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닮은 차의 마음

by Re나

가을은 감정이 증폭되는 계절이다. 대단히 아름다운 풍경은 생명이 서서히 옅어지는 과정의 결과이며, 겨울을 목전에 두고 새 봄의 씨앗을 뿌려 다음 해를 기약하는 염원을 담는다. 가을의 화려한 빛깔에도 들뜨지 않고 멜랑꼴리하거나 센티멘탈해지는 이유는 상실과 아름다움이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름이 너무 길었다. 사계절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계절이 리듬에 맞춰 자연스럽게 변하는데서 오는 안정감 같은 것이 있다. 한 계절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것은 마음을 초초하고 조급하게 만든다. 10월의 끝자락 가을의 풍경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초록 무성한 숲을 보며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는 뉴스보도는 이상기온으로 짧아진 가을이 자연에게 어떤 가해와 공포가 되는지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나를 화나게 했다. 빛과 어둠, 낮과 밤, 쇠락과 풍요, 고통과 행복이라는 상반되는 둘의 균형이 깨지면 진짜 어떤 일이 생기는지 우리는 모르는 채 하며 늘 하던 대로 바쁘게 살아간다. 마치 들숨과 날숨이 나의 생명을 지켜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더운 여름은 이제 좀 물러났으면 했는데, 11월이 되자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어 계절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가을빛 햇살과 콧끝 사이로 바람이 지나간다. 뜨거웠던 여름에는 얼씬도 하지 않던 발코니를 들락낙락 거리며 예고 없이 바뀌어버릴 바람과 햇살을 누려보려 애썼다. 쇠락과 죽음의 움직임을 목도하는 아름다운 계절에 대한 애도와 고독과 사색이 요구되는 계절에 나를 위한 위로는 따뜻한 차 한잔에서 시작된다. 작은 움직임의 결을 따라 실천하는 차를 우려 마시는 아름다운 행위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 계절이 바뀌는 것은 지구가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라는데, 자연스레 차를 내리다 보면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앞으로 제대로 나아가지 못했던 비뚤어진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물론 그 마음을 더 키우지 않고 균형 있는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차의 시간에 금세 몰두하게 되지만. 무언가가 기울어졌다는 것은 지구나 사람에게나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는 것 같다.


1년 365일 거실 테이블 위 은은한 빛깔로 내 공간의 무드를 책임지는 보듬이 잔은 나무의 결을 그대로 살려 조각하고 큰 물결모양의 우드카빙으로 멋스러운 호두나무 소반 위에서 더 빛나는 것 같다. 같은 공간, 같은 탁자 위에 놓인 설빛의 백자 보듬이는 끊임없는 주의를 필요로 하는 내 앞에 오롯이 머물며 삶의 연속성을 속삭여준다.

창으로 쏟아지는 영롱한 햇살을 받아 더욱 빛나는 보듬이잔은 나를 차의 시간으로 불러들인다. 굳이 차를 내려 마시지 않아도 그저 바라만 보아도 내 안에 흐르는 자연스러운 호흡과 연결되는 존재의 굳건함은 모든 감각을 불러내어 지금 이 순간의 나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곤 한다. 모든 것이 어지러웠던 시절의 마음을 일순간 고요 속으로 붙잡아 메어두었던 것은 차의 시간이었다.


손 끝이 시려 팔짱을 끼고 종종걸음으로 들어섰던 분당구 판교의 작은 다옥, 그날의 시간은 무척 더디게 흘러갔다. 마음으로 품어왔던 공간과 마주하는 순간, 투명한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터질 듯 팽팽한 세상에서 느슨하고 안온한 세상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자연의 향과 결을 닮은 차도구들, 차와 꽃의 조화가 만들어 내는 내부 공간의 공기는 지친 마음을 교정해 주고 입술과 어깨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가을의 장미와 코스모스 사이로 볕이 들어 꽃의 존재가 더욱 더 두드러진다. 부드러운 과향의 상쾌함과 깊은 회감으로 중후한 풍미가 인상적이었던 육계 무이암차를 담은 설백자 보듬이를 마주하고 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보듬어 가슴으로 껴안듯 두 손 가득 감싸들었다. 손바닥 전체로 느껴지는 온기와 정성스러운 몸짓에 스르르 두 눈이 감기고 코끝으로 느껴지는 들숨과 날숨은 더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온전하게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얼굴이 파묻힐 듯 퍼지는 섬세한 차향과 깊은 차훈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방울방울 흘러들어오는 한 모금 한 모금에 나의 감각이 모두 깨어나고 안온한 평화로움이 내 몸속으로 흘러드는 것 같았다. 내 가슴 안으로 들어온 보듬이를 품어 안고, 복잡한 생각과 어지러운 고민거리들이 도망치 듯 사라지고 고요한 편안함에 빠져들었다. 외면했던 상실과 고통을 마주하여 아픔과 외로움을 보듬어 안아 주듯이.


