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란다는 것은

by Re나


여름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강렬한 태양빛과 넘쳐나는 초록빛이 나로 하여금 질주하게 만든다. 여름의 기억들이 다른 계절을 살아가게 한다. 마음과는 다르게 몸으로 실감하는 계절의 변화, 여름에 나는 어느 때 보다 활동적이고 자유로워진다. 계절의 향기와 내면의 혼잣말이 찰떡이 되어 안으로만 파고드는 계절들과 다르게 내 일상의 서사에서 계절의 체취를 지워 버리고 내 삶의 지배자가 된다. 1년 중 겨우 몇 개월 무엇가를 더하고 바꾸고 성장하려고 애쓰며 나의 에너지에 저항하는 일에서 잠시 벗어난다. 더 이상 고요하고 정돈된 삶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여름과 시간과 일상이 상냥하고, 즐겁고, 호의적인 몸짓으로 전환된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에너지와 리듬에 기대어 삶의 질감에 가 닿아 보는 것이다. 올해 여름은 날씨가 만만치 않았지만 따갑게 질책하는 성장의 계절이었다.


연하고 부드러운 작은 솔잎 같은 잎들이 보슬보슬 모여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화분을 여름이 끝날 무렵 들였다. 미리오 클라두스, 남아프리카의 아스파라거스과 식물로 봄부터 가을까지 흰색의 작은 꽃을 피운다. 여리여리한 줄기에 강아지풀 같은 잎들이 모여 만든 우아한 생김새가 맘에 들었고, ‘겉으로는 지독하게 연약해 보이지만 독성이 있어 조심하라니 외유내강인가!’ ‘풉‘하고 웃음이 났다. 정확하게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기 힘들 정도로 대상을 구분하기 어려워 추상 미술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 클로드 모네의 그림처럼. 선명한 선과 뚜렷한 모양을 드러내지 않고, 사이사이 새어드는 빛에 따라 형태를 달리하며, 은은하게 다가오는 작은 화분이 뿜어내는 균형적인 호감에 매료되는 중이었다. ‘나는 식물을 볼 때도 사람과 다르지 않게 금사빠가 작동하는구나!’ 바뀌기는 어렵더라도 조금 더 신중하자고 잠시 생각했다. 충분히 물을 주고 정기적으로 다른 화분으로 옮겨 심고 적당한 관심으로 돌보면 오랫동안 살 수 있는 수명이 긴 식물이라 했다. 키우던 식물들은 잠시 내 기분을 고양시키고 마음의 안정을 선사하고는 몇 개월을 못 버티고 떠나기 일쑤였다. 집안으로 들인 식물을 끝까지 키워내지 못한 실패감은 불성실이나 무책임의 죄책감으로 쌓여있지만, 새로운 만남의 신선함과 한 동안 유지될 마음의 위안에 대한 기대를 이겨내지 못했다. 지금으로서 내가 지킬 수 있는 것은 제때 흠뻑 물 주기뿐이었지만, 다시 한번 가동되는 이기심의 회로가 작은 화분을 반갑게 맞이했다. 일주일 한번, 일요일 아침 잊지 않고 흠뻑 물을 주었다. 반양지 식물이라 항상 주방 아일랜드 식탁 위에 놓여 있던 클라두스는 일주일 한번 흠뻑 샤워를 하고, 베란다 창가로 일광욕을 나선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과 클라두스 작은 잎에 맺힌 물방울이 만나 보내는 반짝임의 순간을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물끄러미 바라본다. 식물을 키우는 이유를 하나 더 찾은 셈이다.

정원사로서 섬세한 시각을 가졌던 작가 카렐 차페크는 소설 <평범함 인생>으로 만나 내 삶의 질서를 다듬어 갔지만, 자연과 협력하여 예술을 창조하는 철학자로서의 면모를 <정원을 가꾸는 사람의 열두 달>에서 보여주었다.

“누가 가드닝을 목가적이고, 명상적인 일이라고 했나, 마음 바쳐서 하는 모든 일들이 그렇듯, 가드닝 역시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열정 그 자체다.”

유머러스하고 따뜻하게 풀어낸 정원사의 일상을 훔쳐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정원의 로망을 키웠던 나의 마음은 자연의 질서와 식물의 시선을 알아챌 만큼 너그럽지 못했다.


다행히 클라두스는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될 때까지 은은한 초록빛을 과시하며 잘 자라고 있다. 해충이 있거나 잎이 말라버리는 외적인 변화가 없어, 알아서 잘 성장하나 보다 생각했지만, 얼마나 커가고 있는지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 물을 줄 때, 벌레 먹은 데는 없는지, 노랗게 변해가는 잎들은 없는지, 혹시 시들어 가는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 살펴보지만, 평소에는 빈티지한 토분과 잘 어울리는 미리오 클라두스를 멀리서 감상하며 미소 짓는데 그치고 말았다. 일주일에 한 번의 관심이 무색하게 어느새 옆으로 불쑥 길고 가느다란 줄기가 뻗어 나와 존재감을 드러냈다. ‘다행이다, 별문제 없이 잘 자라고 있었구나!’ ‘이왕이면 가운데로 뻗어났으면, 더 좋았을 텐데,‘ 나도 모르게 이기심의 회로가 발동했지만 그 마음을 오래 붙들지는 않았다. 클라두스 작은 잎들에 맺힌 물방울이 증발하는 것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아주 느린 속도로 자유롭게 성장하는 식물의 방식 받아들이고 있었다. 내 단순한 애정을 부끄러워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길고 가느다란 줄기 끝을 중심으로 주변에 고운 연둣빛 작은 잎들이 복슬복슬 맺혀가기 시작했다. 작은 잎들을 틔우며, 그린빛 그라데이션을 스스로 만들어 지루해하는 나의 관심을 끌어 모았고, 가슴으로 번지는 환한 기쁨과 안도감은 잊고 있던 어느 푸르른 여름의 순간으로 나를 데려갔다.


