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낯선 호텔의 스파게티와 한인 교회의 따뜻한 밥상

낯선 땅의 작은 사랑방

by 김세원

호텔 셔틀버스를 타고 노스캐롤라이나의 호텔에 도착했을 때, 창밖에는 놀라울 만큼 탁 트인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산 하나 없는 평야 위로 보라색과 주황색이 서서히 섞이며 파란빛 노을로 번지고 있었다.

나는 기사님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며 유튜브에서 본 미국 이민자들의 조언이 떠올라, 문화에 맞게 작은 팁도 함께 내밀었다. 기사님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Thank you. Have a good night.” (고마워요. 좋은 밤 보내요.)

그 말에 긴장이 조금 풀렸다.

호텔 로비에서 체크인을 마치자, 직원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키카드를 건넸다.

따뜻한 샤워와 간단한 저녁, 그리고 푹 자는 것. 지금의 나에겐 그게 내가 원하는 전부였다.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중, 조그만 매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저녁 메뉴에 대한 고민이 밀려왔다. 급히 구글맵을 켜보니 식당들은 모두 차로 10분 이상 거리였다. 택시를 타기엔 피곤했고, 프런트에 부탁하기엔 번거로웠다. 결국 매점에서 간단히 해결하기로 했다.

매점 안은 전형적인 미국 풍경이었다. 어른 팔만 한 과자 봉지, 형형색색 젤리, 알록달록한 소스들, 그리고 가격표가 붙은 생필품들이 빼곡히 진열돼 있었다.

혹시 밥이 될 만한 게 있을까 싶어 냉장고 쪽으로 향했다.

투명한 유리 너머에는 전형적인 미국식 냉동식품들, 피자, 브리또, 스파게티가 줄지어 있었다. 그중 붉은 토마토소스 위에 큼직한 미트볼이 얹힌 스파게티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사진 속 윤기 나는 모습에 홀린 듯 그것을 골랐다.

가격은 11.99달러. 계산대 앞에서 카드 단말기를 보는데, 머릿속에서는 자동으로 환율이 계산됐다. ‘만원이 좀 넘네…’ 몸은 분명 미국에 있었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한국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도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계산을 마치자, 피곤해 보이는 백인 아주머니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전자레인지 쪽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나는 방 안에 전자레인지가 있을 거라 믿으며 “OK, thank you.” 하고 웃으며 나왔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There is no microwave in the room.”
(방 안에 전자레인지는 없어요.)
“Really?“ (진짜요?)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다시 매점으로 돌아가 전자레인지 앞에 섰다.
아마도 아주머니는 나 같은 여행객이 음식을 방에 가져갔다가 결국 다시 내려오는 걸 여러 번 봐온 듯했다.

전자레인지의 버튼은 전부 영어로 되어 있었다.
숫자 3을 눌렀는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당황한 나는 이것저것 마구 누르다가 겨우 작동을 시켰다. “돌아간다!” 그 모습을 보며 안도했고, 그저 맛있게 되기만을 기다렸다.

전자레인지의 기분 좋은 종료음이 울리자, 나는 두 개의 캐리어를 끌고 해동된 음식을 들고 방으로 향했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대충 던져놓고 음식을 열었다.
하지만 사진 속 윤기 나는 미트볼은 온데간데없고,
흐물흐물한 면발과 정체불명의 붉은 소스가 나를 반겼다.
한입 가득 넣는 순간, 면은 여전히 차가웠다.
깜짝 놀라 포크로 뒤적여보니, 밑부분은 그대로 얼어 있었다.
나는 순간 멍해졌다가, 결국 매점으로 내려가 아주머니를 찾았다.

“The microwave isn’t working.”
(전자레인지가 작동이 안 돼요.)

아주머니는 전자레인지를 힐끗 보더니 피식 웃었다.
“Did you press Defrost?”
(혹시 해동 버튼 누르신 거예요?)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디...뎈프로스트?’ 생전 처음 듣는 말이었다.
머릿속이 순간 새하얘졌고, 나는 그냥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가장 안전한 선택 같았다.
“Yes… maybe.”
(아마도요.)