정동주 박사님의 <차와 차살림>에는 ‘보듬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 ‘보듬이’는 차문화의 다양한 내용과 소통하면서 이 그릇이 탄생한 우리 시대의 표정과 정신을 모두 담고 있는 아름다운 그릇이다. ‘보듬이’라는 말은 ‘두 팔로 끼어 가슴에 붙이다, 포옹하다,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손과 몸으로 바로 받다, 남의 일을 책임지고 맡다, 생각으로서 지니다’는 뜻을 지닌 ‘안다’라는 말의 사투리라고 한다. 흔히 ‘껴안다’로도 자주 쓴다. ‘보듬어 안는다’라고도 한다. 반드시 두 팔로 안아야 한다.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피하거나 밀어내지 않고 기꺼이 손과 몸으로 머뭇거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때로는 위험하고 몹시 번거로운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정성을 다하여 맡아서 해내는 것이다. 몸으로는 물론 마음으로도 기쁘게 받아서 품는 것이다.”


일부러 고요한 곳을 찾아야 할 만큼 어지럽고 복잡한 마음은 본능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애썼다.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들을 밀어내거나 피하지 않고 제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보듬이잔으로 차를 즐기기 시작한때부터다. 일상에서 벗어난 새롭고 고요한 장소에 끌렸던 것은 안전하고 고요한 도피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두 손으로 보듬어 안은 따뜻한 보듬이 잔으로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익숙한 내 공간에서도 고요한 안식처로 들어설 수 있었다. 따뜻한 차 한잔은 나를 향한 관심과 돌봄이었다. 찻잎이 뜨거운 물에 스며들고, 뜨거운 물이 찻잎을 보듬어 돌돌 말린 찻잎이 벵그르르, 느슨하게 풀어지면 차색이 드러나고 차향과 훈이 깊어진다. 차의 따뜻한 온기는 자연의 섬세한 정서와 조화를 이루고, 차의 향기로 가득 찬 공간은 순환과 변화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한다. 물이 많으면 차색이 곱지 않고, 찻잎이 많으면 맛도 향도 써져서 차맛이 떨어진다. 차를 마시는 시간 동안 거세게 타오르는 불같은 욕망은 흩어져 사라지고, 꾸준하고 진득하게 반복하는 차의 마음과 형식에 맞춰가는 동안 한결같은 고요함에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간다.


기억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그 기억은 현재에 놀라운 알아차림을 주고 삶의 뚜렷한 방향이 되기도 한다. 사물에 깃들어 보존된 강렬하고 뚜렷한 기억은 내가 느끼는 새로운 감각들과 다시 살아나고 알아차림의 시간으로 이어지곤 한다. 가을에 유독 차의 시간이 길어진다. 쇠락과 아름다움의 공존과 들숨과 날숨의 알아차림은 삶의 균형과 조화를 만들고 새로운 생명에 온기를 불러 넣는다. 나 자신에게 온전히 주의를 기울이고, 섬세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사랑이라면 불편하기만 했던 나에 대한 사랑에 기꺼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차 한잔으로 깨어나는 감각으로 지금을 알아차림 한다는 것은 나에게 깊고 따뜻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나를 보듬어 감싸 안 듯이 한 잔의 차는 따뜻하고 다정하며 은은하게 내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가을을 닮은 차 한잔,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아무리 혹독한 시간이라도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것을 희고 따뜻한 보듬이를 두 손 가득 감싸 안으며 천천히 알아가고 있다. 내가 그토록 밖에서 구하려고 찾아 헤매던 고요한 행복의 순간은 깨어있는 내 안에서 함께하고 있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