여름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대나무 자리가 깔린 거실 바닥에 엎드려 책을 보고 있는 20여 년 전의 나를 본다. 주말을 끼고 며칠 연차를 내어, KTX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늦잠으로 피곤을 몰아내고 여유로운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집안은 고요했고, 아빠와 나 단둘뿐이었다. 베란다를 가득 메운 초록빛을 풍경삼아 달랑달랑 다리를 흔들며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펼쳐 들었다. 고등학교 때 읽었던 책을 처음 다시 들춰본 것이다. 아빠는 부엌에서 거실을 지나 베란다로 여러 번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셨다. 나 보다 훨씬 큰 해피트리 나무 2그루와 산세베리아, 몬스테라, 동양난, 이름 모를 식물들까지 아빠는 죽어가는 나무도 살려내는 부지런하고 용한 식집사였다. 해피트리 나무의 검은 흙은 노란 영양제를 꽂고 있었고, 어떤 식물은 깔끔한 실루엣으로 가지치기의 흔적을 남겼으며, 어떤 식물은 나무 지지대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아빠는 마술사 같아서 어떤 때는 목수가 되고 어떤 때는 전기공, 어떤 때는 역사선생님, 어떤 때는 스포츠 해설가, 또 어떤 때는 나의 백과사전이 되어주었다. 가드닝 용품을 사지는 않았을 아빠의 손길 가득한 핸드메이드 나무 지지대의 출처가 무척 궁금했을 뿐이다. 일 년 전 여름, 아빠의 대장암 수술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다행히 수술 후 안정적인 회복을 하셨지만, 드러나지 않은 마음은 크고 작은 걱정으로 가득했다. 수술 후 얼마가 지나고 나서, 자주 집에 갈 수 없었던 나는 서울에서 집으로 해피트리 나무 2그루를 맘대로 보내 버렸다. 베란다에 풍성한 초록이 있으면 아빠 마음이 좀 즐거워지지 않을까, 아빠의 회복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지극히 내 개인적인 마음에서였다. 아빠가 느끼고 경험했을 충격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모두 다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마음의 안정을 찾는데 도움이 되는 게 무엇일지 생각하다가, 미리 여쭤보지도 않고 주문을 하고, 집으로 통보 전화만 덜렁 해버린 것이다.


“아빠, 이 나무는 어디로 옮길까요? 이건 이쪽으로 옮기면 될까요?” ‘아이코, 왜 이렇게 무거워!’ 버거워 보이는 아빠를 대신해 집채만 한 해피트리 나무를 이리저리 옮기며 땀방울을 쏟아냈다. 대장암 수술을 앞두고 아빠와 나는 서울 오피스텔에서 일주일을 함께 보냈다. 아빠가 챙겨주시는 아침을 먹고, 출근했고, 일찍 퇴근하여 근처 공원에서 함께 산책을 했다. 어색한 공기 속에서 느꼈던 작은 행복, 아빠와 단 둘이 나누는 마음을 나는 즐기고 있었다. 그때 이후 처음으로 아빠와 단둘이 즐기는 행복한 오후였다. ‘초록이 많으면, 마음이 즐겁지 않을까!’하는 생각만 했지, 물 주고, 다듬고, 돌보는 일이 얼마나 성가시고 힘든지를 생각하지 못했다. 집에 내려올 때마다 매번 더 키가 크고 짙고 풍성해진 잎사귀에 감탄만 했지, 뒤에서 애썼을 아빠의 수고스러운 손길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다. 가끔 본가에 내려와 베란다의 푸른 풍경을 즐기기만 했던 내가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호수 샤워기로 흠뻑 물을 주고, 겸사겸사 베란다 청소도 하셨다. 각자의 자리에 되돌려 놓고는 아빠는 마른 수건으로 화분의 물기를 하나하나 닦아냈다. 커다란 잎사귀 하나하나에 분무까지 해주고 나서야 아빠의 베란다 정원 가꾸기는 마무리되었다. 먼지까지 말끔히 씻어낸 잎사귀는 더 푸르게 반짝 빛나고 있었고, 아빠는 그제야 허리를 펴고 뒷짐을 진 채, 해피트리 나무의 한 가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읽다만 책이 궁금해 다시 발라당 엎드려 책을 펼쳐 들었을 때, 나지막이 읊조리던 아빠의 목소리가 귓가에 쿵하고 박혔다.

“나무들도 숨을 쉬어야 살지!”

아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나의 심장에 쿵하고 다가왔지만, 아빠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언젠가, 문득, 느닷없이,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그리워하게 되리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생명은 순환하며,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작지만 사소한 소중한 순간들이 삶을 키워나간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 해피트리 나무는 점점 시들어 풍성한 귀품을 잃어갔고, 작고 예쁜 베란다 정원의 푸르름도 사라지고 말았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