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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말 Aug 04. 2023

손으로 건네받은 것

플라뇌르

손으로 건네받은 것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이야기 하나 해줄게. 아마 몇 명은 이 이야기를 오래오래 기억할 거야’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에도 굉장히 늙었다고 기억하는 할아버지 선생님이었는데, 아마 담임선생님께서 어떤 일로 당분간 자리를 비우게 되어 기간제로 잠시 우리를 가르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떤 내용을 배웠는가 하는 것은 이상하리만큼 전혀 기억에 없지만, 몹시 무서웠고 종종 둥글고 마디진 나무 막대기로 손바닥을 맞았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 저렇게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얇은 매가 그렇게나 매섭고 아프다니 하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회상하면,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나는 그를 마치 음침한 동굴 속에서 로브를 뒤집어 쓰고 있는 흑마법사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 헤싱헤싱 힘없는 머리털에 깡마른 몸. 얼굴 피부는 평평한 곳보다 주글주글 주름진 곳이 더 많았다. 특히 큼직한 두 눈동자가 달마처럼 형형했다. 눈이 감기는 것이 참선에 방해가 되어서 눈꺼풀을 뜯어냈다는 달마 도사. 그 당시 나에게 달마는 극기의 선지자보다는 총에 맞아도 죽지 않는 구울 같은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고 긴장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교실은 마치 동굴처럼 어둑어둑하게만 느껴졌다.     

흑마법사의 실험 소굴로 등교하는 나날이 이어지다 어느덧 그 늙은 선생님과의 마지막 수업 날이 되었다. 어째서인지 우리는 모두 그날이 마지막임을 알고 있었고, 창밖에는 묵직한 먹장구름이 잿빛으로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다. 비스듬한 빗방울이 문을 열어달라고 노크하듯이 창을 때려댔다. 형광등보다 밝은 벽력이 치고 뒤이어 천둥이 하늘을 찢는듯하던 기억이 난다. 번갯불이 번쩍이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몇 초 뒤에 울릴 천둥소리에 긴장하며 대비했던 기억이 분명하게 난다.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이야기 하나 해줄게. 아마 몇 명은 이 이야기를 오래오래 기억 할거야’ 흑마법사가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말을 시작하는 선생님의 형형한 눈 속에서 따스한 빛이 조금 떠올랐다. 그리고 눈을 빛내는 교사에게는 사람을 집중시키는 오라가 있다. 이제는 그걸 안다.

‘선생님은 사실 6•25 전쟁을 겪었어. 전쟁이 있었던 것 알지? 교과서에서도 자주 나오잖아. 북한과 남한의 전쟁’ 그렇게 말하고 그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선생님의 주름진 입은 잠시 가로로 굳게 닫혔다. 마치 정각을 알리는 뻐꾸기시계의 문이 잠시 닫혀버린 것처럼. 당연히 뒤이어 열린 입에서 나온 것은 뻐꾸기 인형 같은 게 아니고 기묘하리만큼 선명한 음성이었다.     

‘전쟁이 시작됐다는 걸 알게 된 아침에 선생님은 그게 믿기지 않았어. 아침 일찍부터 부모님이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봇짐을 싸더니, 우리들이 배고프다며 칭얼대자 마당에 조용히 서있으라고 하셨어. 옆집도 그 옆 옆집도 다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느낀 우리는 (선생님은 형님과 누님, 갓난쟁이 동생이 있었단다) 말 그대로 멀거니 서서 짐을 싸는 모습을 지켜봤어.’ 우와, 이거 피난민 이야기 같다. 라고 어린 나는 생각했다. 그것이 정말로 피난민 이야기였음에도.     

이어진 이야기는 고된 피난길과 험난한 생존에 대한 기억의 파편들로 이어졌다. '어떻게 끼니를 해결했고 어디에 숨었다'와 같이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야기들. 임시 피난처는 먼 친척 집에서 먼 친척 집으로 이어졌다.     

‘너희 혹시 총탄 본 적 있니?’ 총탄?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긴장한 채로 영화에서 봤던 작은 5mm 탄을 떠올렸다. ‘총탄은 결코 작지 않아. 비행기에서 쏘아대는 총탄은 너희들 몸통만 하단다. 그 당시 선생님은 너희와 비슷한 어린 나이였어. 가족이 도망 다니던 길은 주로 좁은 논길이었단다. 본 적 있지? 논과 논 사이에 좁은 흙길 말이야.’ 갑자기 선생님은 분필을 들더니 뒤돌아 칠판에 굵은 선으로 큼지막한 논과 논 사이의 두렁길을 그렸다. 이어서 당연하다는 듯 망설임 없이 길 위에 봇짐을 든 가족들과 길고 긴 피난의 행렬들을 더했다. 순식간에 눈앞에 장면이 또렷이 살아났다. 젖은 흙냄새가 나고 눅눅한 논길이 푹푹 밟히는 듯했다.


