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리뷰] LUCY 「선」

방구석 A&R의 앨범 리뷰

by Wratist

LUCY 7st EP 「선」

★★★☆☆

#KEYWORD: #autumn #ambient #adaptation #love #knot



푸른색의 채도와 대비 조절


루시의 음악은 최상엽의 청량한 보컬, 신예찬의 부드러운 바이올린, 조원상 프로듀싱에서 나오는 리듬감, 신광일의 드럼 속에서 은밀히 들려오는 보컬의 시너지로부터 나온다. 모든 요소의 융합은 음악에 푸른 하늘색 빛깔을 기본으로 채도와 대비를 조절한 듯한 차별점을 제시하여 봄과 여름, 그리고 겨울의 계절감이 자연스럽게 묻게 해주었다. 반면 유독 가을의 정취와는 거리가 있는 게 루시의 음악이었다. 실제로 <21세기의 어떤 날>을 제외하고는 루시의 음악이 가을에 발매된적이 없기에 루시의 신보, EP 7집 「선」은 아이덴티티의 확장임과 동시에 음악적 도전에 가깝다. 청량 밴드의 대표 주자였던 루시의 음악에 가을 낙엽이 얹어질 때이다.

화면 캡처 2025-11-13 213708.png 루시의 데뷔 이후 발매 앨범. <슈퍼밴드>경연곡인 '선잠'과 EP 7집 「선」을 제외하면 가을 앨범이 없다.(출처: 나무위키)

「선」에서 이야기하는 사랑의 다양한 형태, 매듭의 모양만큼 다양한 인간 관계, 그리고 이에 대해 각자가 받아들이는 방식은, 앨범의 진짜 주제인 '적응'을 내포한다. 우리는 모두 살아가는 과정에서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고 이에 대한 행동, 그리고 마무리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다. 루시는 앨범 이미지의 해바라기처럼 한 방향을 바라봐도 생명의 결말이 제각각이듯 환경에 적응한 이야기들을 집필해 앨범에 음악으로 담았다. <사랑은 어쩌고>의 화자처럼 자신을 떠나간 사랑에 체념하고 받아들이는가 하면 <다급해져>처럼 해결하지 못한채 지금의 감정을 더 깊이하겠다는 대답을 내놓는다. 속 시원하게 해결하기도, 미련을 남긴채 추억으로 남기기도, 미궁에 빠진 듯 끝없이 헤매기도하는 것이 인생의 여정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빛나는 끝을 바라보며 어떤 마음을 먹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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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의 행보에서 <못 죽는 기사와 비단 요람>, <Boogie Man>을 시작으로 음악을 다각화하기 위한 시도는 빈번한 편이었다. 이를 위해 J-ROCK 특유의 일렉 기타 사운드를 채택한 점은 루시가 원래 가지고 있던 청량의 색깔과 좋은 시너지를 내주었으며 시각적 미감만으로도 납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렉 기타를 살린 편곡은 루시의 음악에서 바이올린의 음색이 옅어지게 만드는 단점이 있었다. 루시의 가장 큰 정체성인 신예찬의 바이올린을 이어폰이 아닌 무대로 확인해야한다는게 아쉬운 점이었다. 게다가「FROM.」의 낙화는 바이올린 복귀의 신호탄으로 작용했기에 루시 음악의 첫 서사시를 마무리하는 앨범의 의미와 함께 변화의 명목이 되어 주었다. 이후 발매된 <잠깨>와 <하마>가 음악의 유머를 담당했다면 <사랑은 어쩌고>는 안정화를 담당한다. 푸른 하늘에 붉은 단풍나무가 걸친 것처럼 루시의 푸른 하늘색 바탕에 단풍잎과 은행잎을 얹는 앨범이다.


익숙하다. 하지만 그리움이 느껴진다.


<사랑은 어쩌고>를 재생하자마자 이어폰에서 한국인이 좋아할 법한 이별의 발라드가 들려온다. 어쩌면 국내 음악으로선 클리셰와 같은 음악이지만, 루시는 여기에 본인들의 청량함만을 더하는 단순한 방식을 제시한다. 익숙한 감성의 음악에 바이올린과 앰비언트 신스의 조화, 그리고 최상엽의 보컬이 개성 요인을 유지하며 본인들의 음악 영역에 확장을 꾀한다. 또한 뮤직 비디오와 음악의 시너지는 한국 사람들 마음 속 한켠에 자리해 있던, 발라드에 대한 그리움을 상기해준다. 그러면서도 루시의 청량함이 묻어나는 점은 발라드라는 장르의 유사성 문제를 불식시키며 과거의 답습으로 보이지 않게 해준다. 이런 음악, 참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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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어쩌고> 속에서 루시가 말하는 '적응'은 '사랑의 실패'로 결론 짓는다. 나를 바라봐주지 않는 그녀, 그럼에도 그녀를 향한 마음은 영원히 여기에 있다. 그것 뿐이다. 남은 것은 감정 뿐이며 나의 이야기는 종결이 나지 않은 채 너의 존재를 되뇌인다.


낡은 집 속 미소, 신식 건물 속 무기력


<사랑은 어쩌고>가 과거의 답습으로 안정화를 의도했다면 <다급해져>는 차별점을 위해 피쳐링을 채용했다. 최상엽의 보컬과 바이올린으로 시작하는 인트로는 가을의 계절감을 자아내면서 피쳐링을 포함하여 음악의 진보를 멈추지 않겠다는 뜻도 드러낸다. 원슈타인의 보컬은 군입대한 신광일을 대신하는 부드러운 보컬을 담당하며 본업으로 하는 랩은 상승의 브릿지가 아닌 급전환의 브릿지를 자아낸다. 그럼에도 부드럽기에 부담이 적다. 다만 사랑을 이야기하는 가사가, 사회인의 일탈을 그리는 뮤직 비디오와 주제가 어긋나는 점은 다소 몰입을 해칠 리스크를 남긴다. 흔한 가사 소재인 사랑을 작사한건 전달력에 대한 불안감이 있던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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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해져>는 '적응'을 위한 답으로 '욕심'을 내놓는다. 현대화된 건물 속에서 주변은 "당연한 것이다"라며 납득을 강요한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인가 하는 딜레마와 함께 분노를 터뜨리 듯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고픈 욕구가 발생한다. 그렇게 도망쳐온 허름한 집에서 음악을 즐기는 루시는 미소를 짓고 있다. 열약하게 보일 수 있는 그들의 환경에 비해 편하다고 할 수 있는 현대식 건물에서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가. 적어도 나는 가슴이 차가워지는 걸 많이 느껴본 것 같다.


혁신도 한 걸음부터


이미 음악가로 넘치는 우리나라 음악 시장에서 개성의 차별점은 중요하다고들 말한다. 없던 것을 창조하라, 블루오션을 찾아내라. 혁신과 창의력이 기본 소양이 되어버린 요즘 사회다. 하지만 진보가 꼭 충격적일 필요가 있을까. 새로운 아이디어란 과거의 답습과 계속적인 시도로부터 배운 센스의 폭발로 발생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실패할 확률을 배워가는 것만으로 의미는 충분하다. 이번 루시의 음악 또한 퇴보로 느껴지지 않는 다는게 중요하다. 지금까지 루시의 음악이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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