓고, 이제라도 내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



아마 가족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엄마가 무너짐을 통해 새로운 나를 세우려 애쓰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 그저 조용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내 삶을 살아 가려한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함께해 준 가족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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