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영 작가
세상의 모든 것들은 우리가 바라보는 순간, 그 찰나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쉽게 말해 우리가 무엇인가를 바라봤을 때, 그 무엇인가는 바라보고자 했던 우리의 의지에 반응한다는 말이다. 사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내. 외부의 경계라고 정의하는 것은 지극히 시각적인 편의를 위해서 필요했던 부분이다.
이는 시각적 편의, 즉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들의 경계가 정의되지 않고,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는 중첩이 가능한 세계를 믿는 다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무서운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송은영 작가가 바라 보고자 한 세계는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스스로 보는 것 자체가 행위를 넘어 사물의 존재 여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시각의 힘이 작동 뒬 수 있는 세계였다. 그 곳은 정해지지 않는 아니, 정해질 수 없는 세계이기도 하다. 사물과 사물의 사이와 공간과 공간의 간극을 넘나들 수 있는, 바라보는 힘이 작동되는 세계에서 작가의 시선은 색이 정의하는 사물의 진정한 의미와 그 사물을 감싸고 있는 공간이 전하고 있는 이야기를 쫓는다.
어색한 색의 대비는, 너무나 익숙하게 경험되었던 빛의 떨림에 반목되는 것 뿐이지 색은 그 자체로 자신이 실존코자 하는 사물의 외적 정의일 뿐이다. 송은영 작가의 블루와 오렌지 계열의 색들은 작가가 보고자 하는 의지로 인해 그 사물들에게 나타나는 색이지 원래 그것들이 가지고 있었던 색은 아니다. 따라서 스스로 빛과 떨림을 가지고 있는 색은 서로 대비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말로 어울리거나 하는 것들이 아니다. 색은 단지 우리가 보고자 하는 의지와 힘에 의해 그 사물의 존재를 드러내는 양자의 세계 속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정의하거나 알 수 없는.
송은영 작가의 시선은 이미 우리가 편하게 정의해 놓은 세계를 넘어 그 이전과 또 그 이전에 지금 이 공간에서 벌어졌을 사건들까지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 한 없이 바라보았을 화분과 그 화분이 창문을 넘나들면서 자신의 존재를 지켜왔을 것 까지 그의 시선을 쫓다 보면 시. 공간의 의미가 지극히 개인적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는, 지금 내가 이 자리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 역시 아주 오래 전 누군가가 지금 나와 같은 고민과 생각을 했었음을 믿게 만든다.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 세상과 그 장면은 원래 그렇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것. 그것이라면 어쩌면 내가 보고 싶어하는 세계에 대한 생각들을 좀 더 진지하고 긍정적으로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글. 임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