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 귀천은 없어요.”
우리는 이 말을 자연스럽게 한다.
교과서처럼, 상식처럼, 당연한 문장처럼.
학교에서, 신문에서, 면접장에서...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어떤 직업을 말할 때는 어깨가 펴지고,
어떤 직업을 말할 때는 괜히 설명이 길어진다.
“지금은 이 일 하고 있고요.”
“원래 하던 건 아니고요.”
그 순간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하면서,
마음속에서는 이미 선을 긋고 있다는 걸.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
다만, 그 귀천을 정하는 사람은 타인이 아니라 본인이다.
누군가는 사회가 직업의 귀천을 만든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금 더 솔직한 내 생각은
그 사회가 정하기 전에 내 안에서 먼저 '판단'한다.
같은 직업이라도
누군가는 당당하게 말하고,
누군가는 숨기듯 말한다.
직업의 귀함은
타인의 평가보다
내가 그 일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서 시작된다.
내가 스스로 낮춰 부르는 순간,
그 직업은 정말로 나를 낮춘다.
누군가는 말한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에요.”
누군가는 말한다.
“지금의 나를 키우는 과정이에요.”
같은 직업, 같은 환경인데
완전히 다른 언어를 쓴다.
차이는 직업이 아니다.
태도다.
내가 이 일을 통해
무엇을 얻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믿느냐의 차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게 됐다.
직업에는 귀천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직무에는 귀천이 없다.
아니, 없어야 한다.
내가 옳다고 믿고 선택한 직업이라면,
그 안에서 주어지는 일의 크기나 모양을
굳이 나눌 필요가 있을까.
큰 프로젝트든,
사소해 보이는 정리 작업이든,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역할이
지금의 나에게 주어졌다면,
그 자체로 의미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8년 간 하면서 느낀다.
성장은 늘 조용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아무도 박수 치지 않는 일,
성과로 바로 연결되지 않는 일,
괜히 귀찮고 번거로운 일들.
그런 직무를 대하는 태도가
결국 나의 기준이 된다.
그 일을 어떻게 고민하고 해결했는지가
나중에 나를 설명해준다.
그리고 누군가 이런 나를
조용히 평가하고 있더라.
직업에는 분명 귀천이 있다.
그건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직업 안에서
직무까지 귀천을 나누기 시작하는 순간,
성장은 멈춘다.
내가 옳다고 믿고 선택한 길이라면,
그 안에서 만나는 일들을
가리지 말고 해내는 태도.
그 태도가 쌓여
결국 내 직업을 귀하게 만든다고,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