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공고에는 안 나오는 AC의 일상은?
액셀러레이터 채용 공고를 보면 항상 비슷한 말이 반복된다.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관심과 이해”
“열정적인 태도와 커뮤니케이션 능력”
“투자 및 보육 프로그램 운영 경험 우대”
솔직히 말하면,
이 문장들만 보면 AC라는 직업이 꽤 멋있어 보인다.
스타트업과 일하고, 투자도 보고, 미래 산업을 가까이서 만나는 직업.
나도 그래서 이 길로 들어왔다.
근데 막상 현장에서 1년을 보내고 나니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액셀러레이터가 진짜 하는 일은
채용공고에 거의 안 써 있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AC는 하루에 뭐해요?"
"스타트업이랑 미팅만 계속 하나요?”
내 대답은 항상 이렇다.
“그게 전체 일의 20% 정도예요.”
나머지 80%는 채용공고에는 잘 나오지 않는 일들이다.
공공기관 담당자 전화 대응
정산 서류 확인
사업계획서 수정 요청 대응
보고서 문장 다듬기
일정표 엑셀 수십 번 수정
멘토 섭외, 취소, 재섭외
IR 데모데이 동선 체크
팀별 진척도 관리
예상 못 한 사고 수습
그리고 그 사이에
스타트업 상담과 투자 검토가 끼어든다.
이게 현실이다.
화려한 ‘투자’는
사실 업무 전체에서 보면
아주 작은 일부다.
많은 주니어 지원자들이
면접에서 이런 말을 한다.
“스타트업이 너무 좋아서 지원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말이 나쁘진 않은데
조금 걱정된다.
왜냐하면
스타트업을 좋아하는 것과
액셀러레이터 일을 잘하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다.
신입 주니어 AC에게
진짜 필요한 건
애정보다는 지속력에 가깝다.
AC는 한 가지만 붙잡고 일할 수 없다.
동시에 5개 프로젝트가 돌아가고,
그 안에서 적게는 10개, 많게는 50개 스타트업을 관리해야 한다.
A팀은 멘토링 불참
B팀은 일정 변경 요청
공공기관은 보고서 수정 요구
내부 팀은 성과 데이터 요청
이걸 동시에 처리하는 직업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머리가 좋은 게 아니라
정리가 되는 사람인가다.
주니어 AC 시절에 가장 먼저 깨달은 건,
이 직업은 말을 잘하는 것보다
기록을 잘하는 사람이 버틴다는 거다.
면담 기록
기업 진척도
요구사항 정리
기관 요청사항 누적
이슈 로그 관리
이 모든 게 쌓여야
사업이 굴러간다.
기록이 없으면
AC는 그냥 사람 좋은 매니저일 뿐이다.
이건 채용공고에 절대 안 써 있는 항목이다.
AC는 늘 중간에 끼는 역할이다.
공공기관의 요구를 스타트업에 전달하고
스타트업의 불만을 다시 기관에 설명하고
내부 팀랑 대표 사이에서 균형 잡고
때론 투자자와 창업자 사이도 조율한다
이 과정에서
정말 다양한 감정이 쏟아진다.
기대, 실망, 분노, 좌절, 질투, 비교…
그걸 다 받아내면서
자기 감정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건 진짜 ‘역량’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이 직업에 들어오기 전에는
다르게 상상했다.
미래를 바꾸는 혁신 기업들과 일할 줄 알았고
멋진 투자 의사결정을 자주 할 줄 알았고
사람들에게 “AC야”라고 말하면 다 알아줄 줄 알았다.
근데 현실은 이렇다.
투자보다 공공기관 메일을 더 많이 본다
미팅보다 보고서를 더 많이 쓴다
AC라고 말하면 “그게 뭐예요?”를 더 많이 듣는다
처음엔 이 괴리감이 좀 컸다.
“내가 생각한 액셀러레이터가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이제는 그 괴리감이
오히려 이 직업의 본질이라는 걸 안다.
액셀러레이터는
화려한 직업이 아니라
현장에서 구조를 만드는 직업이다.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게 흐름을 만들고,
환경을 설계하고,
관계의 접점을 세심하게 관리하는 일.
이건
쇼처럼 드러나지 않지만
없으면 시스템이 무너진다.
만약 이 글을
지금 막 주니어 AC로 지원하려는 사람이 읽고 있다면
딱 한 가지만 말해주고 싶다.
“스타트업을 좋아하는 마음은 좋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지루한 일을 버틸 수 있는지다.”
자료 정리
보고서 작성
반복적인 메일
수많은 일정 조율...
이걸 버텨내는 사람이
결국 진짜 액셀러레이터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느 순간 문득 그런 장면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한때 엉성했던 팀이
명확해진 비즈니스 모델로 돌아올 때,
처음엔 불안해하던 대표가
당당히 투자자 앞에 서는 순간,
작은 팀이 진짜 매출을 내기 시작할 때.
그 모든 과정의
어딘가에
내 이름은 없지만
내 흔적은 남아 있다.
그게
액셀러레이터의 일이다.
신입 주니어 액셀러레이터에게
진짜 필요한 건 이거라고 생각한다.
보여지는 것보다 구조를 먼저 보는 시선 (중요) ✅
스타트업을 좋아하는 마음 ✅
일이 쌓여도 버틸 수 있는 체력 ✅
감정과 업무를 분리할 수 있는 태도 ✅
그리고
화려한 투자자가 아니라
조용한 설계자가 되겠다는 각오.
이게
채용공고에는 안 나오지만
내가 느낀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