그녀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전자레인지 문을 열었다.
반쯤 얼고 반쯤 뜨거운 스파게티를 다시 안에 넣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You have to press ‘Cook Time,’ not ‘Defrost.’”
(‘해동’ 말고 ‘요리 시간’을 눌러야 돼요.)

나는 민망해서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 눌렀다.
전자레인지가 ‘윙~’ 소리를 내며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녀가 계산대에 팔을 괴더니 내게 물었다.

“So, first day in America?”
(미국 첫날이에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잠시 나를 보더니, 피곤한 얼굴로 웃었다.

“Don’t worry, everyone ruins their first meal here.”
(걱정 마요. 다들 첫 끼는 망쳐요.)

전자레인지가 ‘띵’ 하고 멈췄다.
이번엔 면이 제대로 익어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Thank you.” (감사해요.)

방으로 돌아온 나는 구글에 ‘디포레스트 전자레인지’라고, 들린 그대로 한글로 검색했다. 결과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냉동된 음식을 천천히 녹이는 기능이지, 조리(가열) 기능이 아닙니다.’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스파게티를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익숙하지만 어딘가 저렴한 맛이 느껴지는 토마토소스, 퍽퍽하게 말린 미트볼, 씹을 때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야채들. 맛이 없진 않았다. 그렇다고 맛있다고 하기도 어려운, 어딘가 애매한 맛이었다.

무엇보다 입안에 오래 남는 짠맛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이 짠맛에 익숙해질수록 언젠가 한국의 음식이 달게 느껴질 거라는 사실을.

입안에 남은 짠맛을 없애려 호텔에서 받은 물 한 병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캐리어를 열어 감기약을 꺼내 삼켰다. 며칠째 쌓인 피로 때문인지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욕실로 들어가 뜨거운 물을 틀고 샤워를 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욕실 가득 뜨거운 김이 맴돌았다.

대충 몸을 닦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머리카락은 축축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기억은, 방 안을 가득 채운 낯선 냄새와 익숙하지만 이국적인 음식 냄새가 천장 위로 피어오르던 풍경이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지금 몇 시지?’였다.

핸드폰을 보니 호텔 조식 시간이 이미 끝나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조급하지 않았다. 몸 상태를 확인하니 어제보다 훨씬 나아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니, 어제의 노을이 사라진 자리에 부드러운 아침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하루가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한 일은 부모님께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호텔에 무사히 도착했고 잘 쉬었다는 이야기부터, 어젯밤 창밖으로 보이던 노스캐롤라이나의 평야와 노을까지 차근히 전했다. 부모님은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안도하시는 게 느껴졌다.

통화를 마치기 전, 엄마가 조심스럽게 물으셨다.
“오늘 일요일인데… 혹시 교회 갈 거니?”

사실 한국에서도 부모님을 따라 교회를 종종 다녔기에, 교회라는 공간이 낯설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 먼 곳에서 같은 신앙을 가진 누군가를 만난다면 조금은 덜 외로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망설임 없이 구글맵을 켜고 ‘한인 교회’를 검색했다.

입학할 커뮤니티 칼리지 근처에 한인 교회가 있었고, 지금 머무는 호텔에서도 걸어서 15분 거리였다. 학교가 도시 외곽에 있어 교회가 멀까 걱정했는데, 마음이 한결 놓였다. 잘하면 또래 친구도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은근히 설렜다.

교회 홈페이지에는 예배가 오전 11시에 시작한다고 적혀 있었다. 지금은 10시 충분히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 들뜬 마음 한편으로, 솔직히 약간의 걱정도 뒤따랐다.

한국에서 한인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교회 가면 영어 한마디 안 하고, 미국 문화랑 멀어진다.”
“이민자들은 교회에만 의지해서 밖에 친구도 못 사귄다더라.”
“헌금 강요 심하고, 분위기도 폐쇄적이래.”
그런 말들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도 가보기로 했다.

캐리어에서 제일 깔끔한 옷을 꺼내 입고, 구글맵을 따라 15분쯤 걸었다.

건물 앞에는 미국 교회 이름의 간판과 한국어 이름의 간판이 나란히 걸려 있었고 교회는 작고 아담했다.

쭈뼛거리며 입구로 들어서자, 나이가 지긋한 어른 몇 분이 주보를 나눠주고 계셨다.

