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아무리 외부의 누군가로 인해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결국 나의 문제다.
어디에서, 왜, 그리고 무엇 때문에 나는 지금 이 시대가 힘이 드는지 묻는 것부터 삶의 고통은 천천히 줄어들 수 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나의 존재가 어느 한 순간 가벼워 질 수 있는 순간이었을 수 있었으니까.
그로 인해, 매일 평범했던 나의 일상이 사실 너무나 편안한 나의 삶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줄 수 있었다. 지구가 태양을 돌고, 달이 지구를 돌고 있는 매일의 시간들이 사실, 너무나 지루한 반복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편안한 오늘과 막연한 기대가 있는 내일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지금 우리가 가장 행복해 질 수 있는 순간을 찾고자 하는 중요한 의미인 듯 하다.
박병래 작가의 슬픈 길은 결국 그 모든 것들이 끝날 수 있다는 희망의 길이다. “블루 하이웨이”를 걷는 사람들,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는 수 많은 사람들의 행렬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전쟁을 피해 또는 평화로운 곳으로, 고단한 일상을 피해 서로 의지할 수 있는 편안한 곳으로 향하는 그들의 행렬에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명확한 의지가 있다.
이러한 행렬에서 시대의 아픔과 그 치유를 찾고자 하는 박병래 작가의 평화와 회복의 메시지는 매일 아침 서로에게 말없이 묻고 의지하는 안부로부터 시작된다. “당신, 여전히 그곳에서도 잘 지내요?” 울컥하지만 잔잔한 오늘 하루를 살고자 하는 의지로 시작되는 안부다. 전쟁으로 떠난 지아비의 밥그릇을 매일 장만했던 우리의 어머니와 떠난 지어미의 댕기머리 끝을 잡고 장작을 패던 아버지의 그 것처럼 당신이 평화로울 수 있는 그때를 작가는 상상했던 것 같다.
박병래 작가의 화풍은 부드럽다. 무언가를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우리가 바라보는 이 시대, 나아가 인류가 경험해 온 모든 시대가 얼마나 명확할 수 있었을까, 한번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은 작가의 작품처럼 흐릿한 기억의 조각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행복해 할 수 있는 순간에도 다음을 걱정하고 막연한 행복을 떠올려야만 하는 순간들을 작가는 ‘포착’한다. 카메라의 셔터가 담듯이.
따라서 그 우울한 길, 블루 하이웨이를 걷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미 걸어 왔지만 걸어 온 그 길로 다시 돌아 갈 수 있음에 대한 메시지다. 길이라는 것은 이어지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