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마음

by Re나

첫인상이 강렬한 것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또렸해 지고, 어렵지 않게 나의 취향으로 흡수되곤 한다. 여름에는 찬 성질이 강하고 블렌딩하기 좋은 우아하고 은은한 백차를 즐기고, 가을에는 깊은 향기를 가득 품은 청차를 즐기는 것과 같이. ‘취향존중’, ‘취향저격’이라는 말이 유독 유행했던 시기가 있었다. 경제적 여유와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던 때 취향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색하고 멀게만 느껴졌지만, 나이가 들면서 사라지거나 옅어지는 것들 사이에 유독 취향만큼은 더욱 확고해지는 것 같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책가도라는 세련되고 낯선 병풍을 오랫동안 지켜봤던 기억이 난다. 정교하게 그려진 책장 속 물건들은 양반집 선비의 고상한 취향이 그대로 반영된 진귀한 물건들로 가득했다. 다양한 서책, 향로와 문진, 화병의 연꽃과 촛대, 회중시계와 벼루, 문진과 주자, 고동기와 두루마리 등으로 가득하다. 하나 하나 충분히 매력적인 물건들이 병풍의 한 폭 한 폭을 빼곡하게 채워 마치 서재의 책장을 연상케 하는 책가도는 현대적인 화풍으로 세련된 느낌마저 주어 조선의 일러스트는 아마 이랬을 거라는 재밌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조선 정조는 책 읽을 시간조차 없을 때에도 책가도를 보며 취향을 즐겼다고 한다. 탁월한 학문적 능력을 바탕으로 당파적 분쟁을 뛰어넘어 개혁과 통합을 이루내고, 문화부흥까지 이끌어낸 조선후기 22대 왕의 귀품이 느껴지는 실용적인 취향이다. 좋아하고 아끼는 물건들을 병풍의 그림으로 그려 놓은 기발한 아이디어는 물론 일상에서 취향을 즐기고 가꾸어 나갔던 조상들의 예술적 변용에 싱긋 웃음이 났다. ‘취향’의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보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이라고 한다. 결국 취향도 마음이었다. 우리는 뭔가를 정확히 기억하는데 서툴고, 마음은 늘 떠돌아다닌다. 마음을 바라보는 것은 내게 중요한 것들을 발견하고 영원히 빠져나가지 않도록 붙잡아 두는 것이다. 마음을 바라보는 것은 나와 연결되고 취향이 발견되는 시간이다. 취향은 나의 마음과 함께 나의 하루를 가꾸어 나간다. 취향이 확고해지는 것은 꼰대가 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커가는 신호였다.


미혹되지 않는 나이 불혹을 맞이했던 그 해 겨울은 몹시 추웠고 나의 마음은 여전히 요동치고 있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자기 비난을 자각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싶다. 나의 한 시절을 지워버리고 싶은 것,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사는 것,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원망하는 것, 여전히 나를 돌보지 않는 것에서 피어나는 감정적 동요는 수없이 외치는 마음의 다짐만으로 이겨낼 수 없는 무거움이 존재했다. 내버려 두면 거침없이 화력이 키우는 내면의 소리에 시선을 맞출 수 있는 용기와 여유는 고요히 머무는 시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금세라도 눈이 내릴 것만 같은 하늘과 바람에 온 몸을 잔뜩 웅크리고 다니던 날, 종로구 창의문로에 위치한 티하우스에서 마셨던 우전차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연둣빛 어린 찻잎이 이끄는 세상에서 부드럽게 이완되고 섬세하게 되살아 나는 나의 감각은 차를 사랑하게 되리라고 직감하고 있었다. 온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던 찻잔의 온기와 맑고 청아한 우전차의 색은 내 몸의 감각에 그대로 새겨져 있다. 백자 개완이 품고 있는 차향과 훈이 호흡 속에서 부드럽게 피어올랐다. 차에서 삶의 향기를 배운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달그락달그락 차도구들이 부딪치는 소리마저 영롱하여 듣기 좋았고, 손끝의 움직임은 더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감각하고 있었다. 길게 늘어져 들어오던 해가 사라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바깥 조명이 딸깍하고 불을 밝혔다. 차 잔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넘어 새 하얀 눈송이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행복은 가끔 우연과 우연이 겹쳐 찾아오기도 한다.


