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단순한 기록 매체를 넘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의미로 변주할 수 있는 강력한 예술적 도구이다. 이러한 사진의 특성은 우리에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각적 언어를 가능하게 한다. 백도현 작가는 이러한 사진의 본질을 깊이 탐구하며, 그의 작업을 통해 대상이 어떻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 받음으로써 전혀 다른 의미로 변화하는지를 보여준다.
백도현 작가의 사진 속 인물들은 단순한 초상이 아니다. 그들은 작가가 설정한 미장센 속에서 특정한 역할을 부여 받으며, 고정된 의미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는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철저한 연출을 바탕으로 한 또 다른 세계의 창조이며, 사진이라는 매체가 가지는 조형적 가능성을 충분히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다. 그의 사진 속 인물들은 사회적, 직업적, 개인적 정체성이 혼재된 채 서로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그들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혹은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특히, 그의 작업은 단순한 순간의 포착이 아니라 긴 여정을 담아내는 서사적 특성을 띤다. 한 장의 이미지가 단편적인 스냅샷이 아니라, 한 인물의 삶 속 깊이 스며든 이야기의 한 장면이 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자신을 정의하고,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과도 닮아 있다. 그의 사진 속 인물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으며, 그들이 지닌 고유한 서사는 우리의 경험과 맞닿아 있다. 결국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 혹은 하고 있는 일들이 만들어낸 정체성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작가가 제시하는 미장센 안으로 들어갔을 때, 과연 그 삶이 얼마나 위로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막연한 고민이 드는 것, 역시 작가가 매 순간 제시하고 있는 이미지 속에 담긴 메시지이기도 하다.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의 경계는 여전히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대하고자 하는 태도이고 그것의 무게였을 것이다. 아무도 결정할 수 없었던 삶의 역할이었다. 본 전시는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다양한 역할과 그 역할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자신에 대한 들여다 보기를 권한다. 우리는 일하며 살아가고, 또 일하고 싶은 존재들이다.
백도현 작가는 그 과정에서 변화하는 개인의 정체성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조명하며, 단순한 관찰자를 넘어 우리 스스로 삶의 주체적 역할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의지를 세우고 있다. 사진 속 인물들이 한정된 프레임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넘어 또 다른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 내는 것처럼, 쉽게 결정되었던 것 같은 우리의 삶이 사실 지난한 역사의 흐름과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삶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