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 연탄
태영이가 6살이 되던 그즈음 연탄장사를 시작했다. 윤기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함께 연탄을 날랐다.
동네 작은 창고를 빌려서 연탄 가게를 열었다. 삼천리 연탄이라고 써진 가게 앞에 커다란 트럭이 연탄을 싣고 오면 윤기와 번갈아 가며 연탄을 받아 내렸다. 얼굴은 물론이고 손톱밑이며 온몸이 연탄재를 뒤집어써도 내 가게를 한다는 뿌듯한 마음이 더 앞섰다.
처음엔 한 손에 두장도 버거웠지만 일이 손에 익고 바빠지자 나중에는 한 손에 네 장의 연탄을 집게로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순자는 먹고 살 생각으로 이를 악물었다.
종일 연탄집게를 꽉 움켜쥐느라 손가락이 굳어 저녁때가 되면 손가락이 펴지질 않았다. 손목이 시큰거리고 어깨가 빠질 것처럼 아팠지만 자식 셋과 딸린 식구들 먹여 살릴 생각에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힘들어도 연탄배달 주문이 들어오면 그것처럼 기분 좋은 게 없었다. 리어카에 가득 실은 연탄은 백여 장 남짓이다. 양손에 여덟 장씩 수십 차례 왕복하며 연탄이 가득했던 리어카를 비워냈다. 하루하루가 고단했지만 정다운 이웃들과 함께 하며 힘듦을 잊으려 애를 썼다.
그러던 중 재개발 붐이 일면서 50평에 대한 대토권이 나왔다. 운이 좋게도 추첨에서 광명 경찰서 사거리에 노른자 땅이 당첨되었다. 순자는 대토권으로 아파트를 한 채 얻어 살고 싶었다. 그동안에 숱하게 겪었던 집 없는 설움도 걷어내고 고생도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집 근처 파이프 공장에 경비로 일하던 김 씨가 경기도 화성에 있는 땅을 사라는 말에 윤기가 그만 홀딱 넘어갔다. 온갖 감언이설에 혹해서 이사를 가자고 고집을 부렸다. 순자는 싫다고 버텼다. 윤기의 고집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기 말을 안 들어준다며 부산으로 도망을 갔다.
일주일 동안 수천 장의 연탄 리어카를 혼자 나르며 순자는 이를 갈았다. 눈물이 쏟아져도 누가 볼까 얼른 소매로 훔쳐내고 주문받은 연탄배달을 나갔다. 리어카 하나 가득 백장씩 하루 천장이 꼬박 넘는 양이었다.
배달 가는 곳도 지하 단칸방이나 오르막이 가팔라서 혼자 하기엔 역부족이었던 곳들 뿐이었다.
어떤 날은 비까지 내려 진흙탕이 된 길에서 리어카 바퀴가 도랑으로 빠져버렸다. 있는 힘껏 용을 써도 무거운 리어카를 여자 혼자 빼내기는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도망간 남편이 원망스럽고 미웠다.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죽을힘을 다해 리어카를 꺼내 배달을 마치고 집에 오는데 저만치 대문 앞에서 윤기가 배시시 웃으며 걸어 들어오는 게 보였다. 남편을 보자 순자는 순간 손에 칼이 있었으면 저 인간 찔러 죽이고 나도 죽었으면 하는 생각이 불쑥 솟구쳤다.
눈이 뒤집혔다. 끌고 오던 빈 리어카를 도랑에 밀어 처박아버리고는 멋쩍게 웃고 있는 남편에게 달려드는데 마침 어린 태영을 봐주러 올라와 있던 막냇동생 순미가 그 앞을 막아선다,
"언니! 뭐더러 왔어! 일하러 가 언능! 언니 가! 그러지 마"
"비켜! 오늘 내가 저 인간 죽여불란다! 비켜!"
"빨리 가서 일이나 해. 일하다가 뭐더러 와?! 언능가! 언니."
하며 대문 앞을 두 팔로 가로막고 섰다.
순자는 치미는 울화를 감당하지 못하고 흙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어어엉... 이년 팔자가 어찌 이리 고단하다냐... 아이고! 서방이라도 똑바로 박혔어야지, 박복하고 원통하다... 아이고오..."
솟구치는 눈물과 악을 쓰며 울기 시작하다가 저만치 떨어져 쭈뼛거리던 윤기를 향해 악다구니를 지른다.
"날 데려다가 이날 이때까지 고생시키고 억척스럽게 살게 했으면! 인간이면 이러지 말아야지! 니 형새끼들 네 부모 네 형제 봉양하며 산 나한테 네가 사람새끼냐?"
연탄재로 시커메진 손바닥으로 땅바닥을 내려치며 한참을 그렇게 통곡했다. 멀찌감치 떨어져 보던 윤기는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언니가 어떤 마음일지 짐작이 간 순미만 가슴이 미어진다. 어릴 때부터 고생만 죽어라 한 울 언니 인생은 어째 날이 가도 해가 가도 나아질 게 없어 보일까 한탄스러웠다.
한참을 우는 언니를 달래 일으키자 순자는 비척비척 일어나 도랑에 빠진 리어카를 꺼냈다. 도랑에 처박히면서 바퀴가 빠졌는지 덜그럭 거린다. 덜컥 내일 배달할 걱정이 태산처럼 밀려들었다. 소매로 대충 얼굴을 문질러 닦고는 인근에 자전거포로 수리를 하러 간다. 걸어가는 순자의 뒤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순미는 언니 속이 문드러져도 진작에 문드러졌을 거라는 것을 보지 않고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