젊은 사람이 처음 왔다고, 너무 반갑다며 활짝 웃으셨다.

나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예배당은 작고 단정했으며, 교인은 40명쯤 되어 보였다. 내 또래로 보이는 청년들이 절반, 신앙생활을 오래 한 어른들이 절반쯤이었다. 어른들은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처음 오셨죠? 식사하고 가세요.”
그 따뜻한 말에 순간 긴장이 풀렸다. 조금은 낯설었지만, 그 미소와 말투에서 이상하게 한국의 냄새가 났다.

찬양팀이 예배를 인도하기 시작했다.

보컬, 드럼, 일렉 기타, 베이스.

다양한 악기가 어우러졌고, 찬양은 한국에서 익숙하게 부르던 곡들이었다.

모두 함께 노래를 부르다 보니, 괜히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느껴지는 묘한 친근함이 피어올랐다.

예배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자, 한식 뷔페가 부럽지 않을 만큼 푸짐한 음식이 차려졌다.

얼마 만에 이렇게 제대로 된 한식을 보는지,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나는 그릇 가득 음식을 담아 맛있게 먹었다.

밥을 먹으며 여러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눴다. 놀랍게도 내 또래 두 친구는 같은 학교 학생이었다. 소개 몇 마디만으로 금세 말이 통했고, 대화는 생각보다 오래 이어졌다.

식사가 끝나자, 어른들이 남은 음식을 도시락통에 담아 비닐봉지에 건네주셨다.
“호텔 가서 또 출출하면 드세요.”
그 따뜻한 말 한마디가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다.

새로 알게 된 형, 누나, 친구들은 대부분 내가 입학할 커뮤니티 칼리지 학생들이었다. 덕분에 정말 많은 꿀팁과 노하우를 들을 수 있었다.
“통장 개설할 때 이렇게 하면 돼.”
“휴대폰 개통은 같이 가줄게.”
“장 볼 때 할인 카드 꼭 만들어.”

심지어 한 명씩 돌아가며 평일에 시간을 맞춰 필요한 일들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자동차 사는 법부터 장 보는 법까지, 하나하나 알려주겠다는 그 마음이 고마웠다.

어떻게 감사를 표현해야 할지 솔직히 막막할 정도였다.

그 후로도 매주 교회에 나가 어른들과 청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교제했다.

교회가 점점 익숙해질수록 문득 생각이 들었다.
‘왜 처음엔 한인 교회에 대한 오해가 그렇게 많았을까?’

조금 더 지켜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여기 어른들 중에는 70년대에 한국에서 이민 오신 분들도 많았다.

그분들은 마치 그 시절에 시간이 멈춘 듯, 옷차림도 말투도 생각도 그대로였다.

1980년대에 오신 분들은 또 그 시절의 문화와 감각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민 1세대답게 삶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분들도 많았고, 동시에 상처도 많아 보였다. 아마 그분들은 인종차별이 훨씬 심했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수고와 고생을 버텨내셨을 것이다. 그래서 서로를 의지하고, 같은 한국어로 공감하며 마음을 나누며 다시 일터로 돌아갈 힘을 얻으셨던 것 같았다.

그렇게 함께 지내다 보니, 작은 오해 하나도 좁은 공동체 안에서는 금세 커질 수 있다는 것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우리 젊은 친구들이 미국에서 잘 적응하고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만큼은 모두 같았다.
그 마음을 가장 쉽게 표현하는 방법이 밥을 차려주고 또 싸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한식 뷔페처럼 음식을 넉넉히 준비하고, 남으면 꼭 싸주시는 그 따뜻함이 느껴졌다.

교회마다,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처음 만난 이곳은 낯선 땅에서 처음으로 한국의 온기를 느낀 작은 사랑방이었다.

아, 그리고 미국에 사는 한국 어른들이나 한국에 사는 어른들이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배고프다”라는 말은 절대 아무렇게나 뱉으면 안 된다.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당신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위장 고문에 돌입하게 된다.
밥, 국, 반찬, 과일까지.

“더 먹어, 이거도 먹어봐, 이것도 맛있어.”
폭격이 시작된다.

그때부터 당신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다.
식사는, 어른들 머릿속에 이미 짜인 코스 요리가 모두 끝나야 비로소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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