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ift: 묘한 민요
예로부터 민요는 민중이 직접 만들어 부르는 노래로,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었다는 점에서 누구나 따라부를 수 있는 특징을 담고 있었다. 노래 주제는 사랑과 이별, 한과 풍자 등이 고르게 담겨있어 서민의 일상과 감정을 고루 포함할 뿐 아니라 노동요로도 사용되었다.
이렇듯 민중이 쉽게 즐길 수 있고 언제든 부를 수 있는 민요가 요즘에 들어서 거리감이 있는 전통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교과서를 통해 학문으로서 민요를 학습하게 되다 보니 옛날 노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히게 되었고, 자연스레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편견도 생기게 되었다. 여러 서민층이 함께 어울려 흥겹게 부르던 민요는 이제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며 현대인들에겐 학습해야 할 지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The Gift: 묘한 민요”는 이러한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민요를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한국메세나협회와 메트라이프생명 사회공헌재단이 함께하는 “The Gift: 묘한 민요”는 지난 12월 11일 서울 성동구 소월아트홀에서 개최되었으며, 퓨전국악 밴드 ‘차차웅’이 대중들에게 익숙한 민요와 더불어 자신들만의 음악적 색채로 풀어낸 전국 각지의 민요를 선보이며 국악의 새로운 매력을 선사했다.
공연은 무대 위 큰 화면 속 영상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공연을 이끌어나갈 예술가들이 영상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 거창한 목표나 꿈이 아닌 소박한 소재로 노랫말을 이어붙여 가락을 형성한다. 이를테면 소개팅을 망치고 길거리를 거닐며 주저리주저리, 취업 준비에 실패하고 ‘에휴’라는 한숨과 함께 다리를 꼬고 앉아 즉석에서 불러대는 노래 한 소절, 저녁을 무얼 먹을까, 오늘은 눈이 오려나 비가 오려나 흘러가는 투로 말에 가락을 붙인다.
어딘가 씁쓸하고 어느 한켠에 체념과 답답함도 들어있지만, 그럼에도 이들이 계속 삶을 이어나갈 것이라는 확신이 영상 너머로도 다가왔다. 과거에도 백성이 부르는 민요는 기쁠 때보다 슬플 때 더 많이 불렸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리듬과 반복을 통해 실어 나르는 노래였으니. 영상 속 그들의 씁쓸함과 한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기 위해 마음에서 치솟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노래로 승화하며 버텨냈던 노래와도 같다.
일상의 모든 소재도 민요의 한 종류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며 차차웅 밴드는 본격적으로 무대를 시작한다. 민요의 특성과 걸맞게 관객의 참여와 호응을 유도하며 경쾌한 분위기를 이끌어나간다. 예로부터 민요는 함께 부르며 연대의 감정을 느끼게 한 것처럼 손뼉을 치며 장단을 맞추고 익숙한 구절은 따라부르도록 하며 공동체적 특징을 뚜렷이 부각해주었다.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아리랑과 같이 유명한 노래도 있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창작해낸 곡도 존재한다. 그중 인생에서 힘들었던 순간들을 복기하며 그러한 일들이 사소한 기분 좋은 일들로 탈바꿈했을 때의 감정을 노래하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정말 사소한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그 순간을 버텨냈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이럴 때가 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다’와 더불어 ‘우리가 함께 버텨나가고 있다’라는 이어짐의 감각을 선사한다.
공연 중간중간 차차웅 밴드는 자연스레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도 한다. 나이에 관한, 결혼에 대한, 또는 관객과의 대화를 시도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무대를 강조한다. 대중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가기에 그때를 지나온 누군가에게도, 아직 겪지 않은 누군가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이날 공연은 아이부터 청년층,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함께했으며 모두가 한마음으로 공연을 즐겼다. 다양한 연령층의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데 민요의 재해석과 차차웅 밴드의 열정이 관객의 마음을 더욱 뜨겁게 달궈주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는 말이 있다. 역사적 보존가치가 높은 조선왕조실록이 뛰어난 기록의 문화를 바탕으로 중심에 놓인 이들의 삶을 기록해온 것처럼 기록을 통해 역사 속 많은 인물이 기억되고 있다. 반면 민요는 애초에 기록되어 불렸던 노래도 아니고 정식으로 작사 작곡을 하며 불렸던 노래도 아니다. 오히려 중심에서 밀려난 주변층의 삶을 묘사하고 그들의 감정을 살피는 언어다. 화려하기보단 단순하고 현학적이기보다는 반복되는 어구가 많다. 누군가의 삶을 선망하는 데 목적이 있는 건 더더욱 아니다. 삶과 분리되지 않은 일상에서 자연스레 발생하는 것들로 공감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새로운 것들이 넘쳐나고 손 하나만 대도 타인의 일상을 쉽게 알 수 있는 세상이다. 과시는 일상이 되고 타인과의 비교와 여러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잠시 그런 곳에서 벗어나 자신의 감정과 마음 상태를 들여다보자. 예로부터 우리 민중이 굳건히 지켜오며 향유해온 그 노랫말과 정겨운 가락이 아직까지 살아 숨 쉬며 재해석되고 있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