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일례로 존 케이지의 <4분 33초>는 연주자가 피아노 앞에 앉아서 4분 33초 동안 아무 행위도 하지 않고 퇴장하는 퍼포먼스의 형태를 지닌다. 이때 곡에 대한 해석은 악기가 소리를 내지 않을지라도 공연장 내 청중들의 소리, 공간 내 기기의 미세한 소리 등이 있기에 완전한 무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함의가 있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어떠한 행동도 없이 그저 피아노 뚜껑을 열고 닫는 것만이 퍼포먼스의 전부라는 사실은 공연을 관람하는 모든 관객을 납득시키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그 행위에 관련된 해석을 알게 된 이후에는 다소 모호한 부분이 있을지라도 예술의 표현 방식 중 하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앞의 일례를 언급한 이유는 <초임계유체 with 리퀴드사운드> 역시 예술을 표현하는 방식이 참신하다는 느낌이 또렷하게 다가와서이다. ‘실험적 행위들이 예술적 임계점을 넘어가는 순간’을 주제로 내세운 이 공연은 한 시간도 되지 않는 공연시간 동안 여러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처음 공연장에 들어서면 관객과 가까운 무대에는 이런 기계가 놓여 있다. 그리고 이 기계가 작동하며 하얀 천이 천천히 움직인다. 무대에는 한 명의 사람도 없다. 오로지 이 기계만으로 공연의 오프닝이 시작된다. 기계가 작동하며 하얀 천은 천천히, 하지만 이내 빠르게 움직인다. 움직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소리도 들린다.
기계를 응시하며 천들의 움직임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이내 연주자들이 무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이 공연은 대금과 여러 설치미술, 사운드가 결합된 연주이다. 그렇기에 대금을 쥐고 들어오는 연주자와 기계를 만지며 소리를 조절하는 사운드 연주자가 함께 들어온다.
이들은 공연장 안으로 들어와서 곧바로 악기를 연주하지 않는다. 기계를 통해 움직이는 천 하나 하나에 마이크를 갖다 댄다. 여러 천이 움직이는 소리가 처음보다 더 크게 들린다. 그제서야 한 명의 연주자는 대금을 입에 대고, 또 다른 한 명은 작은 북 앞에 앉아 본격적으로 연주를 시작한다.
특이하게도 대금 연주는 일반적으로 대금을 부는 방식과 다르다. 단순히 입으로 불어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 대금 겉 부분을 부드럽게 혹은 날카롭게 긁어대며 소리를 내기도 한다. 북 연주 역시 마찬가지다. 도구로 북을 두드리는 것만이 아닌, 북의 겉면적을 도구로 긁으며 소리를 낸다. ASMR이 연상된다. 주변에는 기계를 통해 나오는 천의 움직임 소리와 다른 여러 소리가 함께 들린다. 악기와 어우러진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소음과 악기의 소리, 그 경계가 명확하다.
경계의 명확함은 언제 넘어서는 것인가. 각각의 악기가 혼재되어 공존하는 소리는 언제쯤 들려오는 것인가. 그 해답은 이 공연의 제목과도 연관이 있다.
제목의 일부인 ‘초임계유체’는 사실 과학용어다. 초임계유체란 물질의 온도와 압력이 임계점을 넘어 액체와 기체를 구분할 수 없는 상태가 된 유체를 일컫는다. 다시 말해, 특정 온도나 압력 조건이 되면 액체와 기체의 경계선이 무너져 혼재하는 상태다.
결국, 이 공연의 최종 목적은 초임계유체처럼 여러 악기의 소리가 임계점을 넘어 어느 순간 섞이며 공존하는 것이다. 실제로 공연의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다양한 소리가 어우러져 각각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절정의 순간이 다가온다. 점점 커지는 소리를 비롯해 다양한 소리가 들리지만 그것이 거슬린다는 느낌보다는 공존하는 느낌이 더 크게 다가온다. 이는 여러 악기와 음향의 소리가 임계점을 넘어 마침내 경계를 허물고 소음보다는 소리의 형태에 다가섰음을 의미한다.
예술이 모호하면서도 아름다움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이유는 하나의 공연 속에서 펼쳐지는 심오한 의미에서 비롯된다. 피아노 건반에 손을 올리지도 않았지만, 그것 역시 예술의 일부분으로 인정하는 것도, 각각의 악기들이 소음으로 들리며 어우러지지 않는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모든 것은 과학의 개념을 이용해 임계점에 도달하기 위한 축적의 시간이었다는 것 모두 그 안에 담긴 속뜻으로 인해 예술의 의미가 확장된다. 알기 전에 의아했던 것들이 안 이후에는 예술의 또 다른 도전으로 자리매김한다.
공연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혹은 공연이 끝난 이후에 남는 여운을 살펴보면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이 있다. 그중 하나는 대금 연주자가 맨발로 연주를 했다는 것이다. 소음이 소리가 되는 임계점을 명확히 보여주고자 공연에 방해가 될만한 소리는 차단하겠다는 연주자의 의지가 엿보인다.
더불어 사람이 하는 음악만이 예술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제 연주자만이 악기를 통해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 기계와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소리와 시각적 효과를 모두 표현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끊임없이 발달하는 세상 속에서 기계와 인간이 함께 결합해 만들어갈 예술의 아름답고도 다양한 모습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