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시간이 되어도 윤기가 오지 않아 대훈이를 업고 마중을 나가면 저만치서 술에 취해 물구나무를 서서 거꾸로 걸어오고 있다. 맨 정신에도 하기 힘든데 술에 취한 채 거꾸로 걷다니 순자는 기겁하여 소리친다.
"당신 다칠라고 그래? 넘어져어! 그만 일어나! 아유... 참... 일어나라고!"
그만두라고 말려보지만 소용없다 윤기 고집에 말리면 더하니 이내 포기하고 뒤따라 걷는다.
주사가 있어 성질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걸 알기에 순자는 하고 싶은데로 하게 내버려 뒀다. 처음엔 그러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윤기는 술만 먹으면 손찌검도 서슴지 않았다. 눈깔이 아주 다른 사람이 돼버리는 게 너무 무서워서 윤기가 술에 취하면 최대한 피하려고 애를 썼다. 몇 번이나 도망 나갔다가 윤기가 잠에 곯아떨어지면 들어갔더랬다. 살려고 도망 나온 자신이 비참했다. 한 번씩 온 동네를 순자 찾는다고 비틀거리면서 헤집고 다니기도 해서 동네 사람들과 마찰도 잦았다. 술만 깨면 그렇게 사람이 좋을 수가 없으니 다들 순자를 안쓰럽게 여겼지만 그뿐이었다. 모든 걸 감내해야 하는 건 순자였으니 말이다. 이제와 친정으로 돌아갈수도 없고 아이를 두고 도망을 칠수도 없어 독하게 마음을 먹어야 했다.
한 번은 아이들만 두고 계모임을 갔었다. 어디선가 만취해 들어온 윤기가 아이들을 붙들어 앉혀놓고 훈계를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은 두 형제는 겁에 질려 대답도 못한 채 덜덜 떨었다.
윤기는 대답을 못하는 아이들을 허리에 두르고 있던 가죽벨트를 빼서 때렸다.
"아빠, 잘못했어요! 아악! 아빠 안 그럴게요. 아빠..."
"아... 아빠, 살려주세요! 안 그럴게요!"
두 손을 모아 싹싹 비는 아이들을 풀린 동공으로 쳐다보며 윽박지른다. 윤기는 허리띠를 휘두르다 말고 벌게진 눈으로 아이들을 노려보며 혀꼬인 말을 퍼부었다. 그러다 순자가 예쁘다고 시장에서 사다 놓은 어른 손바닥보다 큰 유리 잿떨이가 눈에 들어왔다. 윤기는 별안간 그것을 손으로 집어 들어 아이들 머리를 차례로 내리쳤다.
아이들의 머리에서 피가 솟구쳤다. 막 집에 들어서던 순자는 둘째 명훈의 머리에서 피가 솟구치는 것을 보고 기함했다.
"아악!!! 명훈아!!!"
얼른 바닥에 수건인지 걸레인지 모를 천을 집어 들어 머리를 눌렀다. 수건하나를 금세 적신 피가 콸콸 흐르자 순자는 얼른 수건 두어 개를 더 대어 아이 머리를 꽉 누를 채 안아 올렸다.
"이 미친 인간아! 애들을 죽이려고 작정했어?!"
당황한 윤기에게 일갈하고 서둘러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대훈이는 그나마 빗맞았는지 명훈이보다는 상태가 덜했다. 명훈이는 서른 바늘이 넘게 꿰맸다. 아이는 겁에 질려 크게 울지도 않았다. 집에 돌아오니 남편은 세상모르고 뻗어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순자는 가슴이 철렁했다. 이러다 저 인간이 정말로 아이들을 죽이겠구나 싶었다. 아이들만 두고 외출하지 않기로 다짐하고 그럴 일이 있어도 누군가 한 명은 꼭 보초를 세워두었다. 옆집 김 씨에게도 부탁했고 먼 이종사촌이 같은 동네에 살아 그에게도 아이들을 맡겼다. 몇 년 후 막내딸이 태어난 후에 순자가 집에 없는 날에는 막내가 오빠들 지킴이가 되었다.
윤기는 이상하리만치 막내 태영이는 손을 대지 않았다. 유난히 이뻐했다. 아이 셋이 같이 혼을 내도 허리띠는 태영이 앞의 방바닥만 내려 칠 뿐 딸아이를 스친 적이 없다. 영리한 태영이는 아빠가 자기를 이뻐하는 줄 알았다. 짓궂은 두 아들을 단속하려는 것도 있었지만 술에 취한 날의 한 번씩 심한 매질은 아이들을 쥐구멍에 몰아넣는 것처럼 두렵고 무서운 일이었다.
한 번은 오빠들이 어김없이 맞고 있을 때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태영은 오빠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다가 그냥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엄마의 이종사촌 동생인 종수 삼촌댁으로 달려갔다. 급한 마음에 작은 두 손을 모으고 두 발을 종종거리며 종수의 집 방문 앞에 서서 외쳤다.
"외숙모! 외삼촌! 우리 오빠들 좀.... 아빠 좀 말려주세요!"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드르륵 문을 열어젖힌 종수처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휴... 지겨워! 또야? 진짜 너네 아빠는 왜 그런다니? 정말 못살겠다"
먹던 밥상에서 밥그릇을 들고 일어서며 정말 해도 너무한다며 종수에게 쏘아붙인다.
"당신이 가요! 난 몰라!"
한숨을 내쉰 종수는 슬리퍼를 직직 끌며 태영의 손을 잡고 윤기의 집으로 향했다.
윤기의 주사는 한 번씩 순자와 아이들을, 그리고 주변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큼 심할 때가 있었다. 윤기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술은 한참 후 제 몸이 완전히 망가지고 나서야 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