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그녀 이나래 10화-어색한 고백

마사는 고백했지만, 나래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by 파랑몽상
<잔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나래와 마사>

"마사!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나래의 목소리가 떨렸다. 단호함을 가장했지만,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두근거렸다.

"너는 그냥 내가 한국 사람이라서 호기심이 생긴 거야!"

말하는 순간, 나래는 자신도 모르게 마사의 진지한 눈빛을 피하고 있었다.


홋카이도에 온 지 벌써 3개월. 6월이 되면서 이곳에도 온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논밭에는 모내기가 한창이고, 집집마다 감자와 양파, 토마토를 심느라 바쁘다. 새싹이 돋고, 냇물은 경쾌하게 흐른다.

멀리 보이는 다이세츠산은 여전히 눈으로 덮여 있지만, 들판에는 노란 들꽃이 가득 피었다. 햇살이 따스하게 잔디를 비추고, 불어오는 바람이 마치 이곳이 천국인 양 나래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자연이 이토록 아름답다고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다.


"나래는 내가 진심이 아닌 것 같아?"

마사가 잔디 위에 앉은 채로 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언제나처럼 따뜻했고, 목소리에는 익숙한 다정함이 묻어 있었다.

"마사야... 넌 이제 겨우 열아홉 살이잖아."

나래는 일부러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누나는 아직 남자를 사귀어본 적이 없어서. 네가 대체 어떤 부분에서 나에게 꽂혀서 사귀고 싶다고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어."

"나래도 겨우 스물둘이면서?"

마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나이 차이가 뭐가 중요해? 그리고 나래는 정말로 자신의 매력을 모르는구나. 이게 바로 나래의 매력이야. 솔직하고,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사람. 나래 옆에 있으면 그냥... 기분이 좋거든."

한국에서도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고백을, 일본에 온 지 3개월 만에 받다니.

그래서 나래는 마사가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피식 웃었다. 마사의 당돌함이 미웠지만,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했다.


마사는 그렇게 무심한 듯 다정했다. 강의실에서 지나가다 무심하게 나래의 책상 위에 따뜻한 캔커피를 놓아주고 갔다. 혼자 걸어가는 나래를 보면 차를 멈추고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나는 너를 동생으로 생각해. 귀엽고 다정한 동생."

"그럼 지금부터 동생이 아닌 남자로 보면 되지."

마사가 나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순간 나래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의 고백이 싫지는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지금까지 마사를 한 번도 ‘남자’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일까, 그의 고백이 선뜻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내가 지금 설레는 게... 마사 때문일까, 아니면 이 순간의 분위기 때문일까?'

나래는 장난스럽게 마사의 손을 꼭 잡았다.

"누나 손도 이렇게 덥석 잡고.... 누나 마음이 설레는데? 마사... 그런데 난 아직 일본어 공부도 해야 하고 학업에도 남들보다 10배는 더 집중해야 해. 유학생활도 겨우 적응하고 있다고. 그리고 가장 큰 문제가 뭔지 알아? 한국에서 가져온 생활비가 거의 다 떨어져서 아르바이트도 구해야 한다고. 나는 연애할 시간이 없어..."

"그래서 내가 곁에서 도와주고 싶어. 나래가 힘들 때마다 내가 힘이 되고 싶어."

마사의 말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나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대학교 건물 뒤에 있는 이 작은 언덕은 누군가가 초록융단을 깔아 놓은 것처럼 푸른 잔디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푸릇푸릇한 잔디가 바람에 맞춰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이 순간, 이 바람, 이 풍경이... 나래의 마음을 흔들었다.

"마사! 진정해. 네가 지금 봄바람이 불어서 마음이 뒤숭숭한 거야. 우리는 그냥 지금처럼만 지내자. 난 지금도 너무나 만족스러워. 마사! 정신 차려! 나야 나!!! 이나래!!!!"

마사는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이내 환하게 웃었다.

"알았어. 오늘은 여기까지... 내가 너무 밀어붙여도 안 되는 거지? 하지만 나래의 마음이 바뀔 때까지 기다릴게."

멀리서 수업 종소리가 울렸다.

나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마사는 여전히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 순간, 시원한 바람이 둘 사이로 불어왔다. 나래의 원피스가 바람에 날리고 마사의 은은한 시트러스 향이 코끝을 스쳤다.

나래가 일어서자 마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래.... 나 정말 잘할 거야. 그러니까 나를 남자로 생각해 줘."

마사는 나래의 팔을 잡고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나래의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이 조금씩 자리 잡고 있었다. 나래는 어제저녁 정성을 다해 간호를 해준 소에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나래의 핸드폰이 울렸다.

'나래 몸은 좀 어때? 감기는 괜찮아? 아침은 먹고 학교에 갔어? 약은 먹었어?' 소에다의 문자였다.

문자를 보는 순간, 나래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마사의 화려한 고백보다 이 단순한 안부 인사가 왜 이렇게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걸까?

"누군데 그렇게 웃으면서 문자를 보는 거야?"

마사의 목소리에 질투가 스며있었다. 나래 옆에 바짝 붙으면서 핸드폰 화면을 훔쳐보려 했다.

"마사! 사생활 침해야."

나래가 핸드폰을 가슴팍에 숨기며 웃었다. 마사의 질투 어린 표정이 오히려 귀여웠다.

'저는 많이 괜찮아졌어요, 어제는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이번 주 수요일 한국어 교실에서 만나요.'

나래는 소에다에게 답장을 보내며 생각했다. 수요일이 기다려진다.

마사와 함께 있을 때의 설렘과는 다른, 조용하고 깊은 기대감이었다.

"강의실로 들어갈까?"

하늘에 구름이 하나도 없이 푸르름만 끝없이 펼쳐져 있다.
나래는 한껏 기지개를 켜고 마사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강의실로 향했다.


다음 화: 본격적인 홋카이도 유학 생활이 시작되면서 나래는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 학교 교무과에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두 개의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게 되는데...


�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파랑몽상입니다.

최근에 목 디스크가 도졌습니다.
자판을 칠 때마다 어깨와 팔에 찌릿찌릿한 통증이 몰려오더라고요.

월·수·금 연재를 꼭 지켜보자고 다짐했는데, 통증으로 인해
생각처럼 쉽지는 않네요.

그래도 이렇게 조금씩 쓰다 보면
언젠가는 더 나아지겠지 싶어, 오늘도 용기 내어 몇 자 적어봅니다.

파랑몽상의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시간이 제 글에 머물러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참 따뜻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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