‘비행기가 이렇게 사람들의 행렬을 발견하면 우리를 향해 무차별로 총을 쏴대곤 했어. 그러면 손을 놓고 땅바닥에 몸을 바짝 붙이고 엎드렸어. 눈을 꼬옥 감은 채로. 선생님 부모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셨거든.’ 선생님은 이어서 간략하게 비행기를 그렸고 내 눈에는 날아오며 총탄을 쏘아대는 전투기가 움직였다. ‘한바탕 번개가 치듯이 총탄이 날아오고 눈을 감고 얼마간 바짝 엎드리고 있었지. 평소였으면 형님이(아까 형이 있다고 했었지) 선생님 손을 잡고 일으켜줘야 하는데 그날은 한참이 지나도 손을 안 잡아주는 거야. 그래서 머뭇거리면서 조심스럽게 눈을 떴지. 그렇게 선생님 옆에서 선생님의 형님은 돌아가셨어. 그 거대한 총탄을 맞고. 어쩌면 그날 그 총탄은 선생님이 맞기로 되어 있었는지도 몰라.’     

아마 아직 아이들이기에 참상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생략했으리라. 어떤 아이는 어른같이 깊은 탄식을 뱉고 나머지는 침을 삼켰다. 나는 한동안 그 비현실적인 총탄의 크기를 (나의 몸통만 하다고 하는) 가늠하고 그 쇠의 거대함과 차가움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아직까지 전쟁에 대한 이미지로 남았다. 피난에 대한 나머지 이야기는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린 나의 집중력의 한계였는지도 혹은 총탄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 다른 이야기가 들어올 틈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를 마치고 선생님이 덧붙였다. 마치 장대한 서사시에 마지막 각주를 다는 것처럼.     


‘얘들아, 전쟁이라는 것은 그런 거야. 손잡아 주는 일 같은 건 전쟁 앞에서 아무런 힘이 없어. 그래도 그렇게 손을 잡아주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그런게 전쟁이란다.’     

이야기를 마치고 선생님은 눈을 감고 잠시 말이 없었다. 밖에서 비쳐드는 희붐한 햇빛이 마치 한밤의 달빛처럼 느껴졌다. 달마처럼 느껴졌던 형형한 눈에는 사실 눈꺼풀이 멀쩡히 있었고 그 눈은 단호하게 닫혀서 생각에 침잠했다. 아마 그는 평생 뇌리에 박혀버린 그 장면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그것도 아니면 이후의 지난했던 삶을 다시 복기하고 있으리라. 기실, 그가 했던 모든 말들은 당시의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우리들을 보며 피난길에 올랐던 어린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분명 전쟁은 사회적으로는 효용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개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얼마 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은 폭격과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영화 같은 장면도, 최후의 저지선을 지키는 군인도 아닌, 머리 위에는 봇짐을 한 손에는 아이의 손을 잡고 시골길을 잰걸음으로 가는 가족이었다. 그리고 예의 그 몸통만 한 거대한 총알이었다. 우리는 미디어 속에서 숱한 전쟁 이미지를 접한다. 양차 세계대전, 상륙작전, 대공습, 팻맨 투하, 월남전, 제로니모 작전. 다양으로 반복되고 변형되는 심상들이 뒤섞이면서 더이상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 지을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의 기억이 실제 전쟁의 광경인지 영화 속 장면인지 확신할 수 있는 이는 몇이나 될까. 현실이라는 것은 우리가 믿는 것의 다른 이름일 따름이다. 수많은 층위가 겹쳐지면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가끔은 정말 헷갈린다.

     

이야기의 세부 내용은 사실 기억이 왜곡되어 만들어 낸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나의 기억(나는 기억력이 별로 안 좋다)과 영화와 책과 미디어가 합쳐서 만들어 낸 환영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엇의 콤비네이션이든 당시 노인의 기간제 선생님이 해준 이야기는 이상하리만큼 점점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모래 속에 파묻혀있던 고대의 피라미드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것 같다. 그는 우리에게 그저 전쟁의 무서움을 일깨워주고 싶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때 나이와 비슷한 우리들을 가르치다 보니 자연스레 이야기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는 자신이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중요한 그 무엇을 누군가에게 건네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마치 이어달리기 주자가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건네주는 것처럼. 

그리고 실제로 그 이야기는 마치 전통의 계승처럼 하나의 상징이 되어 나에게 넘겨졌다. 물론 그것에 아무런 실질적은 효용성은 없을지 모른다. 마치 전쟁 중에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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