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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웨 Mar 31. 2024

당신의 선택


당신의 딸은 어릴 때부터 학원에 다녔다. 유치원의 귀가 시간이 되면 집으로 가는 친구와 달리, 당신의 딸은 유치원이 운영하는 학원에 가서 공부해야 했다. 유치원의 학원에는 한국어, 영어, 수학 등 여러 과목이 개설되어 있었다. 앞으로 초등학교 공부와 연결될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마음을 흔들어 바로 등록했다. 한국어를 잘 모르는 당신에게는 딸의 한국어 공부에 대해 항상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아이처럼 일찍 집에 와서 쉬게 해주지 못해서 당신이 딸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 ckbenson, 출처 Unsplash



3년 후 유치원을 졸업한 딸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첫날, 딸은 손으로 종이 한 뭉치를 쥐고 집에 왔다. 당신의 형편 없는 한국어 실력으로는 도저히 읽을 수 없어서 속에 불이 나듯이 초조했다. 그래서 당신이 바로 남편에게 전화해 빨리 오라고 요청했다. 그 후 딸이 학교에서 거의 날마다 배달 하듯 가져온 가정 통신문, 준비물 통지, 미리 예습할 받아쓰기 단어들과 그림일기 숙제 등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과 당신 남편은 모두 지쳐버렸다. 보습 학원 선생님의 도움이 없으면 당신이 혼자서 일일이 처리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에 얼른 동네 전과목 보습 학원에 등록했다.



딸의 학원비를 보태기 위해 당신은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당신과 남편이 모두 다 일을 하므로 당신의 딸은 매일 보습학원에서 저녁 7~8시까지 머물러야 했다. 처음에는 학교 공부를 마치고 집 대신 학원에 가는 것을 싫어해서 징징대는 당신의 딸은 어느 날부터 아무렇지 않게 학교 가방과 학원 가방을 메고 학교 앞에서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익숙해졌다. 딸의 변화를 옆에서 지켜보는 당신은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안타까움이 마음속에서 맴돌았다.



당신은 일을 마치고 난 뒤에서야 비로서 가족 3명이 거실 바닥에 둘러앉아 늦게 저녁을 먹을 수 있을 것이었다. 저녁 먹고 딸이 텔레비전을 보거나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을 때마다, 당신은 딸도 공부하느라 힘들었다고 스스로에게 설득하면서 간섭하지 않았다. 


© patrickian4, 출처 Unsplash



남편 혼자 돈을 벌어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지만, 당신은 한국어가 부족해서 딸을 챙겨주지 못하기 때문에 차라리 당신도 돈을 벌어서 학원을 보내 내는 것이 더 맞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무책임한 엄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당신도 아이의 공부에 대한 관심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에는 토요일마다 당신은 딸이 당신의 모국어를 배우게 하기 위해서 데리고 나갔다. 주중 일로 쌓인 피곤은 토요일에 회복해야 하지만, 엄마로서 책임감이 당신을 기꺼이 휴식 시간을 모두 포기하게 했다. 딸이 배우는 2-3시간 동안 당신은 밖에서 꼼짝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리고 평소에도 당신은 항상 딸과 당신의 모국어로 대화하려고 노력했다. 


© benmullins, 출처 Unsplash



눈이 깜빡한 사이 6년의 세월이 흘러버렸다. 딸이 중학생이 되면서 당신이 옛날에 인식하지 못하던 문제가 드러났다. 학원에 다니면 우수한 성적을 받을 것이라는 당신의 기대와 달리, 겨우 합격한 성적표를 받을 때마다 실망감과 답답함이 당신의 마음에 가득 찼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생각해 보았다. 바로 시험 기간 내내 딸이 집에서는 공부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숙제를 다 했냐?’고 당신이 물어볼 때마다 딸은 아예 대답하지 않거나 혹은 짜증을 냈다. 점점 멀어지는 모녀의 관계가 언제 회복될 수 있을지 당신은 걱정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은 사춘기가 지나면 좀 나아질 수 있다고 당신을 다독였지만, 앞으로 다가올 고등학교 생활을 생각하면 정말 앞날이 막막할 것이다. 



© mlnrbalint, 출처 Unsplash


요즘 당신은 과거를 자주 회상할 때마다 자기가 그렇게 선택한 것에 대해 많이 의심하고 후회하고 있다. 말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나라에 와서 사는 것, 사랑하는 부모와 태어난 고향을 떠나는 것, 자기가 부족해서 딸을 학원에서 맡겼던 것, 아이를 돌보지 않고 직장을 다녔던 것. 무엇이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어떻게 해야 모든 상황을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 이제 당신은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담지 못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바로 지금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일 수도 있다는 것.



© googledeepmind, 출처 Unsplash



완벽한 인생이란 없다. 그래서 완벽한 선택도 없는 것이다. 그저 자기가 선택해서 만들어진 각자의 인생에 대해서 책임지고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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