낮 최고 기온 30도를 육박하는 추석 연휴를 앞둔 주말오후 점심고민에 빠졌다. 어제까지 즐기던 백호은침대신 육계 무이암차와 수선 무이암차를 만지작 거리며, 잠시 고민했지만 육계를 집어 들고 능숙 능란하게 찻자리를 준비한다. 차를 음미하는 것 만큼이나 차를 향한 손짓과 몸짓을 무척 흠모한다. 자사호와 유리 숙우, 황토 보듬이와 찻물 주전자, 퇴수기, 다건으로 혼자 마시는 정갈하고 소박한 찻상을 준비하는 동안 이미 마음가짐은 고요함 속에서 깊은 알아차림으로 이어지고 있다. 찻자리에서 느끼는 다양하고 풍부한 감각의 세계는 떠도는 마음을 쉬이 지금 이 순간에 머물게 한다. 차를 통해서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알아차림 함으로써 상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딩동’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주문하신 김밥이 곧 도착합니다. 받으실 준비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명상을 시작하고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명상을 종교적 틀로 단정 짓거나 일상 밖에서 이루어지는 편협한 시각을 경계하기 시작했고, 삶과 동떨어진 특별한 의식이 아닌 삶 속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과제에 고민이 많았다. 차를 마시면서 라이프스타일은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되고 미세하게 수정되고 있었다. 카페를 찾아 커피를 마시는 것과 티하우스에서 차를 내려 마시는 것은 엄청난 삶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차를 즐기며 마시는 것은 즐거운 시간이지만, 워낙 음식에 예민하고 특히 카페인에 영향을 많이 받는 피곤하기 짝이 없는 체질이다. 차를 진하게 우려 마시거나 지나치게 많이 마시거나 혹은 빈속에 마시면 그날 하루는 거의 초주검에 가깝게 하루를 버터야 하고, 밤에 잠까지 설쳐야 한다. 차를 마실 때, 함께 내어주는 다식이 도움이 되긴 하지만, 떡이나 달달한 디저트는 1년에 몇 안 되는 특별한 날 챙기는 케익같이 나의 취향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차는 주로 오전이나 점심을 먹은 후 즐기는 편이다. 데일리 차로는 보이차를 연하게 우려 마시고, 특별한 차를 마실 때는 든든하게 배를 채운 다음 시작하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는 나의 식습관이다. 차로 이동하면서 외부 일정을 소화할 때는 끼니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집을 나설 때, 간단하게 견과류나 과일을 준비해서 나오긴 하지만 하루 중 가장 맛있고 든든하게 챙겨 먹어야 하는 점심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당시 나는 다이어트를 한다는 이유로 저녁은 샐러드로 가볍게 해결했다. 차로 이동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당시에 중간에 식당을 찾아 밥을 먹는 것은 엄청난 시간 낭비 일뿐만 아니라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하지도 못하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밥과 갖가지 영양소를 고려한 알록달록 반찬을 한입에 쏙 먹을 수 있는 김밥을 좋아했다. 요즘도 가끔 엄마가 싸주는 김밥에 가을 소풍을 기다리는 중학생마냥 두근두근 설레고 기분이 좋아진다. 어른이 되어서도 바쁘고 배고픈 나의 든든한 먹거리가 되어준 김밥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김밥을 포장한 호일 일부를 벗겨내어 한 손에 들고 한 알씩 쏙쏙 빼먹는 즐거움을 아는가!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할 때는 김밥 한 줄을 미리 포장해서 조수석에 싣고 출발한다. 점심때가 되면 한 손은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에는 김밥을 집어 들고 능숙하게 드라이브하며 식사를 해결하곤 했다. 대학원을 다닐 때는 빠듯한 저녁을 알차게 해결한 나의 소울푸드이자 힐링푸드였다. ‘제대로 된 식사도 못하고!’라는 불평조차 삼켜버린 김밥 한 줄의 든든함과 완벽함, 깔끔함과 경쾌함에 나는 홀딱 빠져있다. 그래서 오히려 김밥은 과식을 불러온다. 김훈 작가님의 에세이 ‘라면을 끓이며’에 작가님의 김밥에 대한 애정과 통찰이 꼭 내 맘 같다. “김밥은 끼니를 감당할 수 있는 음식이지만, 끼니를 해결하는 밥 먹기의 엄숙성에서 벗어나 있다. 김밥은 끼니이면서도 끼니가 아닌 것처럼 가벼운 밥 먹기로 끼니를 때울 수가 있다. 김밥으로 끼니를 때울 때, 나는 끼니를 때우고 있다는 삶의 하중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김밥의 가벼움은 서늘하다.”


초가을 선선한 바람이 불면, 등황빛으로 빛나는 맑고 깨끗한 차색과 묵직하고도 청량한 향으로 코끝을 자극하는 무이암차를 즐긴다. 몇 안 되는 식물들에 물을 주고, 물갈이를 한 다음 베란다에 내어 두고, 한참 동안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깨끗한 공기로 가득한 공간으로 스며드는 난향과 과향은 지친 몸의 세포들을 하나 둘 깨워 주었다. 어수선하고 번잡한 마음에 정갈함과 고요함이 스며든다. 김밥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워 걱정없이 차를 즐겼던 분주하고도 고요했던 수많은 날들이 다가온다. 무거움을 가볍게 한 입에 쏙 밀어 넣는 김밥 한알과 분주함을 고요하게 입안으로 퍼지는 육계 무이암차의 풍성한 향은 꽤 훌륭한 페어링이다.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김밥과 어른이 되어 좋아하게 된 차가 만난 취향은 자연스럽고 확고하게 삶으로 스며들었다.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계속하는 것이 마음을 잘 보살펴 주는 일이라면 차의 시간은 마음의 시간인 것이다. 무언가를 계속하지만 에너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쌓아가는 일이 가볍고 고요한 취향을 즐기는 시간이다. 그나저나 김밥은 엄마가 만들어 주는 김밥이 제일 맛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