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안에 앉은 윤기는 마음이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동진은 이제 곧 성인이 된다. 몇 번은 유치장에서 꺼내오고 몇 번은 피해자와 합의를 하느라 빚을 져야만 했다. 이번엔 또 무슨 일로 경찰서에 간 걸까 더 이상은 안 되겠구나 무슨 수를 써야 하나 윤기는 쉴 새 없이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아이고오... 윤기야! 왜 이제와? 동진이가! 동진이가 사람을 때렸단다. 이걸 어쩌면 좋으냐? 네가 가서 얼른 좀 데려오너라"
대문 앞에서 서성이며 안절부절못하던 어머니는 윤기 내외를 보자마자 달려들어 매달렸다. 순자에게 닥친 불행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로지 큰 손주 걱정뿐이었다.
"어머니. 왜 나와 계셔요?"
"동진이 좀... 응? 동진이 좀 데려와라. 윤기야"
"아휴... 가보긴 하겠는데요. 전적이 있어서 이번엔 쉽지 않을 거예요"
"안된다, 안돼! 네 형 상기가 얼마나 저승에서 슬퍼하겠니? 꼭 좀 데려와줘? 응?!"
노모는 산 사람보다 죽은 형 걱정이 먼저였는지 윤기를 붙잡고 눈물을 짜내었다.
시흥경찰서를 찾아갔다. 담배연기가 자욱한 그 안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벽면 한쪽에는 수배전단과 범죄자의 몽타주로 가득했다. 웅성거리는 소리와 고함치며 책상을 내리치는 형사의 모습에 윤기와 순자는 움찔거리며 눈치를 보게 되었다. 사무실 구석에 덥수룩한 머리를 하고 덩치가 큰 형사의 앞에 동진은 어깨를 말아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동진아!"
윤기의 부름에 고개를 들던 동진은 저도 차마 면목은 없었던지 이내 다시 얼굴을 숙였다. 언뜻 보니 눈가와 입가가 피멍투성이다.
"안녕하세요. 형사님. 저... 동진이 보호자인 작은 아버지 되는 사람입니다."
"아... 예... 지금 조서 쓰는 중이니까 밖에서 좀 기다리세요."
"예? 아... 예... "
한참을 복도에 나무 의자에 앉은 윤기 내외는 오가는 형사들과 잡범들의 실랑이에 어깨를 움츠린 채 두 발을 모으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저기 최동진 씨 보호자분? 들어오세요."
제복을 입은 여경이 나와 말했다.
"아! 예! 접니다."
윤기는 여경을 따라 들어가 동진의 옆자리에 앉았다. 피곤함에 절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는 형사의 모습을 보고 긴장감에 침을 삼켰다.
"최동진이는 지난주 토요일에 시내 한 술집에서 친구들하고 술을 마시고 나오다가 지나가는 사람과 시비가 붙어 말싸움 끝에 상대방 얼굴을 때려 코를 부러뜨렸습니다. 본인도 혐의 인정했고요. 일단 쌍방폭행이긴 한데 최동진이가 먼저 공격한 거라고 상대방은 폭행으로 고소하겠다고 하는 상황이고요. 조서는 일단 이렇게 마무리 됐으니 알고 계십시오"
윤기의 얼굴이 굳는다. 동진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저... 그... 혹시 합의는... 어떻게... 안될까요?"
"예... 그 일단 상대방이 합의 의사는 있다고 한 상태라 보호자 오길 기다린 겁니다. 피해자 쪽에서 원하는 보상금을 주면 합의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예... 예... 합의해야지요. 그럼요. 아이가 앞날이 창창한데 빨간 줄 긋게 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합의하겠습니다."
동진은 윤기의 말에 죄책감이 들었는지
"작은 아버지 죄...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
윤기는 동진의 말에 대답하지도 돌아보지도 않았다. 피해자가 얼마를 요구할지 모르지만 순자가 여기저기 품팔이 다니며 번 돈과 장모님이 아내를 굶기지 말라며 몰래 쥐어준 돈이 고스란히 합의금으로 날아가게 생겼으니 복장이 터질 만도 했다.
"그래도 쌍방폭행인지라 상대방도 과하게 합의금을 요구하지는 않는걸 다행으로 아십시오!"
형사는 필요한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기가 주물공장에서 쇠질을 하고 받는 월급은 겨우 6만 원 남짓인데 합의금으로 20만 원을 내놓으라니 식구들이 두 달은 넘게 굶게 생겼다. 윤기의 월급도 이미 처가에 오가느라 가불을 여러 차례 한 상태라 여의치 않았다. 며칠 후 합의가 끝날 때까지 유치장 안에 있던 동진은 윤기와 순자가 피해자와 합의를 하고 싹싹 빌며 잘 타이르겠다고 다짐의 다짐을 한 뒤에야 나올 수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다음엔 안 꺼내줄 거다. 그리고 그 양아치들하고 이제 그만 어울려! 알았어?"
"...... 예...."
윤기가 윽박지르자 동진은 마지못해 대답했다. 조카를 못내 흘겨보던 윤기가 서서 담배를 빼어 문다.
옆에 서있던 순자는 얼른 가져온 두부를 동진에게 쥐어주었다. 사실 며칠 동안 발바닥에 땀이 나게 오가며 경찰서와 피해자를 만난 것은 순자였다. 윤기의 주머니 사정이 빤한 걸 아는 순자는 모자란 합의금을 위해 금례가 몰래 쥐어준 가락지를 팔았다. 순자는 속이 끓었다. 엄마 아부지가 고생해서 번 돈이며 쌀이며 시집 식구들 입으로 다 쏟아붓는 것이 못내 아까웠지만 순자는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순자의 어린 동생들 중 하나같아서 그저 이렇게라도 제 부모 대신 부모 노릇이라도 해주면 속 차리고 철이 들려나 했던 것이다. 동진의 누나 은이와 동생 동형이도 그렇게 보듬었다. 어른들이 잘못한 것이지 아이들이 무슨 죄겠는가.
순자는 그렇게 윤기의 군식구들을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