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그녀, 이나래》 1화 – 김치와 압력밥솥

김치가 터지기 전에, 내 마음이 먼저 터질 뻔했다.

by 파랑몽상
<홋카이도 치토세 공항에 도착한 나래>

1999년 4월 6일.

나래는 대한항공 비행기에 몸을 싣고
김포공항에서 홋카이도 치토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창밖으로 펼쳐진 일본 홋카이도의 풍경은
그녀의 키보다 높게 쌓인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차가운 공기의 결은 코끝을 스치며,
두근거리는 심장마저 얼려버릴 듯 날카로웠다.

거대한 이민 가방을 끌고 가는 나래의 손은
이미 땀으로 축축히 젖어 있었다.
하지만 더 무겁게 그녀를 짓누르던 건
기대와 불안이 엇갈리는 복잡한 마음이었다.

보안 검색대를 앞에 두고
나래의 머릿속을 지배한 단 하나의 생각.


‘김치가 터지면 안 돼. 제발…’

엄마가 정성껏 싸준 배추김치, 총각김치, 파김치.

그 냄새가 공항 전체에 퍼지기라도 한다면…
상상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다.

눈에 띄게 큰 가방,
작은 키에 비해 유난히 왜소해 보이는 자신,
홀로 이국 땅에서
나래는 그저 조용히 숨고 싶었다.

‘장사꾼처럼 보이는 건 아니겠지…?’


검정 패딩에 몸을 파묻은 그녀는
얇은 검은색 메리제인 구두로
홋카이도의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그 순간,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그녀를 불러세웠다.

“かばんの中には何が入っていますか?”
(가방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나래는 얼어붙은 채, 간신히 입을 열었다.

“はい…?”
“服と本と…生活用品…キムチです。”


외워 온 문장을 뱉어내듯,
긴장으로 떨리는 목소리였다.

“パスポートを見せてください.”
“拓殖短期大学に留学していらっしゃったんですね。”


보안 요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가방을 훑더니,
조금 후 묻는다.

“あそこにある鍋のように見えるものは何ですか?”
(저기 냄비처럼 보이는 건 뭔가요?)


순간, 나래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압력밥솥… 그게 일본어로 뭐였지?’


입에서 나오는 건
제대로 된 단어가 아니었다.

“고항… 지지지지지… (밥… 지지지지지지…)”


얼어붙은 공기 속,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그제야 보안 요원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北海道へようこそ。楽しい留学生活を送ってください.”
(홋카이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행복한 유학생활 되세요.)


“아리가토 고자이마스.”

간신히 미소 지은 나래는
드디어 검색대를 통과해
공항 문을 나섰다.

그 순간,
눈앞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힌 팻말이 보였다.

“이나래 씨, 홋카이도 타쿠쇼쿠 단기 대학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두 명의 일본 남성이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그제야 나래는 실감했다.

22살, 대학을 자퇴하고
모든 것을 걸고 온 홋카이도에서의 첫날.
그 첫 페이지가 지금, 시작되고 있었다.


� 다음 화 예고

그날 밤,
공항을 나선 나래는 드디어
일본어만 들리는 세상에 발을 내딛는다.
그리고 후카가와에 도착해,
본격적인 대학 생활의 시작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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