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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예정 May 07. 2023

'간이역' 역사 교사가 사랑하는 문장들 #02

"인생의 보석들은, 평소의 시간 틈에 박혀 있습니다." - 유병욱

  반갑기만 했고 끝나지 않기만 바랐던 5월의 짧은 연휴가 끝나갑니다. 일상 속에서는 쉽게 마주하거나 발견하지 못하는 즐거움과 행복을 위해 온전한 '쉼'이 아닌 '분주함'을 선택하게 되는 우리에게 연휴는 가만히 앉아서 스스로에게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내어주지 않는 것만 같습니다. 사람의 성향과 취향, 선택에 따라 그 시간은 달리 쓰이기 마련이겠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조차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가보기 힘들었던 곳에 가며, 일상처럼 즐기던 운동이지만 더욱 매진해서 하는 등 시간을 더 들여가면서 그동안 채우지 못했던 것들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찾아나서서 잠깐이라도 얼굴이나마 비추고 돌아오는 식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흔히 '월화수목금퇼'이라고, 또는 우리의 '일상'이라고 부르는 시간은 사실 물리적으로 단절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라는 개념은 인간에 의해 발명된 이후에 절대적인 개념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상대적인 것으로 다시 인식되어야 한다는 어려운 담론의 주제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미 우리 삶에서 끊임 없이 흐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식의 바깥에서 객관적으로 관찰 가능한 것처럼 여겨지면서 인간의 편의에 따라 분절이 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어 이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척도인 것처럼 소비되곤 합니다. 저부터도 나름의 규칙과 확고한 기준에 따라 하루를 보내면서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성찰을 하기도 하면서 스스로 시간을 잘 쓰고 있다고 생각하곤 하니까요. 온전한 쉼이 있는 휴일을 즐기는 법을 깨닫기까지 아마 더 많은 휴일들을 마주해야 할 것 같은데... 환상적인 생각이지만 어디까지나 꿈 같은 이야기일 뿐이라 아쉽기만 합니다.

  이 시간이 지나면 저는 교사로서의 일상에 다시 복귀해야 합니다. 학생들을 만나고, 동료 선생님들을 만나며 수업을 하고 업무를 해결해야 합니다. 퀘스트를 깨듯이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하겠지요. 교사로서의 본캐를 잘 살아내고 나면 퇴근 후의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위한 글감을 찾을 것입니다. 그러곤 다른 휴일은 언제 찾아올지 달력을 살펴보곤 하겠지요. 빼곡하게 적혀있는 일정표에 해결된 것, 완수한 것, 지나간 것들은 지워가면서 일상이 지나가는 순간들을 확인할 것입니다. 그러다 주말이 다가오면 '어느새 시간이 빨리 흘렀네'라는 생각과 더불어 또 힘을 내어 수업을 시작할 것입니다.


  일상을 바쁘게 살아내는 과정의 중간에 찾아오는 휴일은 누구에게나 반가울 것입니다. 평소에는 잘 누리지 못했던 자기만의 행복을 휴일에는 누릴 수 있을 테니까요.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듭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만끽하기 어려웠던 것들을 곰곰히 생각하고, 꿈을 꾸고, 계획하고, 알아보고, 조사하고, 탐색하고, 끝내 휴일에 즐겁게 이루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는 과정이 일상생활을 하다보면 담겨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요.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양말 또는 포장된 선물 박스에 손을 직접 대보기 전의 감정과 선물이 무엇인지를 확인한 이후의 감정에 미묘한 차이가 있었던 것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선물은 그 안에 있음에 변화가 없지만 선물이 무엇인지 알기 전까지의 감정에 미묘한 변화가 오히려 선물에 대한 고마움과 기쁨을 주었던 것처럼 우리들의 일상도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저에게 일상의 보석은 휴일에만 찾아오거나 발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작가가 이야기한 '평소의 시간 틈' 사이사이에 제가 좋아하고 즐기는 것들, 또는 좋아하지만 지금은 즐기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와 생각과 감정을 차곡차곡 끼워둡니다. 그러다 이 감정들을, 노래 가사처럼, 꺼내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을 때 음미하고 즐기며 행복해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일상은, 우리에게 평소는, 반복되기만 해서 지루한 게 아니라 때때로 즐겁고 행복하게 느껴야만 하는 것들에 더 큰 향과 여운과 깊이를 선물해주는 크리스마스 양말, 선물 포장이 되어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면 발견되는 보석들도 어쩌다 하나씩은 생기기 마련이겠지요.


  평소의 시간 틈에 조금씩이라도 박혀 있는 보석들, 기쁨들을 생각하고 만끽하기 위해 저는 내일부터 또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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