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고 싶은 사람

홋카이도 그녀, 이나래-66화

by 파랑몽상

그녀를 지키고 싶은 순간, 그는 조용히 싸움을 결심한다.


한자를 쓰는 밤

나래는 한자를 쓰고 있었다.

작물배합개론 교재에 빼곡히 적힌 한자를, 노트에 옮겨 적으며 소리 내어 읽고 있었다.

소에다는 식탁 건너편에 앉아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집중할 때마다 미간을 찌푸리는 표정. 어려운 단어를 만나면 입술을 삐죽 내미는 습관.

눈을 감고 외우고, 다시 눈을 뜨고 확인하는 손끝.

사랑스러웠다.


받지 않은 전화

그는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가, 탁자 위에 놓인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부재중 전화 다섯 통. 모두 어머니였다.

화면을 내려다보는 동안, 나래가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 전화 안 받으세요?"

"괜찮아."

소에다는 핸드폰을 뒤집어 놓았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 쇼이치, 언제 도쿄로 돌아올 거니?'

몇 년 만에 찾은 평온이었다.

이 작은 도시에서, 눈앞에 앉아 한자를 외우는 여자와 보내는 저녁.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지켜내지 못했던 기억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부모님이 나래를 알게 되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질 거라는 걸.

어디 출신이니? 어떤 집안이니? 그 아이 부모는 뭐 하시니?

질문들이 쏟아질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안 돼.

그 아이는 안 돼.

예전에도 그랬다.

간호사라는 이유만으로, 사랑했던 여자를 지켜내지 못했다. 아이까지도.

소에다는 그때의 무력함을 기억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힘이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그 절망을.

그래서 이곳으로 왔다. 홋카이도 후카가와. 부모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후카가와 중앙병원 원장이 아버지의 지인이라는 걸 알았을 때, 그는 깨달았다.

부모의 손길은 생각보다 길고 끈질기다는 걸.

혹시 이미 알고 있는 건 아닐까?

나래와의 관계를.

"선생님."

나래의 목소리에 소에다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등받이에 기대앉아 그를 보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집중 안 하시고."

"아무것도 아니야."

"거짓말. 아까부터 계속 다른 생각하고 계셨잖아요."

나래가 일어나 소에다의 뒤로 돌아왔다. 그리고 조용히 그를 안았다.

포근한 온기가 등에 닿았다.

"커피 줄까?"

소에다가 물었다.

"아니요."

"졸리지 않아?"

"괜찮아요."

"공부는 끝났어?"

"아직이요. 아직 멀었어요"

"자야 하는 거 아냐?"

나래가 웃었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걱정 있으세요?"


물거품처럼

소에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나래의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에 갖다 댔다.

"행복해."

"갑자기요?"

"나래와 이렇게 같이 있으니까."

소에다는 나래를 품 안으로 당겼다.

이 사랑이 물거품처럼 사라질까. 갑자기 나래가 한국으로 돌아가 버릴까.

자신이 지키지 못해 결국 그녀가 떠나버리면 어떻게 하지?

품 안에서 숨 쉬는 그녀의 체온을, 심장 소리를, 확인하듯 더 꼭 안았다.

"선생님, 숨 막혀요."

나래가 웃으며 말했다.

“한 시간만 더 공부하고 갈게요.”

나래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선생님 집에서 자고 가는 건… 다음에요. 병원 사람들 눈도 있고요,

괜히 말 나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마음이 불편해질 것 같아요.”

나래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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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소에다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소에다에게 늘 진심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따뜻하고 명랑하며 유쾌했고,
그러면서도 먼저 살필 줄 아는 배려가 있었다.

일본 여자들과는 달리
주저하지 않고, 적극적이며, 당당했다.

그런 그녀와 함께라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소에다는 처음으로 했다.

부모님의 반대에 맞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번에는, 이 사랑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작가의 말

아버지가 많이 아프시다.

올해 여든넷 인 아버지는
11월 말부터 환시와 환청 증상을 보이시더니,
결국 염증 수치가 너무 높아 병원에 입원하게 되셨다.

우리는 다섯 남매다.
서울, 용인, 분당, 평촌, 그리고 영국.
각자 다른 곳에 살고 있어
전주에 계신 아버지의 병문안을 가는 일은
자연스럽게 주말에만 가능하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노환으로, 큰 고통 없이
삶의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결국 병들어 병원에 누워
팔에 링거를 꽂은 채
목숨을 연명하며 살아가는 시간이
인생의 마지막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나는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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