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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웨 Apr 07. 2024

빛나는 만남

과거로 돌아가는 마을버스


지난 토요일 밤에 나는 마을버스를 탔다. 이 버스는 나를 20년 전으로 데려다줬다.



밤 9시 30분 학생 집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올 때 밖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들고 재빨리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10시 가까이 되니까, 지하철 안은 매우 한산했다. 빈자리에 앉자마자 가방 안에 있는 전화기가 울렸다. 남편에게 온 전화였다. 


“여보, 지하철을 탔어요? 오늘 비도 오니까, 걷지 말고, 마을버스를 타고 조심해서 와. ” 부드러운 남편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알았다고 대답하고 얼른 통화를 끊었다. 한국에 20년째 살고 있는 나에게 어린아이를 대하듯 항상 걱정해 주는 남편을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마을버스를 타면 빙빙 돌아서 집으로 가야 되지만, 그래도 남편의 말을 따라 마을버스를 타기로 했다. 지하철역에서 나올 때, 멀리 마을버스 종점에 버스 한 대가 기다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놓칠까 봐 얼른 뛰었다. 칙칙한 마을버스 안에 사람들이 다 조용히 앉아 출발하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창가 빈자리가 있어 재빨리 가서 앉았다. 살짝 주변을 둘러보니 승객들이 모두 핸드폰에 몰두하고 있었다. 



© 5tep5, 출처 Unsplash



어두운 버스 안에서는 책도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을 구경하고 있었다. 갑자기 뒷자리에서 핸드폰 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헬로우” 라고 말하는 남성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탈 때는 분명히 외국 사람이 없었는데, 아마도, 그 남자는 한국 사람인 것 같았다. 엿듣고 싶지 않았지만, 간단한 영어 문장으로 말하기 때문에 대화 내용이 내 귀에 쏙쏙 들어왔다. 


“Do you know, today is Korea’s 대보름 moon day. ~~~” 

(알고 있어요? 오늘은 한국의 대보름이에요. 하지만, 지금 비가 와요. 그곳은 달을 볼 수 있나요? )



© rileymo, 출처 Unsplash


그때 나는 대보름날인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궁금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달을 볼 수 없지만, 그분과 통화하는 상대는 달을 볼 수 있는지, 영어로 상대하는 그 사람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두 궁금했다.


어느새, 기사님은 버스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마을버스가 서서히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마을버스는 마치 내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20년 전으로 나를 되돌리는 것 같았다. 20년 동안 일어난 일이 영화의 장면처럼 눈앞에 빨리 스쳐 갔다. 20년 전 중국에 살고 있는 나는 한국에 살고 있는 한 남자를 인터넷에서 만났다. 두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의 소통 방식이 컴퓨터와 전화기였다. 회사나 집에 있을 때는 주로 인터넷으로 연락했지만, 밖에 나오면 전화기로 통화하곤 했다. 사랑에 빠진 다른 연인과 똑같이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자주 연락했다. 때로는 버스를 타고 있는 중, 때로는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모두 상대 나라의 언어를 다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영어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도 부끄러움 없이 영어로 대화했다. 난생처음으로 발음과 문법은 신경을 쓰지 않고 마음껏 영어를 사용했다. 혹시 옆에 우리의 영어 수준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얼마 뒤 우리는 드디어 보고 싶어도 참을 필요가 없고, 만나고 싶어도 기다릴 필요 없이 국경을 넘어 한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 pattyzc, 출처 Unsplash



20년 전에는 내가 통화하는 자였고, 20년 후에는 내가 옆에 듣고 있는 자가 되었다. 20년 세월이 흘렀고, 아들이 태어났다. 한국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이런 기쁜 순간들도 많지만, 당연히 괴로운 순간들도 없지는 않았다. 어느 날 전화를 받고 나서 허둥지둥 공항으로 향해 엄마와 마지막 만남을 위해 비행기를 탄 것. 그리고 이런 이유로 몇 년 동안 고향에 홀로 계신 아빠를 만나지 못하는 것. 한국에서 살면서 내 부모와 내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다.


타국에서 산 20년 생활을 뒤돌아보면, 나는 그동안 많이 성장하고 성숙했다. 무엇보다도 한국에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서, 모든 어려움을 다 이길 수 있는 것 같다. 



“When I arrive home, I will call you. (집에 가서 전화할게. 이따 봐.) ” 


마을버스가 신호를 기다리는 사이, 그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20년 전에서 마을버스가 다시 현재로 왔다.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남편을 생각하며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통화하는 남자가 혹시 우리처럼 외국 여성과 연애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만약 앞으로 결혼한다면, 비록 가정을 이루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더라도, 두 사람의 만남이 각자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jamie452,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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