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것, 혹은 살고 있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 여전히 우린 주어진 삶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의 삶에서 아름다웠다거나 아팠다거나 할 수 있는 경험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선택할 수 없다. 삶은 그렇게 각자의 몫으로 세상과 함께 움직인다. 또한, 수 없이 많은 선택의 순간 역시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무거운 짐이다.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해야만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작가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어느 순간의 감정과 기억들을 시각적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이은경 작가의 인물(자화상)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세상과의 심리적 감정적인 탐색의 가능성 혹은 그 탐색에 따른 안전한 순간들을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전통적인 회화 기법의 화면구성과 색채 표현을 떠나 표현된 그의 인물들은 자신만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
특히, 작가의 작품 “향유”를 토대로 한번쯤 겪었을, 삶의 현실과 부딪혀야 하는 모든 개인들의 내면 세계와 외부와의 고단한 관계를 보여준다.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삶의 무게였고 과연 이 삶이 나에게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음에도 우리는 항상 저 구정물로부터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것. 하지만 그 주변에서 헤엄치고 있는 심해어나 화석으로 밖에 볼 수 없었던 생물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유와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 삶의 시작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자연의 섭리까지는 아니겠지만, 대다수의 동물들은 자기보다 큰 몸짓을 가진 상대는 피한다. 곰이 위협적인 상대를 만날 때, 두발로 일어나 자신의 덩치를 과시하거나 두꺼비가 뱀을 만나 한껏 자신의 몸을 부풀리거나 하는 행동들이다. 사실, 이건 과시나 지배적 욕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보호, 방어를 위한 행동이다. 자연은 절대 먹이사슬을 벗어나 권력과 욕구를 위해 누군가를 해치지 않는다.
따라서 작가가 표현하고 있는 인물들의 손과 발이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부풀려진 몸짓들은 세상과 여전히 소통이 되지 않는 이야기를 위한 강한 외침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로, 내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이 내가 선택할 수 없었다고 해도 단 한번이라도 어떻게든 선택의 순간을 찾고자 하는 몸짓인 듯 하다. 작가의 그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