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밤, 조용히 울게 해 준 그
"이렇게 아팠으면 나한테 바로 전화를 했어야지!"
힘겹게 문을 열자마자 소에다의 잔소리가 쏟아졌다. 나래는 다리에 힘이 빠져 서 있을 수도 없었다.
그런 나래의 상태를 눈치챈 소에다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홋카이도의 5월, 그리고 예측하지 못한 추위
나래가 홋카이도 후카가와시에 온 지도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학교 생활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가고 있었고, 수업도 이제는 대충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구석에 몰리게 되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나래는 요즘 몸소 체감하고 있다
처음 홋카이도에 와서 코미디 프로그램을 볼 때는 들리지 않는 말이 많아 재미가 없었는데, 어느새 말을 알아듣고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다
수업시간에도 이케다 군에게 물어보는 한자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어렵고 지겨웠던 수업이 어느새 나래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유기농업이나 화훼를 배우는 것은 특히나 나래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되었다.
학교에 익숙해지고 일본어에도 적응해서일까, 아니면 긴장감이 풀려서일까?
나래는 덜컥, 몸살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낮의 따뜻한 햇살을 믿고 옷을 얇게 입은 것이 문제였다. 건강 하나에는 자신이 있는 그녀였는데,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의 감기는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중앙 병원에서 한국어 교실이 있는 날이다.
이번이 두 번째 시간이어서 어떻게 해서든지 수업에는 가려고 했지만, 열이 펄펄 끓는다는 걸 체온을 재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아무리 몸을 이불로 꽁꽁 싸매도 추위는 가시지 않았다. 이가 덜덜 떨릴 정도였다.
"저 이나래입니다. 너무나 죄송한데요... 오늘 한국어 교실을 못할 것 같아서 전화를 드렸어요."
"어디 몸이 좋지 않으세요? 목소리가 안 좋은데요?"
총무과의 기무라 씨는 나래의 목소리만으로도 감기임을 눈치챘다.
"제가 심한 몸살감기에 걸린 것 같은데, 춥고 몸에 힘이 없어서 도저히 걸을 수도 없어요."
간단히 상황을 설명하고 전화를 끊자마자, 참아오던 감정이 울컥 쏟아졌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타지에서 아프면 고생이라더니, 한국에 가고 싶고 엄마도 보고 싶었다. 병원이 바로 옆이니 가볼까도 생각했지만 가는 길에 쓰러질 것 같아서 포기하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초인종이 울린 것 같았지만, 그것이 꿈에서 들린 소리인지 현실에서 들린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나래! 나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에다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것 같았다.
나래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하이!" 하고 대답하며 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 앞에는 소에다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 서 있었다.
"나래... 이렇게 아팠으면 나에게 전화하지 그랬어. 전화하기 그랬으면 문자로라도...!"
나래는 대답할 힘도 없었다. 그저 눈물만 조용히 흘러내렸다.
나래의 눈물에 소에다는 깜짝 놀랐다.
휘청 거리는 나래를 소에다는 부드럽게 부축했고, 그녀를 다시 침대에 눕혔다..
소에다 선생님은 방 안으로 들어와 조심스럽게 준비해 온 것들을 꺼냈다. 링거를 창문에 대충 걸어 놓고 알코올 솜을 꺼내 나래의 팔을 소독했다.
"가만히 있어. 이거 맞으면 좀 나아질 거야."
날카로운 바늘이 나래의 팔에 꽂히고, 차가운 약이 몸속으로 서서히 퍼졌다. 소에다 선생님은 나래의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
"이런... 이런... 아이쿠야! 이런 몸으로 어떻게 지금까지 참은 거야?"
나래는 수액이 들어오는 그 차가운 감각을 따라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떠보니 벌써 저녁 8시였다. 소에다는 아직도 나래 옆에 있었다.
"조금 어떤 것 같아? 열은 내렸는데, 그래도 아직 좋지는 않지?"
나래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소에다를 바라보면 울 것 같아서 그저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내가 약도 지어 왔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쉬어. 하얀 쌀죽도 가져왔으니까 이거 먹고 바로 약 먹자."
"선생님... 저 이제 진짜 괜찮아진 것 같아요. 이렇게 신세를 져서 죄송합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알아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래의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 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소에다는 이렇게 말하는 나래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나도 죽 같이 먹으려고 많이 싸 왔는데? 같이 먹자. 괜찮지?"
하면서 자연스럽게 부엌으로 가서 보온통에 담아 온 흰 죽을 그릇에 옮겨왔다.
"역시 링거 맞으니까 금방 회복되지? 이제부터 아프면 나한테 바로 연락하기다! 응? "
소에다와 눈이 마주치자, 나래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눈만 깜빡이면 커다란 눈물 방울이 주르륵 떨어질 기세였다.
"엄마가 보고 싶어요. 이렇게 아프니깐 엄마밖에 보고 싶은 사람이 없어요."
죽을 먹다 말고 나래는 어린아이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당황한 소에다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나래의 어깨에 조심스럽게 팔을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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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 예고
학교 생활에 익숙해진 나래는 같은 반 남자들과도 스스럼없게 지내게 되고, 어느 날 같은 반 남자아이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게 되는데...
남자아이는 나래에게 **"ずっと気になったから電話してみたよ"**라고 말하는데...
나래의 홋카이도 유학 생활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요?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이 소설은 제 유학 생활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입니다. 물론 대부분이 픽션이지만, 소에다 쇼이치라는 인물은 정말 존재했던 의사 선생님이셨어요.
제가 묘사한 그대로 키 185cm에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완벽한 훈남이셨죠. 그리고 저와... 섬싱이라고 할 만한 특별한 인연도 있었답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며 이 소설을 쓰는 것이 저에게는 또 다른 기쁨입니다. 여러분도 제 이야기를 읽으시면서 가슴 한편에 몽글몽글한 사랑 하나씩 떠올리셨으면 좋겠어요.
따뜻한 응원과 사랑, 언제나 감사합니다.
-파랑몽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