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의 불
<불선불악(不善不惡)> -질투(嫉妬)의 불-
내가 남을 돕는 것은 선한 것.
내가 남을 해치는 것은 악한 것.
남이 나를 돕는 것은 선한 것.
남이 나를 해치는 것은 악한 것.
내가 남에게 부탁을 했는데 남이 안 들어주는 것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불선불악.
남이 나에게 부탁을 했는데 내가 안 들어주는 것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불선불악.
나는 남을 도울 수도 있고 안 도울 수도 있다. 남의 부탁을 거절했다고 나쁜 것이 아니므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남은 나를 도울 수도 있고 안 도울 수도 있다. 나의 부탁을 거절했다고 나쁜 것이 아니므로 미워할 필요도 없다.
나는 남을 도울 수도 있고 안 도울 수도 있다. 남도 나를 도울 수도 있고 안 도울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남을 돕지 않았다고 죄책감을 가지거나 나를 돕지 않았다고 미워할 필요가 없다. 불선불악이니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면 좋겠다.
이렇게 불선불악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을 가볍게 한다. 그런데 불선불악이지만 짜증이 나는 경우도 있다. 남편이 나를 좋아하는 것은 선이다. 남편이 나를 싫어하는 것은 악이다. 그리고 남편이 남도 좋아하는 경우에는 나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므로 불선불악이다. 그런데 짜증이 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질투의 불을 어떻게 끌 수 있을까? 사촌이 논을 사는 것은 사촌이 나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므로 불선불악이다. 그런데 짜증이 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질투의 불을 어떻게 끌 수 있을까? 좌절된 욕구를 어떻게 충족시켜야 할까?
사람의 욕구는 세 가지로 구분하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욕구는 안전에 대한 욕구이며, 안전을 위협하면 흥분하고 분노에 빠지고 힘에 부치면 공포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인정받으려는 욕구도 중요한 욕구인데 인정욕구가 어그러지면 불안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남을 지배하려는 욕구도 매우 중요한 욕구인데 마음대로 안되면 미운 마음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안전 욕구, 인정 욕구, 지배 욕구 등은 삶을 유지시키는 힘이기도 하다. 욕구가 사라지면 죽음이다. 그러므로 욕구를 추구한다고 해서 비난할 일은 아니다. 그리고 욕구를 추구하다 좌절로 인한 분노, 공포, 불안, 미움 등의 문제들은 해결되어야 한다.
사람은 남에게 분노하고, 살의(殺意)를 느끼고, 시기와 질투를 하면서 교만하게 살아간다. 이러한 중생의 마음을 부처님의 마음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부처님의 마음은 사무량심(四無量心)이라 하며 자비희사(慈悲喜捨)의 네 가지 마음이다.
자(慈)는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며, 비(悲)는 남과 함께 슬퍼하는 마음이며, 희(喜)는 남과 함께 기뻐하는 마음이며, 사(捨)는 교만심과 자만심을 버리는 마음이다. 자(慈)는 분노하는 마음을 다스리게 해주며, 비(悲)는 살의(殺意)를 다스리게 해주며, 희(喜)는 시기와 질투의 마음을 다스리게 해주며, 사(捨)는 교만심과 자만심을 다스리게 한다.
남을 사랑하는 것, 남과 함께 슬퍼하는 것, 남과 함께 기뻐하는 것은 자만심을 버려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남편이 남도 사랑할 때 함께 기뻐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사촌이 논을 사면 함께 기뻐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이렇게 어려운 이유는 자만심을 버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질투의 불을 끄기가 어렵지만 계속해서 捨捨捨捨捨를 반복하면 질투의 불이 捨그라들 것이다. 捨捨捨捨捨捨그라들 것이다. 그리고 아공(我空), 법공(法空), 연기(緣起) 등을 진짜 알면 불을 끄기가 쉽다.
2. 위 글의 내용과 거리가 먼 것은?
①내가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친구가 거절하면 그 친구는 나쁜 친구이다.
②사촌이 논을 산 것은 불선불악이므로 짜증을 낼 필요는 없다.
③사람의 욕구는 안전의 욕구, 인정받으려는 욕구, 남을 지배하려는 욕구 등이 있다.
④사람들이 자신의 욕구를 추구할 때 비난만 할 수는 없다.
⑤질투심을 버리기 어려운 이유는 자만심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