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 글쓰기가 허락되지 않던 시절, 글 쓰는 것을 끊임없이 갈망했던 세 자매가 있다. 브론테 자매는 서로를 의지하고 응원하며 언제나 종이와 펜을 들고 글을 써 내려갔다.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의 공식적 놀이가 있다. 자신들의 글을 평가하는 것인데, 때론 이름 모를 혹평가가 되거나 다정한 평가자가 되어 서로를 간접적으로 다독인다.
공연 <브론테>는 세 자매의 치열했던 글쓰기 과정을 다양한 연출과 함께 선보이는 아름다운 뮤지컬이다. 그중 이 뮤지컬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그림자’를 소재로 한 연출이다. 어느날 도착한 신원 미상의 편지에는 자매의 죽음을 지켜봤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로 인해 혼란스러워하는 샬럿의 외적인 모습과 내적인 혼란을 이빨을 드러내는 개의 그림자로 표현한 것이 참신하게 다가왔다. 또한, 이러한 연출로 세 자매간 갈등이 발생하는 것에 개연성을 부여해주었다.
서로 간의 갈등은 글을 쓰고 싶은 열망, 서로를 응원하는 진심과는 다르게 번진다. 이들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던지며 갈등하고 결국 샬럿은 집을 나가게 된다. 혼자서 집을 나가 글 쓰는 행위를 꾸준히 하며 길을 개척해 간 샬럿은 결국 <제인 에어>로 큰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그녀와 달리 앤과 에밀리는 여러 혹평을 받고 인정받지 못한다. 엎친 데 덮친 격 이들의 건강도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결국 두 자매는 자신의 작품이 받는 사랑을 느끼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다.
이후 전개되는 내용은 집으로 돌아온 샬럿이 과거에 받았던 편지에 대한 정체가 밝혀지는 것이다. 집에 돌아온 그녀에겐 더이상 반겨주고 힘이 되어주는 에밀리와 앤이 없었다. 쓸쓸한 마음을 달래던 샬럿은 이내 그 편지를 쓴 사람이 자신이라는 점을 알아차린다, 이는 과거의 자신을 비난하며 그 내용을 글로 표출하기 급급했던 스스로를 돌아보며 인생의 중요한 사실은 자신을 믿고 전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된다.
공연의 클라이맥스는 세 자매가 함께 나와 늘 하던 대로 다른 누군가가 되어 서로에게 질문하고 그 대답을 주고받는 것이다. 자신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자매들은 더는 타인의 모욕에 휘둘리지 않는다. 글의 비유가 부족하다는 혹평에도 자신감 넘치는 모습,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도 흔들리지 않는 세 자매의 모습은 비록 그 행위가 놀이에 불과할지라도 더없이 따스한 희망과 기쁨을 느끼게 해주었다.
공연 <브론테>는 이번이 처음 선보이는 것이 아니다. 2022년에 시작을 열었으며 올해 재연하며 다시 관객과 만나는 뮤지컬이다. 사실 브론테 자매에 관한 내용은 유명하다. 샬럿 브론테는 <제인 에어>를, 에밀리 브론테는 <폭풍의 언덕>을 집필한 저자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많은 시간이 흘러도 스테디 셀러로 자리매김하며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책이다.
그렇기에 브론테 자매에 관한 내용은 공연뿐만 아니라 책으로도 출판되었다. 이들의 작품 외에 작가의 삶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면 공연을 보기 전에 책을 읽고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두 작품 다 브론테 자매에 관한 내용을 사실적으로 다뤘지만 다루는 방식에는 차이점이 있다. 책은 시대적 배경과 내용 전개 과정에 중점을 두지만, 이 공연의 경우 인물의 내적 심리에 초점을 맞춘다. 책에서 드러난 브론테 자매의 삶은 그들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원고를 퇴짜맞거나 모욕적인 말을 들은 내용을 더 깊이 있게 드러낸다. 그들이 정성 들여 쓴 원고를 보냈음에도 되돌아오는 것은 그저 누군가의 아내가 되는 직분에 충실하라는 차가운 답변이었다. 그로 인해 그들은 여성의 직분에 대해 생각하며 혼란스러워한다. 현실에 맞서고자 샬럿은 유학을 가지만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불안해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하는 도전은 무모함에 불과하다고 논했고 샬럿의 나이는 서른을 향하고 있었다. 가족의 무시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심란함은 그녀가 여성으로서 얼마나 힘들게 글을 써왔는지를 나타낸다.
공연에서는 자매의 내적 심리를 더 또렷하게 드러내며 노래로 표현한다. '영혼들은 방황하지만 그 끝에 천국은 없어서 숨이 막힌다'라는 노래 가사는 그들의 지난한 삶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한다. 글을 쓰는 과정과 그 행위를 하는 자신의 모습은 애정하지만 과정은 순탄하지 않기에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안개처럼 흐린 느낌은, 꿈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과 닮아있기에 공감이 간다. 그러나 이토록 힘든 삶도 결국은 '써 내려가'라는 후렴구의 반복과 함께 꿈을 향한 의지의 확실함으로 귀결된다. 현실을 벗어나려 발버둥 쳤지만 그 발버둥은 오히려 자신의 삶이 존재했던 이유와 연결된다. 글쓰는 과정이 힘든 것과 별개로 글을 쓰는 일을 사랑했고 그것이 결국 삶에 대한 굳건한 의지를 다져냈기 때문이다. 이는 공연의 후반부 샬럿이 했던 말과도 연결된다.
“때론 모질고 슬프기만 한 삶이었지만 우린 우리의 이름으로 내내 치열했고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했어.”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고 했는데 꿈을 닮아가기 위한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그렇기에 ‘브론테 자매는 결국 그들의 꿈을 이루었다.’라는 문장은 그 문장만 두고 보았을 때는 진부해보일 수 있으나 문장 안의 과정을 샅샅이 들여다본다면 이 문장은 더 이상 진부하지 않다. 과정 속에서 해 온 고뇌와 노력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지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매가 힘들어했던 과정을 들여다보면서 글에 대한 그들의 애정을 떠올렸다. 무언가를 이루는 것은 작은 것이라도 쉽지 않지만, 삶을 버티는 것도 의외로 작은 부분이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러 편견과 맞서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견디며 어려운 나날을 보냈지만 결국 그들의 존재 자체를 빛나게 한 것은 글이었다는 점은 공연을 보는 관객을 먹먹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에는 감동적인 마음과 작은 위로를 받았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을 미워하고 다른 이의 삶에 시선을 두기 바빴는데, 그런 삶의 과정도 모두 소중하다는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앞으로를 살아가는 나날에도 세 자매가 이야기한 것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서 존재 자체로 충분했다고 말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싶다. 더불어 지금 이 순간에도 꿈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모두의 삶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