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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된 선, 경계를 짓고 없애다

전지호 작가 개인전 평문

by Curapoet 임대식

경계는,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역할과 함께, 그 둘을 잇는 역할도 한다. 즉, 경계의 의미는 서로 다르다는 것보다는 각자의 위치와 존재 방삭의 차이를 인정할 수 있는 범위를 말한다. 따라서 사회적 구조에 있어서 경계 역시 단순히 각각의 존재 방식의 차이와 그 방식이 인정되는 영역의 문제인 것이지 차별과 다름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결국 경계는 판단하고 이해하는 정도에 따라 매우 유동적이며 유기적인 개념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차이를 인정하되 그 어떤 강압적인 권력이 작동할 수 없는 것이 경계인 셈이다.


어느 날, 노숙자들이 깔고 덮고 때로는 아예 박스를 만들어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잠을 청하고 있는 모습을 본 전치호 작가는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의 경계를 만들고 있는 골판지를 발견하게 된다. 지극히 상징적인 의미로서 골판지였지만, 말 그대로 골이 패어 있는 두꺼운 종이면서 바람과 추위를 효과적으로 막아주는 최소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어막이기도 했다. 그때부터 작가는 사회적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경계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상징적으로 골판지의 골을 다시 접어 그 선을 휘거나 무의미하게 만드는 작업을 했다. 이렇게 원래의 기능을 잃어버린 선들은 그 의미와 가치가 확장하게 되고, 사회를 이루고 있는 편견과 차별이 스스로 세상을 향해 긋고 있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선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가 뒤틀어 버린 선들은, 차이와 이해의 경계를 확장함으로써 사회가 포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고 오히려 작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내밀하고 치유적인 작업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또한, 구기고 다시 접는 방식으로 재해석하게 되는 작가의 확장된 선의 개념은 일반적으로 회화에서 사용하고 있는 선의 개념하고는 다른 표현방식을 띄고 있다. 이는 직선적이고 권위적인 선이 아닌 구기고 변형시켜 불규칙적이고 즉흥적인 형태로 바꾸는 작업으로 그 동안 우리가 믿고 경계 지어왔던 사회적 구조와 의식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는 것에 작가의 노동집약적인 작업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먹을 사용해 채도를 낮춘 작품의 색채는 시각예술의 공간적 표현영역에 시간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적인 장치다. 즉, 이끼 낀 오래된 바위와 같이 시간이 만들어 놓은 안정적인 색을 연출하고자 했다. 구겨진 선들이 모여 선의 덩어리를 만들고 그 덩어리들이 서로의 위치를 점유하면서 겹쳐지는 작업들로 공간감을 확보했다면, 색은 작품의 시간성을 담보 한다.


따라서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경계에 대한 또는 그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선의 개념들은 우리가 지켜야 하는 사회적 경계를 시각적으로 해체하고 확장함으로써, 관객들에게 보다 넓은 사고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경계에 대한 또 다른 사고의 방법들을 탐구하며, 명확한 경계를 고집하고 있는 사회적 구조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작가의 손을 통해 변형된 골판지의 선은 단순하게 그 선을 구기고 없애는 행위가 아닌, 지금 내 주변에서 현실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매 순간이 과연 우리에게는 어떤 메시지일까를 고민하게 한다.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에 나와 너의 경계를 왜 이렇게 견고하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그 견고했던 경계를 얼마나 유기적인 소통의 수단으로 만들 수 있을까. 작가가 구겨놓은 선에서 한번은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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