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아내면서 무언가를 결정한다는 것은 내 삶을 송두리째 전혀 다른 삶으로 이동하거나 아예 나를 알고 있는 누군가의 사고에서 벗어나는 일일 것 같다. 그렇게 결정되지 않는 삶은 그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같은 삶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을 것처럼. 여전히 오늘과 내일 그리고 어제로부터 이어지는 우리의 삶은 변화의 결정보다는 변화에 대한 꿈을 꾸는 것이 훨씬 이로울 수 있다는 생각이다.
꿈은, 언제나 황홀했었던 기억과 함께 꼭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의 덩어리가 그것이 얼마나 짧은 찰나였을지는 모르지만 순간, 행복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 막연한 꿈속에서 살고 행복할 수는 없으니까. 우린 늘 뻑뻑한 일상을 그리고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 삶을 또 기대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의 삶을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 어쩌면 가장 간단한 순간일 수도 있겠다. 접시에 그려진 누구나 편안하게 인정될 수 있는 이미지들을 다시 평면회화로 옯긴 황연주 작가의 작품이 그랬다. 아무도 바라보지 않았던 이미지들을 다시 찾고자 했던 작가의 사고의 폭은 가장 일상적인 곳으로부터 고차원적인 사고의 키포인트를 찾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말하자면, 모든 사고와 사건의 실마리는 바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에 다 녹아 있다는 것. 어떻게 그 일상을 들여다보고 변화할 수 있는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전혀 다른 정신적 차원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
작가가 그리고 있는 현재의 일상은 기다리고 있었다기 보다 기다릴 수 밖에 없었던 어제의 연장이었다. 하지만 그 일상이 그렇게 막연하거나 의미없는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결국 오늘의 일상은 오늘로 끝나고 내일이면 어제가 되는 일상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미래의 꿈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그런 의미로 황연주 작가의 그릇 그림들은 오늘의 일상이 의미 있으며 다시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가장 일상적인 순간에 만나는 이미지들이야 말로 어쩌면 우리를 가장 편안한 순간으로 인도하는 이미지일 수 있으니까.
그리고 작가는 지난 기억을 풍경으로 그린다. 막연하지만 이해한 바로, 그때 그 사건들을 풍경으로 기억한다. 떠난 것들과 떠날 것 같은 것들이 혼재되어 있는 풍경은 기본적으로 쓸쓸하다. 하지만 색은 강렬하다. 도저히 그 때 그 장소에서의 감정들을 잊지 못할 것 같은 강렬한 감정이다. 한편으로는 평화롭기도 하다. 화면 전반적인 구도가 가장 멀리 보이는 곳 시선이 가장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작가의 풍경 작업은 쓸쓸하지만 편안했다.
오히려 그리는 행위가 그런 지난 시간과 기억들을 각인하게 되면서 또 다른 위안과 기억이 아닌 기록의 역할이 가능할 수 있는 매체여서 그리는 것이 나름 편안해 질 수 있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무엇인가를 혹은 누군가를 그리는 것은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감정인 것은 사실이다.
매일의 일상을 견디고 살면서 가슴 한 쪽 어딘가를 자꾸 누르면서 기억해야 할 삶이 있다면, 그 매일은 풍요로운 풍경들로 반전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렇게 나의 일상의 결정들이 보다 깊이 있는 오늘을 보고 내일을 기다릴 수 있는 힘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하루를 찾았으면 좋겠다. 나는 오늘 어떤 그릇에다가 나의 요리를 담았을까. 세상 제일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질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