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예정 May 03. 2023

'간이역' 역사 교사가 사랑하는 문장들 #01

"동의하지 않아도 봄은 온다" - 최승자

  꿋꿋하게 버텨온 시간들이 쌓이는 동안 한 번씩 찾아오는 상처, 고통, 시련, 아픔들은 어느 정도 단단해졌다고 생각될 때조차도 쉽게 적응이 되지 않습니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들로 인해 피곤이 몰려 올 때면 저는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서 스스로를 충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헬스장에서 땀 흘리며 운동을 하고, 좋아하는 문장을 수집하기 위해 이런저런 책들을 뒤적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정말 많은 이들이 즐겨보는 매체로서의 유튜브와 글로벌 OTT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개인적인 즐거움과 혹시 수업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영상 매체들을 탐색하곤 합니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본캐인 교사로서 쏟아내다가 그 남은 절반의 하루를 제가 좋아하는 것들에 빠져서 마무리하는 일상을 반복하지요. 그러다보면 닿게 되는 평안의 시간, 안온한 순간, 잠시라도 좋으니 푹 잠기고 싶은 시간이 찾아옵니다. 어느새 상처, 고통, 시련, 아픔들의 원인이 되었던 시간과 사람에 대한 기억은 차츰 흐릿해지고 조금은 거리를 두고서 생각할 수 있는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약간 떨어진 그 거리만으로도 저는 교사로서 받을 수 있는 상처와 고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시도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을 위해 쏟는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조금은 더 어른스러운 사람이자 교사가 되고 있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그리고 섭리가 그러하듯, 상처가 난 자리에 상처가 다시 나지 않으리란 법은 없고 상처가 생길 때의 통증이 무뎌지기는 할지언정 통각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저는 그때마다 되뇌이는 문장들의 힘을 받고자 저의 수집품들을 뒤져보곤 합니다. 그 중 언제나 종이에든, 마음에든 새겨두는 문장이 "동의하지 않아도 봄은 온다"입니다. 자연의 섭리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한 여러 작가들의 문장이 주는 위안처럼 최승자 시인의 문장은 '신께서는 극복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는 말보다도 섬세하게, 때로는 든든하게 저의 중심을 잡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오지 않을 것만 같은 순간을 막연하게 기다리는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언젠간 오고야 말 행복한 순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저버리지 말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의연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저 문장에 담긴 힘을 생을 살아본 이들 중 누군가는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진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문장이 내 앞에서 실현되는 순간은 찰나이겠지만 돌이켜보면 그리 머지않아 찾아오곤 했다고 기분 좋게 회상하는 날들을 만끽할 수 있겠지요.



  결국은 찾아 오고야 말 봄을 기약하고 기대하면서 매일 매일 작은 것들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교사로서의 삶을 이야기할 때마다 되새기게 될 이 문장을 시작으로 저의 교단 일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이 일기를 읽으시는 모든 분들에게도 각자가 원하는 봄이 찾아 오길 바랍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