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날 베트남에 있던 중국인 친구가 잠깐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 나와 오랜만에 만났다. 그녀는 한국인 남편을 만난 후 남편의 직장 때문에 중국에서도 자주 여기저기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살았었다. 커피숍에 둘이 앉자마자, 그녀가 나에게 던진 첫 번째 말은 “내 얼굴이 정말 많이 탔죠. 썬 그림을 많이 발랐는데, 모자도 쓰고, 어쩔 수 없나 봐요.” 눈이 내리는 추운 한국에 지금 살고 있는 나는 베트남에서 그녀가 얼마나 더운 환경에서 살다 왔는지 당장 피부로 와닿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녀가 분명히 그 환경에 적응하느라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는 것은 알 것 같았다.
새로운 곳으로 가면 음식부터 거주, 교통, 문화 등등 적응해야 하는 것이 많이 있을 것이다. 여행자에게는 매력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거기서 앞으로 살아야 할 사람에게는 큰 도전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외국에 가서 살게 되면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은 바로 언어이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이 자신에게 베트남어를 배우는 것을 반대하고 아이만 잘 돌보라는 말을 할 때 자기는 정말 속상하다고 마음을 털어놨다. 왜냐하면 일주일 중 하루만 쉬는 남편이 아이만 잘 돌보면 된다고 뭐 하러 유학생처럼 밤새 열심히 공부하냐고 그녀에게 불만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물론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집에서 쉬고 싶은 남편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친구는 어차피 여기서 몇 년을 더 살려면 언어 소통이 우선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앞으로 아이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 자기도 아이에 맞춰서 제대로 생활을 해야 되기 때문이다.
친구의 이런 마음이 매우 공감이 된다. 타국에서 살면서 언어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고 또한 소통이 안 되면, 우선 친구를 사귈 수도 없고, 물건을 살때마다 정보를 확인 할 수 없고, 밖에 나가기도 두려워진다. 이래서 그곳의 삶은 점점 고립된 생활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남편과 자녀도 함께 살고는 있지만 남편이 일하러 나가고 자녀가 학교에 가면, 혼자 남은 아내는 더욱 외롭게 느낄 수밖에 없다. 아내는 가족을 위해 헌신해야 하지만, 어느 정도 자기 자신 삶에도 책임감을 갖고 살아야 할 때도 있다. 자신의 친구와 자신의 취미생활,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도 책임감을 가지고 스스로 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남편이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듯이, 아내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통해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아내가 현지에서 언어소통이 되면 모두에게는 비록 각박한 타국 생활이지만 아내가 손을 더해 줘서 더 편리한 가정생활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남편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할 것 같다.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집에 오면 가족과 함께 쉬고 싶을 것이다. 이렇게 자기가 다른 나라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은 아마 자녀와 아내 그리고 가족을 위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아내가 아이를 돌보는 것을 소홀히 하면 누가 남편이 되었든 좋아할 리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아내가 유학생도 아닌데 매일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공부만 하다가 혹시나 건강이라도 나빠지면 어떻할까 염려될 수도 있다. 더운 타지에 나와 살면서 무엇보다도 가족의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친구의 이야기를 다 듣고 어떤 조언을 해줄까 고민하는 참인데, 친구가 알아서 답을 말했다. “앞으로 공부는 격일로 하고, 못 알아들으면 다시 한번 처음부터 시작하면 되지!” 친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참 좋은 방법이네요.” 이 것은 나의 진심에서 나오는 칭찬이었다.
부부 중의 한 명이 외국인이어도 힘든데, 두 명이 다 외국인라면 두배나 힘들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부부끼리 서로 이해하고 배려한다면, 어디에 사는 것과 상관없이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