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이 쓰인다는 말
따뜻한 진심과 다정한 오해
창밖으로 홋카이도 후카가와의 5월 바람이 유리창을 스쳐 지나간다.
아직도 곳곳에 하얀 눈이 남아 있는, 봄이 늦게 찾아오는 이곳의 풍경이 창밖에 펼쳐져 있었다.
나래는 아직도 소에다가 가져다준 흰 죽의 따뜻함이 입안에 남아 있는 듯했다.
'왜 선생님은 나에게 그렇게 친절하실까? 내가 유학 온 학생이라서 불쌍하신가?'
소에다는 나래의 열이 완전히 떨어진 걸 확인한 후, 말없이 조용히 돌아갔다.
저녁 11시를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그때 선생님의 뒷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던 건 열 때문에 헛것을 본 걸까?
몸은 한결 가벼워졌지만 감기의 여운이 남아 여전히 피곤했다. 약 기운 때문인지 잠은 계속해서 물밀듯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만은 따뜻했다.
"내일은 학교에 갈 수 있어서 다행이네."
나래는 이불속으로 몸을 묻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나래는 대학교에서 선물 받은 오디오 플레이어에 SPEED의 CD를 넣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White Love'의 익숙한 멜로디가 방 안 가득 퍼졌다. 나래는 흥얼거리면서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때 핸드폰 액정이 반짝였다.
"누구지? 선생님이 걱정돼서 전화하셨나?"
나래는 기대를 하면서 핸드폰 액정을 바라보았다.
같은 반 남학생, 마사였다. 마사는 턱수염을 멋있게 기르고, 스타일리시한 옷을 입는 아이였다. 나래보다 3살이나 어렸고 처음 나래가 학교에 적응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래의 옆에서 이것저것 많은 것을 알려준 좋은 동생이었다. 나래는 반가운 마음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요~ 마사! 이 시간에 웬일이야? 나 걱정돼서 전화한 거야?"
"아, 나래? 미안, 늦은 시간에. 괜찮아?"
마사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심스러웠다.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감기 기운이 남아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뭐… 감기 정도야 거뜬하지. 그런데 왜 전화했어?"
"ずっと気になったから電話してみたよ."
마사의 일본어가 평소보다 진지하게 들렸다. 뭔가 마음에 담아둔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아~ 気になった… 마사! 그거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모르겠어. 잠깐, 사전 좀 볼게."
"아냐, 아냐.. 그냥 끊고 나서 찾아봐. 나래 짱 목소리 들으니까 건강해진 것 같아 다행이야."
마사의 다정한 말투에 나래는 다시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다른 때와는 확연히 다른 말투가 신경이 쓰였다.
"마사~ 이 누나 하루 못 보니까 속상했어? 내일은 꼭 가야겠네~ 고마워!"
"다행이다. 그래도 무리하지 말고,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줘."
전화를 끊고 나서 마음이 묘하게 무거워졌다. 마사의 목소리에서 평소와 다른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이다. 나래는 일본어 사전을 뒤적였다.
[気になる: 신경이 쓰이다, 마음에 걸리다]
'아, 내가 학교에 안 나와서 신경이 쓰였다는 뜻이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왜인지 마사의 표현이 단순히 '신경 쓰인다'는 의미 이상으로 느껴졌다. 혹시 마사가 나에게...? 그럴 리가... 아니겠지? 우리는 그냥 좋은 친구 사이니까 그럴 일 없을 거야.
'그래도 마사, 이 누나를 신경 써주다니 기특하구먼~'
창밖으로 홋카이도의 5월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맑고 깨끗한 별들이었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어김없이 봄기운은 들어 있었다. 그리고 봄바람 속에 설렘도 같이 들어 있었다.
나래는 창가에 가만히 서서 자신을 걱정하며 안절부절못했던 소에다의 모습을 떠올리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다음 날 아침, 후카가와의 5월 아침 공기는 여전히 쌀쌀했지만 햇살만은 눈부시게 아름답게 쏟아지고 있었다. 아직 남아있는 잔설이 여기는 아직은 겨울이야!~~ 하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봄은 봄인 것이다.
나래는 두꺼운 카디건을 입고 베란다로 나갔다. 공기가 차갑고 맑았다. 그때 기숙사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이~ 나래~"
마사였다. 그의 뺨이 아침 공기에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마사?! 무슨 일이야? 혹시 이 누님을 친히 모시러 온 거야?"
나래는 마사를 보면서 힘껏 손을 흔들면서 미소를 지었다. 순간, 어젯밤 전화 통화가 떠올랐다.
'신경이 쓰여서 전화했다고 하더니...... 수업 시작하기 전부터 나를 데리러 올 줄이야....'
나래는 옷깃을 여미면서 마사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감기 기운이 아직도 있잖아. 찬바람 맞으면 안 되니까 오늘은 내 차 타고 가자."
"19살짜리가 차라니~ 어이구 알았어. 금방 나갈게."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제법 두툼한 패딩을 입으니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사,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10분도 안 되는 거 알지? 굳이 뭐 하러 왔어?"
마사는 차 문을 열어주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도 좋잖아? 나 같은 사람이 있어서."
"ㅎㅎ 그렇기는 하지. 나 완전 행운아 같은데?"
마사는 말을 이어나가려다가 주춤거렸다. 나래는 마사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농담으로 넘어가려 했다.
그때 저 멀리서 소에다가 출근하는 모습이 보였다. 소에다는 여전히 단정한 모습이었고, 손에는 보온통이 들려 있었다.
"얼른 가자, 지각하겠다."
안전벨트를 매며 말했다. 마사의 자동차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그 순간 소에다 선생님과 눈이 잠시 마주쳤다. 선생님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아주 잠시였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래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멀어져 가는 소에다를 바라보았다.
'선생님께 인사라도 할걸... 괜히 눈길을 피했네.... 아이고... 나도 참 바보 같지...?'
후카가와의 5월 풍경이 창밖으로 스쳐 지나갔다. 아직 녹지 않고 남아있는 하얀 잔설과 조금씩 돋아나는 새싹들이 묘한 대조를 이루며 이곳만의 독특한 계절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래에게는 단지 귀여운 동생 같은 마사.
하지만 어느 날, 마사의 진심이 그녀를 향해 고백되어 버린다.
뜻밖의 고백 앞에서 나래의 마음은...?
안녕하세요, 파랑몽상입니다.
오늘 이야기에 새롭게 등장한 마사라는 친구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사실 지금은 그의 성이 잘 기억나지 않아요. 일본에서는 대부분 성으로 부르는 게 일반적이지만, 유학생이었던 저는 나보다 어린 친구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이름을 불렀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더 따뜻한 거리감이었는지도 몰라요.
마사는 글 속 묘사 그대로, 참 다정하고 따뜻한 아이였습니다.
낯선 땅, 낯선 언어로 힘겨웠던 저에게 마사는 스스럼없이 다가와 주었어요. 그 시절의 저에게는 정말 소중한 존재였죠.
지금도 문득 생각나요.
기타를 들고 제 방에 들어와 조용히 손가락을 움직이던 모습.
그리고 조용히, 부드럽게 흥얼거리던 그의 노래까지도요.
그때의 기억들이 이렇게 글이 되어 여러분께 전해지는 게 참 신기해요.
다음 화도 기대해 주세요. �
#홋카이도 그녀 이나래 #일본유학 #청춘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