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재민
여름 장맛비로 마을 둑이 무너지자 물난리가 났다. 새벽녘에 쏟아진 비는 불과 서너 시간도 안되어 400mm 가까이 퍼부었다. 천둥번개가 치고 쏟아지는 비는 마당을 삼키고 집안으로 들이쳤다. 서둘러 아이들을 근처의 아파트에 사는 순만의 집으로 보내고 온 순자와 윤기는 집기들이 물살에 동동 떠다니는 것을 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바닥부터 조금씩 차오르던 물은 어느새 장롱을 반 이상 잡아먹었다.
그동안 어떻게 살며 일궈낸 살림들인데 한순간에 모두 쓰레기가 돼버렸다. 하수구 냄새가 진동하는 물속에서 넘어질까 조심조심 몸을 가누며 세간살이를 끄집어내다가 그마저도 물이 더 차오르자 버티지 못하고 나와야 했다. 인근의 수해 대피소인 국민학교로 대피한 윤기내외는 밤을 지새우며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강당 나뭇바닥 위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있었다. 젖은 사람들이 모여있자 습기가 가득해서 보급받은 이불도 깔고 있던 신문지도 금세 눅눅해져 버린다.
순자는 두 다리를 모아 팔로 감싸고 앉아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 자꾸 집이 떠올랐다.
마당 가득 들어차 오른 진흙탕물, 뒤집힌 장독, 문짝이 떨어져 나간 부엌. 그리고 엉망이 된 방안까지...
가족이 흩어졌다. 며칠이나 더 내릴까 앞으로 어떡하지 라는 생각에 마음이 심란해져 있을 그때였다.
박 씨 부인이 남편을 찾아 헤매다 윤기내외를 보더니 덥석 손을 잡고 주저앉아 물었다.
"대훈엄마, 반장님! 우리 경미아빠 못 봤어요? 예?"
"아... 아니... 왜요? 아저씨도 같이 나온 게 아니에요?"
"아까 대피할 때 집 담벼락만 조금 손봐놓고 온다더니 이 시간까지 오질 않아서요. 누가 본 사람 없을까 찾아다니고 있는데.. 이 양반이... 대체 어디 갔을까"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꿇어앉은 무릎을 들썩이며 안절부절 울먹이는 박 씨 부인을 순자가 안으며 말했다.
"괜찮을 거예요. 여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른 곳으로 갔을 수도 있으니까 좀 쉬고 내일 같이 찾아봐요. 아유... 얼굴이 많이 상했네. 경미는? 경미는 어디에 있어요?"
"경미는 언니집에 보냈어요. 온 동네가 물바다니 이 일을 어쩜 좋아! 이놈의 웬수 같은 비 언제까지 내릴라고 이러는 건지 모르겠네!"
경미아버지는 얼마 후 무너진 흙더미 밑에서 발견되었다. 집으로 내려오는 물길을 막아보겠다고 애쓰다가 무너지는 담벼락에 깔린 모양이다. 그 외에도 거동이 어려운 노인이나 엄마를 찾으러 나간 아이도 돌아오지 못했다. 사람들은 삶의 희망보다 절망을 더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며칠 후 물이 빠지자 흙탕물로 가득한 집안을 치우기 시작했다. 앞집 뒷집 할 것 없이 모두 수돗가에 모여 그릇을 씻고 물에 잠겼던 집기들을 씻어내느라 난리통이었다. 언제 비가 왔었냐는 듯이 햇볕이 쨍하게 내리쬐었다. 사람들은 더위도 잊은 채 피해복구에 열을 올렸다.
정부는 비축미에서 쌀을 풀었고 담요와 라면, 통조림 같은 수재민 구호물품을 보내주었다. 서로 하나라도 더 챙기려고 싸우기도 하고 속임수를 써서 한번 더 받아가는 통에 동네 반장을 맡았던 윤기는 여기저기 발 빠르게 다니며 구호품 지급에 정신이 없었다. 순자 역시 셋방살이하는 순이 엄마와 함께 건넛집 할머니 집기까지 대신 씻어주며 하루라도 빨리 이 지옥에서 벗어나려 했다. 인근 부대에서 군인들이 복구지원을 나와 진흙을 퍼내고 망가진 가전들을 끄잡아내었다. 차오른 물에 둥둥 떠다녔던 장판을 건져내고 흙탕물에 젖은 쌀을 헹구어 말리며 모두 한마음으로 다시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물난리가 한번 나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피부병과 설사병이 돌았고 그때마다 보건소나 관공서에서 사람들이 나와 천막을 치고 구제에 나섰다. 사람들은 줄을 지어 연고나 설사약 같은 약품을 지급받았다. 방송에서 연일 보도한 수재현장을 보고 각 지역에서 구호물품과 자원 봉사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수재민 돕기 모금운동도 활발했다.
쉽사리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는 못했지만 보름 넘게 그러고 나니 뜨거운 여름 앞에 바짝 다가서 있었다. 방역을 한다고 소독차가 온 동네 구석구석을 돌면 아이들은 죄다 방역차 뒤를 따라가며 팔과 입을 벌렸다. 까르르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하얀 연기를 내뿜는 시끄러운 방역차 소리를 뚫고 온 동네를 휘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